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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의 성폭력'이 말하는 것..."가해자다움도, 피해자다움도 없다"

입력
2021.01.2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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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오른쪽) 정의당대표가 같은 당 장혜영 의원을 성추행한 사실을 인정하고 25일 당 대표직에서 사퇴했다. 사진은 지난 4일 당 대표단회의에 참석한 김종철 대표와 장혜영 의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김종철(오른쪽) 정의당대표가 같은 당 장혜영 의원을 성추행한 사실을 인정하고 25일 당 대표직에서 사퇴했다. 사진은 지난 4일 당 대표단회의에 참석한 김종철 대표와 장혜영 의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가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믿은 이는 가해자가 되고, 피해를 당할 것처럼 보이지 않은 이는 피해자가 됐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이어 터진 김종철 정의당 대표의 성추행 사건으로 25일 온 나라가 충격에 빠졌다. 김 전 대표 성추행은 '유력 정치인의 권력형 성폭력이 또 발생했다'는 팩트를 뛰어 넘는, 무겁고도 서늘한 메시지를 던졌다.

국회의원마저...‘피해자다움’이란 절대로 없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자신이 피해자임을 밝혀달라고 당에 직접 요청했다고 한다. 스스로 쓴 입장문에서 “피해 사실을 공개함으로써 닥쳐 올 부당한 2차 가해가 참으로 두렵다”고 했지만, 그는 존재를 드러내기를 택했다.

유력 정치인의 권력형 성폭력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피해자는 ‘피해자답지 않다’는 이유로 비난을 당하곤 했다. 안희정 전 지사와 박원순 전 시장의 성폭력 피해자들은 "진짜 당한 것 맞냐"는 추궁에 시달렸다. 성폭력을 당한 이후 비참해 보이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장 의원은 그런 ‘피해자다움’을 격파하려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한 듯하다. 그는 “피해자의 정해진 모습은 없다. 그저 수많은 ‘피해’가 있을 뿐”이라고 했다. 피해자의 태도와 피해 여부는 무관하다는 뜻이다. 또 “일상을 회복하는 방법에도 ‘피해자다움’은 없다”고도 했다. 성폭력에 대처하는 방식도 피해자의 온전한 선택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정의당 젠더인권본부장을 맡고 있는 배복주 부대표가 25일 국회 소통관에서 김종철 대표의 성추행 사건 관련 긴급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닦고 있다. 뉴스1

정의당 젠더인권본부장을 맡고 있는 배복주 부대표가 25일 국회 소통관에서 김종철 대표의 성추행 사건 관련 긴급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닦고 있다. 뉴스1


정의당·김종철마저… ‘가해자다움’ 역시 없다

정의당은 늘 '약자의 기댈 곳'이었다. 제도권 정당 가운데 성평등 이슈에 가장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김 전 대표는 정의당의 ‘얼굴’이었다. 1970년생으로, 노회찬 전 의원ㆍ심상정 전 대표의 뒤를 이을 진보 진영 차기 주자로 꼽혔다. 2019년 조국 사태 때 여당 편을 들어 지지층의 신뢰를 잃은 정의당을 ‘선명한 진보 노선’으로 다시 세우겠다고 약속한 것도 김 전 대표였다. 그는 “성희롱, 성폭력을 추방하겠다”고 수없이 공언했다. 그의 성추행에 약자들이 큰 상처를 받은 이유다.

김 전 대표의 성추행은 ‘가해자다움’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장혜영 의원은 “누구라도 동료 시민을 동등하게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 데 실패하는 순간, 성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며 “그가 아무리 이전까지 훌륭한 삶을 살아오거나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예외는 없다”고 했다.

권력자가 자제력을 잃으면 언제든 권력형 성폭력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1999년 정계에 입문한 김 전 대표는 오랜 무명의 시절을 견디고 지난해 10월 정의당 대표에 취임해 한껏 주목받았다. 스스로 대선 출마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권력이 자제를 잃는 순간....권력형 성폭력에 예외는 없다

안희정·오거돈·박원순의 성폭력 피해자들은 모두 여성 비서였다. 권력형 성폭력에 취약한 위치였다. 김 전 대표의 성추행은 최고위급 권력자인 국회의원마저 권력형 성폭력에서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1987년생인 장 의원은 나이로도, 정치 경력으로도, 직함으로도, 성별로도 위계질서상 김 전 대표보다 아래다. 권력형 성폭력 문화 아래선 국회의원 배지도 소용 없었던 것이다.

“성폭력을 저지르는 남성들은 대체 어떻게 해야 여성들이 자신과 동등하게 존중 받아야 마땅한 존재라는 점을 학습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이 질문을 직시해야 한다." 장 의원이 고민 끝에 던진 묵직한 질문이다.

이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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