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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중심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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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중심주의(victim-centered approach)란, 범죄사건에서 피해자의 관점을 우선시하는 접근방법을 일컫는 것으로, 특히 권력 격차로 인해 발생하고 가해자의 보복이 쉬운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의 진술과 관점을 중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평생 같은 종류의 피해를 당해 본 적 없는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는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일견 경솔하거나 불합리해 보이는 피해자들이 제대로 공감이나 존중을 받지 못해 왔다는 점에서 피해자 중심주의는 진실에 보다 가까이 접근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유념해야 할 것은 피해자 중심주의는 ‘피해자 절대주의’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여성주의(feminism) 연구활동가인 권김현영씨의 설명에 따르면, 많은 이들의 오해와 달리, 피해자 중심주의는 ①피해자에게 사건에 대한 판단 기준 전체를 위임하는 것이 아니고 ②처벌 수위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피해자에게 일방적으로 주는 것도 아니며 ③경험에 대한 독점적 해석을 주장하는 개념도 아니라고 한다. 고려대 로스쿨 박경신 교수도 피해자 중심주의란 권력관계를 원인으로 발생하는 범죄 등에 있어서 피해자의 필요와 관심을 중심에 두고 사건 해결 절차를 진행하자는 태도이지 범죄 발생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피해자의 말을 가해자의 말보다 우선적으로 신뢰해야 한다거나 성폭력 발생에 대한 입증책임을 가해자에게 전환하여 가해자가 성폭력을 저지르지 않았음을 입증해야 한다는 법리는 아니라고 한다.
근래에는 피해자 중심주의가 성폭력 등 권력관계를 원인으로 발생한 범죄사건의 접근 방식 차원을 넘어 입법과정에서 피해자의 입장을 중시하는 경향으로까지 확대되는 양상이다. 최근 피해자의 이름을 딴 법안들이 대거 대두되는 것도 이런 ‘피해자 중심주의’의 확대 현상을 보여주는 것이라 여겨진다. 2018년 9월 부산 해운대구에서 만취 운전자가 몰던 차량에 치여 숨진 윤창호씨 사망사건을 계기로 마련된 이른바 ‘윤창호법’,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운송 설비 점검을 하다가 사고를 당한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이름을 딴 ‘김용균법’, 2019년 9월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민식군 사고를 계기로 제정된 ‘민식이법’에 이어 최근에는 아동학대로 숨진 정인이의 이름을 딴 ‘정인이법’이 발의되는 등 피해자의 이름을 딴 이른바 ‘네이밍 법안’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이다.
‘피해자 중심주의’가 사법의 영역을 넘어서서 입법 영역에까지 이르는 상황에서 ‘피해자 중심주의’가 ‘피해자 절대주의’로 오용될 경우 그 폐해는 더욱 크다. 입법이라는 것은 일회성 사건에 적용되는 사법과는 달리, 장차 발생하는 모든 유사사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고도 다각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피해자의 스토리가 갖는 파급력 때문에 자칫 이러한 신중한 고려가 생략된 채 여론에 밀려 법이 제정되거나 국회의원들이 인지도 제고를 위해서 법안 발의를 남발할 경우 오히려 피해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법안이 만들어지거나 생각지 못했던 다른 피해자들이 양산되는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필요하지만 피해자 절대주의로의 오용은 곤란하며 더구나 피해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는 철저히 경계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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