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모르는 원전, 가당키나 한가"…文 의중 따라 靑 '강경 대응'

입력
2021.01.31 14:52
수정
2021.01.31 16:19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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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대화하며 걷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대화하며 걷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문재인 정부가 극비리에 북한에 원자력발전소를 지어주려고 했다'는 국민의힘 주장에 '강력 대응'을 예고한 청와대는 주말 동안 법적 조치 여부와 그 수위·규모를 두고 고심했다. 야당의 '색깔 공세' 목적이 4ㆍ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있다고 청와대는 본다. 공세로 치부하고 적극 대응하지 않으면 괜한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것이 청와대 고민이다. 이에 최대한 빠르게 후속 조치를 발표해 논란을 조기 진화한다는 방향을 정했다.


'공식 입장' 없었지만... 법리 검토ㆍ내부 회의 靑 '분주'

29일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문재인 정부가 북한 원전 건설을 추진했다. 충격적인 이적 행위"라고 말하자 청와대는 곧바로 "발언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법적 조치를 포함해 강력히 대응할 것"(강민석 대변인)이라고 대응했다. 이후로는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은 채 추가 조치를 준비했다.

일단 민정수석비서관실을 중심으로 김 위원장을 포함한 야권 인사들의 발언에 대한 법적 검토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적 조치를 실제 하는 것이 맞는지를 비롯한 정치적ㆍ정무적 판단을 위한 내부 회의도 진행 중이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2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2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靑 "남북 정상, 원전 논의 없었다... 실무 차원 검토일 뿐"

청와대의 분명한 입장은 이렇다. "남북 정상이 북한 원전 건설을 논의한 적이 없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한 남북 대화 과정에서 원전이 의제로 오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2018년 1, 2차 회담 사이에 '북한 원전 건설 및 남북 에너지 협력' 관련 문건을 작성한 정황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발견됐지만, "청와대와는 무관한, 실무 차원의 검토"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관련 문서를) 다른 부처와 공유ㆍ협의했다거나, 다른 국가와 논의한 바가 없다"고 단언했다. 강 대변인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거칠게 대응한 배경엔 '실무자의 단독 행동'을 '문 대통령의 의중이나 지시'로 야당이 왜곡하고 있다는 문제 의식이 반영돼 있다.

아울러 청와대는 산자부 공무원들이 북한 관련 파일만 삭제한 것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 당시 만들어진 문서 등 다른 자료도 함께 삭제한 점을 유심히 보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길게 끌 일은 아니다"며 "내부 검토가 끝나는 대로 어떤 후속 조치를 취할 지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민반응? 靑 "文 '사실무근' 확인"

청와대의 이러한 '속도전'에 "과하다"는 반응도 없지 않다. 1995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설립하는 등 북한 원전 건설이 '생소한 개념'이 아님에도 불구, '법적 조치' '강력 대응'을 운운하며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있겠냐는 시각이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는 "김종인 위원장이 남북 정상을 상대로 허무맹랑한 주장을 하는데, 청와대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으면 사실처럼 굳어지지 않겠나"라고 '적극 대응' 배경을 설명했다.

기저엔 문 대통령 의중이 깔려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 원전 건설 추진 의혹에 대해 문 대통령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확인했다고 한다. 강 대변인은 29일 김 위원장에게 "혹세무민하는 발언" "무책임한 발언"을 했다고 쏘아붙였는데, 이와 관련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대통령 뜻과 다를 수 있겠나"라고 부연한 바 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도 모르게 북한에 원전을 짓는 게 가당하기나 한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31일 국회에서 연 대북 원전 의혹 긴급 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31일 국회에서 연 대북 원전 의혹 긴급 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與 "李ㆍ朴도 검토"... 野 공세 '적극' 반박

여당도 청와대 출신 인사들을 중심으로 야당의 공세를 적극 반박했다.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을 지낸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원전 1기 건설비용이 5조원이라는데, 야당의 동의 없이 5조를 어떻게 마련해 몰래 건네줄 수 있겠냐"고 반문했고, 조한기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발전소 USB'를 건넸다는 것은 거짓"이라고 발끈했다.

북한에 원전을 건설한다는 구상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부터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신영대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서면 논평에서 "북한 원전 건설 구상은 2010년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시절 천영우 외교통상부 2차관이 처음 언급했다"고 지적했다. 윤준병 의원은 페이스북 글에서 "산자부 공무원이 삭제한 530개의 파일 중 220여개는 박근혜 정부의 원전국 자료"라며 "박근혜 정부는 '통일대박론'까지 주장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야당이 집권했을 당시 검토했던 북한 원전 건설을 '이적행위'라고 말하는 게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신은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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