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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辛丑年), 고사성어로 보는 소띠 해

입력
2021.02.01 16:10
수정
2021.02.02 11:06
25면
경북 청도군 우림목장. 뉴스1

경북 청도군 우림목장. 뉴스1


열흘 뒤면 신축년(辛丑年)이다. 지지(地支)가 축(丑)이니 소띠 해다. 천간(天干)의 신(辛)이 오행(五行)에서 흰색이라고 ‘흰 소띠 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옛사람들은 그런 소리 한 적이 없다. ‘황금 돼지해’라니 ‘백말 띠’라니 하는 말은 일본에서 생긴 풍조다.

요즘은 중국에서도 유행하는 모양인데, 상상 속 동물까지 포함한 열두 띠에다가 오색(五色)을 돌아가며 덧칠하는 것은 상술에서 비롯된 속설이다. 오행의 색은 흑(黑), 백(白), 적(赤), 청(靑), 황(黃)의 다섯이니, ‘파란 호랑이의 해’나 ‘빨간 양의 해’가 되면 어떤 요설로 포장할지 궁금하다. 띠마다 다섯 색깔을 번갈아 칠하면서 근거 없는 소리를 하느니 성어 하나라도 더 아는 것이 나을 성 싶다.

친근한 동물이라 그런지 소(牛)가 들어간 표현이 많다. 휴우귀마(休牛歸馬)와 매검매우(賣劍買牛)는 전쟁이 끝나고 태평성대가 왔다는 뜻이고, 토우목마(土牛木馬)는 쓸데없는 물건, 우각괘서(牛角掛書)는 부지런히 책을 읽는 것, 서우망월(犀牛望月)은 소견이 좁다는 뜻이다.

우도할계(牛刀割鷄)는 닭 잡는데 소 잡는 칼 쓴다는 말이고, 우기동조(牛驥同槽)는 현우(賢愚)를 분별하지 않음을 비판하는 말이고, 우의대읍(牛衣對泣)은 가난한 부부의 형상을 그린 말이다. 호우호마(呼牛呼馬)는 욕이든 칭찬이든 어떤 말에도 개의치 않는 태도로 ‘장자’에 나오고, 한우충동(汗牛充棟)은 장서(藏書)가 풍부한 것, 니우입해(泥牛入海)는 ‘景德傳燈錄(경덕전등록)’에 나오는 말로 감감 무소식을 뜻한다.

‘맹자’에서 나온 제왕사우(齊王舍牛)라는 성어도 있다. 제나라 선왕(宣王)이 애꿎게 죽게 된 소가 벌벌 떨며 끌려가는 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 소를 살려주고 양으로 바꾸게 했다는 이야기에서 나왔다. 그래서 백성에 대한 위정자의 측은지심을 뜻하게 된다.

이어진 이야기 뒷부분은 이렇다. 제선왕은 좋은 뜻에서 한 행동인데 백성들이 왕을 인색하다고 수군거렸다. 왕이 민망해하자, 맹자는 그런 마음을 단초로 삼아서 확충하면 인정(仁政), 왕도정치를 할 수 있다고 격려한다. 이 대목이 유명한 ‘곡속장(??章)’이다.

운이 좋은 소도 있었지만, 일진(日辰)이 안 좋았던 소도 있다. 백낙천(白樂天)으로 더 잘 알려진 당나라 백거이(白居易, 772~846)의 시, ‘숯 파는 노인네(賣炭翁)’에 등장하는 소가 그런 경우이다.

“숯 파는 노인네 남산에서 나무를 베어 숯을 굽는다. 얼굴은 온통 재와 그을음, 귀밑머리는 희끗하고 열 손가락은 시커멓다. 숯 팔아 얻은 돈으로 무엇 할 건가. 몸에 걸칠 옷과 먹을 밥을 구한다. 가련하게도 걸친 건 홑옷뿐이건만, 숯값이 싸질까 날씨 춥기만 바랬다. 밤사이 성 밖에 눈이 한 자나 와, 새벽부터 숯 수레를 빙판 위로 끌고 간다. 소는 지치고 사람은 허기진데 해는 이미 중천, 시장 남문 밖 진흙 바닥에서 한숨 돌린다. 저기 오는 말 탄 두 사람은 누구인가. 황색 옷 입은 환관과 흰 옷의 시종이 문서를 손에 들고, ‘어명’이라고 소리치고는 수레 돌려 소를 채찍질하며 북쪽으로 끌고 간다. 수레에는 천근이 넘는 숯이 있건만, 어명이라며 가져가니 아까운들 어찌하랴. 붉은 베 반 필과 능직 열 자, 쇠머리에 걸쳐주고 숯 값으로 친단다.”

날강도가 따로 없다. ‘어명’을 앞세워 말도 안 되는 헐값으로 숯을 강탈한 것이다. 전제군주의 착취가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이다. 숯장이 노인이 가련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빙판에 안간힘을 쓰며 수레를 끌던 소도 마찬가지다. 그 소는 무슨 죄가 있는지, 아무리 미물이지만 측은하기 이를 데 없다. 황궁에 끌려가서 꼴이라도 먹을 수 있었는지, 푸줏간에 팔려가지는 않았는지 등등, 시를 볼 때마다 온갖 상상이 들곤 했다.

백거이는 “궁시의 횡포를 괴로워한다(苦宮市也)”는 설명을 보탰다. ‘궁시’는 황궁에서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는 일을 통칭하는 말로, 그 때는 환관들이 시장에서 푼돈을 주고 물건을 마음대로 가져왔다. 실제로는 약탈이지만 나랏일이라고 하면 끝이었다.

올해는 고단한 생업의 수레를 소처럼 묵묵히 끌고 가는 시민들이 안녕(安寧)하기를 희망한다.

박성진 서울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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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서울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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