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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 최악의 실책? 박원순·정의연 아닌 '나다움책 회수사건'

입력
2021.01.27 10:0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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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못' 낙인 찍힌 여가부

편집자주

2021년 1월 29일은 여성가족부 출범 20년이 되는 날입니다. 2001년 출범한 여성가족부는 21세기의 상징이지만, 그 상징성 때문에 무용론, 폐지론에도 시달려 왔습니다. 여성가족부의 미래를 전망해봅니다.

나다움어린이책 도서 선정을 담당했던 남윤정 씽투창작소 대표. 박소영 기자

나다움어린이책 도서 선정을 담당했던 남윤정 씽투창작소 대표. 박소영 기자


“어린이들과 양육자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사업이기에 이건 장기간에 걸쳐 이어져야 할 프로젝트였어요. 그런데 일부에서 반대가 나오자 바로 포기하더군요. 그 모습이 너무나 실망스러웠어요."

최근 마주한 남윤정 씽투창작소 대표의 토로다. 남 대표가 말하는 '사업'이란 '나다움어린이책 사업'을 말한다. 2019년부터 롯데가 매년 3억원을 투자한 이 사업의 목표는 '성평등'이다. 고정된 남녀 성역할에서 벗어난 '나다움' 찾기를 돕겠다는 것이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운영을 맡고, 전문위원으로 구성된 나다움어린이책 선정위원회가 주제에 어울릴 만한 책을 골라 일선 학교에 배포한다.

그런데 지난해 8월 김병욱 의원이 국회에서 나다움어린이책으로 선정된 134종의 책 가운데 7종의 책을 거론하며 “조기 성애화가 우려된다”, “동성애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표현한다”고 비판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지적이 나온 지 하루 만에 여가부는 학교 5곳에서 배포된 책을 모두 회수했다. 여가부 스스로도 이 7종의 책에 대해 "여러 나라에서 1970년대부터 출간돼 아동인권 교육 자료로 활용되고 있거나, 국제 앰네스티의 추천을 받았거나, 세계 최고 권위의 아동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적인 인정을 받은 도서”라 설명하면서도 회수 결정을 내린 것이다.

나다움어린이책 선정 작업에 참여해던 남 대표는 당시 결정에 대해 “기독교 계통 학부모 단체, 극우 기독교 매체에서 일부 도서 내용을 문제 삼으며 민원을 넣기 시작하고 김 의원의 국회 질의 후 주요 매체에까지 보도되고 SNS에서 논란이 번지면서 하루 만에 회수결정이 난 것”이라 비판했다.

사실 존폐론에 자주 휩싸이는 여가부에 대해서는 동정론도 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성평등 주무부처라는 역할에 따른 권한과 예산이 확보돼야 하는데 이것이 뒷받침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다움어린이책 회수 결정만큼은 여가부가 그리 쉽사리 물러날 게 아니라 더 설득하고 이해를 구했어야 했다는 비판이 비등하다. 다소 욕 먹고 비판받더라도 어쩌면 성평등을 지향하는 여가부의 노선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여가부는 우리가 어떤 사회로 나아가야 하는지 전망을 제시해야 하는 부처인데 너무 급히 회수 결정을 내려 여가부의 존재 의미 자체를 바래게 했다”고 지적했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도 “성평등 문제 관련해 이견이 있으면 여가부야말로 적극 나서서 설득해야 하는 부처인데 문제가 있다니까 바로 ‘안 하겠다’고 돌아서버렸다"며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태도가 큰 회의감을 안겨줬다”고 말했다.


이정옥 전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1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양성평등정책포럼'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여성가족부 제공

이정옥 전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1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양성평등정책포럼'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여성가족부 제공


여가부는 이후에도 △롯데의 사회 공헌 사업이라 정부가 논쟁을 하기 어려웠다 △학부모 단체 대표자가 코로나19 확진으로 자가격리에 들어가 일단 회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등의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했다.

이는 결국 나다움어린이책 사업이 2년 만에 종료되는 것으로 이어졌다. 나다움어린이책 논란이 번져나가면서 부담을 느낀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롯데가 슬슬 발을 뺀 것. 남 대표는 "그러면 나라도 나서서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제안했지만 여가부가 끝내 거절했다"며 "성평등 사회 구현을 위해 씨앗을 뿌리는 것과도 같은 사업이라 어쩌면 여가부가 가장 적극적이었어야 하는데 그저 후퇴만 하는 모습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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