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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만하니 당했다? 피해자 탓 말고 가해자 합당한 벌 받게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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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새롬(41) 변호사는 지난해 추석 연휴(9월 30일~10월 4일)에 고향인 부산에 내려가지 못했다. 연휴 사흘 전인 9월 27일 성폭행 피해자였던 10대 의뢰인이 극단적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변호인으로서 충격이 컸지만, 재판부에 피해자가 사망한 사실을 알려야 했다.
혜린(가명·16)이는 성폭행 가해자 선고기일을 불과 열흘 앞두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름과 전화번호까지 바꾸며 삶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지만, 또래 집단의 2차 가해를 견디지 못하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이들은 단체 채팅방에서 혜린이가 숨기고 싶어했던 성폭행 피해 사실을 폭로하고, 어떤 경위로 경찰에 신고한 것인지 집요하게 물었다. 가해자 중 한 명은 혜린이 남자친구가 있는 방에서 "혜린이랑 잘 때 조심해. 강간으로 신고 당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혜린이는 피해를 입었는데도 제대로 보호 받지 못했어요. 극단적 선택을 할 때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안 좋죠.” 박 변호사는 2019년 말부터 혜린이를 변호하면서 2차 가해의 심각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는 무엇보다 성폭행 피해자를 탓하는 분위기가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혜린이 대리인으로 성폭행 사건에 연루된 가해 학생들의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에 참석하면서, 우리 사회가 피해자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을 여러 차례 확인했다. “적지 않은 학부모 위원들이 ‘그럴 만하니까 (성폭행을) 당했다’는 식으로 의견을 냈어요. 학생 신분으로 또래들과 모텔에서 술을 마셨다고 범죄 피해자가 되겠다고 의사표시를 한 게 아니잖아요.”
늘어지는 재판 과정도 피해자에겐 큰 고통이다. 박 변호사는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인정하는데도, 재판부가 합의 여부를 재차 확인하는 과정에서 공판이 연기된 적이 있다"며 "재판이 빨리 마무리되길 바랐던 피해자 입장에선 무척 답답해했다”고 전했다. 혜린이는 2019년 11월 처음 본 남학생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생들이 ‘빌린 돈을 갚겠다’며 혜린이를 모텔로 유인했고, 대기하고 있던 전모(18)군은 혜린이에게 몹쓸 짓을 했다. 인천지법은 지난해 10월 8일 전군에게 장기 징역 5년, 단기 징역 3년 6월을 선고했다.
혜린이는 가해자 선고 열흘 전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 혜린이 엄마아빠는 딸이 또래 집단으로부터 ‘걸레’라고 조롱 받은 사실을 딸 사후에 알게 됐다. 아이들은 혜린이가 이사가려던 다른 지역에까지 혜린이를 욕보이는 소문을 냈다. 극단적 선택 며칠 전 혜린이는 부모에게 “내가 다 잘못한 거야”라고 묻기도 했다. 피해를 입고도 정작 피해 사실을 인정 받지 못해 괴롭워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 변호사는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는 분위기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으면 피해자 상처가 조금이라도 치유될 수 있다고 봐요. 그래야 우리 사회가 공정하고 피해자를 지켜준다고 느낄 수 있거든요.”
성폭행 피해자 보호와 관련한 법이 2019년 말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박 변호사는 지적한다. 그는 “2차 피해를 규정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엔 처벌 조항이 없어 선언적인 법에 가깝다"며 "법 조항을 좀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2차 피해'보다는 '2차 가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2차 피해라는 말이 통용되면 극심한 고통을 겪는 피해자가 피해 여부까지 판단해야 하는 고통이 추가된다"며 "2차 가해의 범위를 명확히 규정해 가해 행위를 예방하는 쪽으로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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