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여신' 혹은 '마녀' ... 인간이 자연을 부르는 두 가지 방법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과학을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하미나 작가는 과학사 전공자답게 2030 여성의 건강문제, 덜 눈에 띄는 여성의 산업재해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얼마 전 한 고등학교에서 고전 독서 토론 수업을 맡아 진행했다. 채택한 도서는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쓴 '코스모스'였다. 1980년에 처음 출판되었고 지금까지도 활발히 읽히니 벌써 40년의 세월을 견딘 대단한 책이다. 플라톤, 공자, 맹자처럼 2000년은 족히 넘어야 고전인 것들도 있지만 과학 책은 40년 정도 버텨도 고전이다.
10년 전 처음 읽었을 때는 칼 세이건이 소개하는 우주 이야기에 완전히 매료되어 내용 자체를 흡수하느라 바빴다. 두 번째 읽을 때는 이 천문학자가 우주를, 나아가 과학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관점과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정말이지 사랑에 빠진 사람이었다. 뭐만 하면 자꾸만 “숨이 멎을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별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숨이 멎을 정도로 경이롭다, 별들의 탄생과 죽음이 만들어낸 우주의 장관이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답다, 상대성 이론의 우아함이 숨이 멎을 정도로.
천문학 책인데 역사 이야기가 많다는 점도 새로 보였다. 가장 최신 과학만으로도 책을 채울 수 있을 것이었다. 대신 칼 세이건은 세계 곳곳의 인류가 밤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국가의 흥망성쇠를 점치던 때에서 시작했다. 또 이러한 설명 체계, 곧 그들 나름의 ’과학‘ 이론이 어떻게 그들의 세계관을 반영하는지를 소개했다.
역사를 소개하긴 하지만 칼 세이건에게 지나간 과학은 틀린 과학이며 현재의 올바른 과학에 도달하는 진보의 길목에서 잠시 거치는 미완의 과학에 가까웠다. 이렇게 과거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해석하는 서술을 휘그주의 사관이라 한다. 사실 과학의 역사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서사 대부분이 휘그주의 역사다.
셋째로 빈번하게 쓰이는 메타포가 눈에 띄었다. 이 책은 칼 세이건이 무척 로맨틱한 만큼 대단히 문학적이기도 한데 가령 목차에서부터 그렇다. '1장 코스모스의 바닷가에서', '2장 우주 생명의 푸가', '7장 밤하늘의 등뼈', '12장 은하 대백과사전' 기타 등등.
메타포는 무엇에 빗대어 설명한다는 것이다. 대개 낯선 개념을 설명할 때 이해를 돕기 위해 이미 잘 아는 친숙한 개념을 끌어들인다. 이 과정에는 가치 판단이 포함된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 메타포에는 남자는 눈앞의 바다를 핑계로 헤어지며, 일정한 항구에 정박하지 않고 늘 떠나는 속성을 가진 존재라는 판단이 숨어 있고, 여자는 눈멀도록 바다를 지키며 기다리고 바라보는 속성을 가진 존재라는 판단이 숨어 있다.
마찬가지로 과학적 설명에서 쓰이는 메타포도 단순한 사실 적시가 아니라 한 개인과 사회, 그리고 우주(혹은 자연)의 관계를 보여준다. 칼 세이건은 은하를 '대백과사전'으로 비유했다. 자연을 책과 같은 텍스트로 봤다는 건데, 이때 자연은 독자인 인간에 의해 읽히기를 기다리는 속성을 지닌 존재가 된다.
자연을 텍스트로 보는 관점은 근대 이후 과학에서 너무 흔해서 그 밖의 다른 가능성은 생각하지 못할 정도다. 그러나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지 않을까? 왜 유전 정보는 늘 텍스트로만 표현될까. DNA 염기서열이 A, T, G, C 알파벳이 아니라 모양이나 색채, 냄새나 소리 등으로 정리될 순 없었을까. 그랬을 때 생명을 바라보는 인간의 관점은 어떻게 달라질까. 자연이라는 책을 읽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직접 쓰고 있었던 건 아닐까 등등.
강조하고 싶은 건 이거다. 우리가 어떤 사실을 설명하는 틀을 가지고 올 때는 거기에 포함된 가치 판단 역시 가지고 온다는 것. 최소한 가치 판단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것. 사실과 가치는 무 자르듯 깔끔하게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
천문대 옆에 타로 카페 있듯 근대적 자연관과 전근대적 자연관 역시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과학 기자로 일할 때 첫 지방 취재를 가게 되었는데 장소는 강원도 정선에 있는 해발 989m의 예미산이었다. 이곳에서 국내의 한 연구소가 이른바 ’우주의 미스터리‘로 불리는 암흑물질을 탐지하기 위해 지하 1,100m 깊이에 지하실험실을 건설하는 중이었다.
