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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승자는 없다

입력
2021.01.29 22:00
23면

조제 모리뉴 감독과 손흥민. AFP 연합뉴스

조제 모리뉴 감독과 손흥민. AFP 연합뉴스


손흥민의 소속팀 토트넘 핫스퍼는 잉글랜드 축구 프리미어리그 명문팀 중 하나로 꼽힌다. 만년 우승 후보군에 들어가는, 이른바 'TOP6' 중 하나로 분류되며 최근 들어 매년 상위권 경쟁에서 저력을 과시하는 중이다.

하지만 우승 후보와 우승팀은 엄연히 다르다. 토트넘은 139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잉글랜드 축구 전통의 강자이긴 하지만, 정작 우승을 차지한 기록은 많지 않다. 토트넘은 잉글랜드 최상위 리그에서 지금껏 두 차례밖에 우승하지 못했는데 그마저도 1961년 이후 60년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한때 박지성이 뛰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20차례, 리버풀과 아스널이 각각 19차례와 13차례에 걸쳐 정상에 올랐던 것을 감안하면 실로 초라한 성적표다.

그런 토트넘이 최근 강력한 우승후보군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수완 좋은 사장 아래 탄탄한 재정을 구축한 덕이 컸다. 비록 거대한 빚을 낸 덕분이기는 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최첨단 경기장을 새로 지어 올렸고 손흥민과 해리 케인을 비롯한 세계적인 선수들로 팀을 구성했다. 그리고 지난 2019년 가을에는 세계 최고 감독으로 불리는 조제 모리뉴를 영입해 지휘봉을 맡겼다.

모리뉴의 영입은 토트넘 역사의 한 단계 더 높은 도전을 의미하는 '사건'이었다. 토트넘이 139년간 두 번밖에 달성하지 못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모리뉴는 혼자서 벌써 세 차례나 일궈냈다.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 이탈리아의 인터 밀란 등 세계적인 팀을 순회하며 다국적 우승 트로피를 수집한 것 역시 그의 진가를 일러주는 훌륭한 성과다. 토트넘은 모리뉴가 거쳐 간 여러 클럽들 가운데 가장 우승 경력이 적은 팀이다. '우승청부사'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모리뉴 감독의 토트넘 부임은, 그래서 토트넘을 '승자'로 만들어 줄 사건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토트넘에 당도한 지 1년이 훌쩍 넘은 지금, 모리뉴 감독의 축구는 내용도 결과도 얻지 못한 채 호된 비판을 받고 있다. 어느 팀을 가든 '부임 2년 차' 시기에 늘 우승컵을 쓸어담았던 과거의 커리어는 올 시즌 토트넘에서는 재현되기 힘들어 보인다. 29일에 열린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1-3으로 패배한 뒤 최상위권 팀들과의 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졌다. 경기 내용도 썩 좋지 않아서 올 시즌 토트넘이 좋은 성적을 거두리라 예상하는 사람의 수는 크게 줄어들었다.

수비 라인을 끌어내려 지키다 카운터 어택을 노리는 역습 축구는 모리뉴 감독의 전매특허였다. 하지만 같은 철학 위에 지어진 토트넘의 축구는 과거 모리뉴가 이끌던 팀들과 달리 성적을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 현지에서는 모리뉴 감독의 축구가 낡았고 요즘에는 통하지 않는 방식이라며 비난한다. 시간이 흐르고 세상 모든 것은 크고 작든 변화를 겪는다. 한때 유럽을 제패했던 감독도 새로운 변화에 조응하지 않고선 아무 것도 손에 넣지 못한다.

누구나 흘러간 사람이 되고, 또 '구식' 인간이 된다. 하지만 이걸 받아들이는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자신이 더 이상 '승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변화의 시발점이 된다. 27년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유럽 최고의 팀으로 유지해 온 퍼거슨 감독이 하나의 전술에 얽매이지 않고 늘 변화를 추구한, 승자가 아닌 도전자였다는 사실은 그래서 지금도 많은 축구 감독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서형욱 풋볼리스트 대표ㆍ축구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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