도착해보니 철광이었다. 그곳의 풍경은 생각보다 삭막했고 위험해 보였다. 예미산에 오르니 거대한 폐석 더미가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도착한 날은 하필 고사를 지내는 날이었다. 예미산 ’여신‘에게 고사를 지낸다고 했다. 철광 관계자는 담배를 피우며 먼 산을 보며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했다.
“옛날엔 광산에서 사람 수십 수백 죽는 건 일도 아니었어요. 상당히 위험한 일이지요. 갱도를 뚫는 게 여신을 괴롭히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신이 노하지 말라고 늘 고사를 지내요.”
최첨단 과학실험 시설이 설치되는 곳에 여신이라니, 철광의 낯선 풍경과 우주 암흑물질 이미지가 한데 뒤섞여 불안하기도 환상적이기도 했다. 예미산 여신은 인간이 우주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자기 안에 갱도를 뚫는 것을 허락했을까. 나는 이것을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의 오래된 것과 새것이 뒤섞인 장면으로 기억한다. 천문학자에게 예미산은 암흑물질 신호 검출 과정에서 우주의 ’잡음‘을 차단해주는 거대한 돌덩어리지만 철광 관계자에게 예미산은 자원을 나누어주는, 그러므로 그녀가 노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여신이었다.
근대적 자연관이 자연을 인간이라는 ‘주체’에 의해 읽히는 대상, 곧 수동적이고 죽어있고 정복 가능한 대상으로 보았다면 근대 이전에는 자연을 예미산 여신처럼 살아있고 유기체적인 존재로 보았다.
’어머니 지구‘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자연 혹은 지구는 양육하는 어머니의 이미지로 자주 재현되곤 했다. 이러한 자연의 모습에는 두 가지 상반된 면모가 공존한다. 질서정연하고 계획된 우주에서 인간에게 자원을 내어주는 친절하고 자비로운 어머니의 이미지. 그리고 폭풍과 가뭄, 해일처럼 끔찍한 자연재해를 불러일으키는 거칠고 통제되지 않는 여성(혹은 마녀)의 이미지. 어딘가 익숙한 이분법이 아닌지? 앎의 권위를 지닌 남성 지식인이 자신의 상대자로서 타자(자연과 여성)를 분석하는 관점은 무척 닮아 있다.
미국의 에코페미니스트 철학자이자 과학사가인 캐롤라인 머천트는 근대 과학이 형성되면서 여성과, 여성으로 표상되던 자연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고 보았다. 머천트는 근대 과학의 기틀을 다진 사상가들의 메타포를 분석하여 이 같은 결론을 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프랜시스 베이컨이다. 베이컨이 새로운 과학 방법론을 소리높여 외친 시기는 흥미롭게도 유럽 전역에서 마녀재판이 횡행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베이컨이 새로운 과학의 목적과 방법을 서술하는 데 사용한 메타포는 마녀재판에서 쓰인 표현과 매우 닮아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연은 그녀를 있는 그대로 내버려둘 때보다 기술의 괴롭힘과 심문 하에서 더 명확하게 그녀 자신을 드러낸다."
"당신은 뒤쫓고 이를테면 그녀가 방황할 때 자연을 사냥개처럼 추적해야만 하고, ... 진실의 심문이 그의 전적인 목표일 때, 남자가 이들 구멍과 구석으로 들어가서 관통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자연은 '봉사하게 하고', '노예'로 만들고 '속박'하여 기계적 기술로 '조형'해야만 한다. '자연의 탐색자와 밀정들'은 그녀의 계획과 비밀들을 발견해내야 한다." (캐롤라인 머천트, '자연의 죽음'에서 재인용)
근대 과학이 형성된 시기 과거의 자연관, 특히 두렵고 난폭한 자연을 상징하던 마녀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들어 수없이 많은 죽임을 당했다. 이들이 기소된 이유는 다양했지만 어쨌건 재판에 서게 된 여성은 주로 사회의 최하위층이었다.
지하실험실 취재를 다녀와서 쓴 암흑물질 기사는 개인적으로 망했다고 생각한다. 초고를 다 쓰고 난 뒤 사실 확인을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해당 철광에서 몇 개월 전 큰 사고가 난 것을 알게 됐다. 다이너마이트 발파 작업 도중 갱도가 무너져 6명이 매몰됐고 3명이 죽었다. 죽은 노동자는 모두 60대였고 세상은 그들의 죽음에 너무 조용했다.
와중에 나는 우주의 미스터리를 풀겠다고 같은 공간을 해맑게 취재했다. 그 공간에는 과학기술을 설명하는 말은 있었지만 이 공간을 조성하다 죽은 이들을 추모하는 말은 없었다. 연구실도 회사도 ’무관한 일‘이라 말했고 나는 그 말에 '버튼'이 눌려 복받쳤지만 이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랐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그 일은 여전히 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닌다. 최첨단 과학시설, 암흑물질, 우주의 미스터리, 예미산, 철광, 갱도를 뚫던 철광 노동자… 이 모든 건 정말 무관한 것이었을까.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