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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의 성폭력'이 말하는 것..."가해자다움도, 피해자다움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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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믿은 이는 가해자가 되고, 피해를 당할 것처럼 보이지 않은 이는 피해자가 됐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이어 터진 김종철 정의당 대표의 성추행 사건으로 25일 온 나라가 충격에 빠졌다. 김 전 대표 성추행은 '유력 정치인의 권력형 성폭력이 또 발생했다'는 팩트를 뛰어 넘는, 무겁고도 서늘한 메시지를 던졌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자신이 피해자임을 밝혀달라고 당에 직접 요청했다고 한다. 스스로 쓴 입장문에서 “피해 사실을 공개함으로써 닥쳐 올 부당한 2차 가해가 참으로 두렵다”고 했지만, 그는 존재를 드러내기를 택했다.
유력 정치인의 권력형 성폭력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피해자는 ‘피해자답지 않다’는 이유로 비난을 당하곤 했다. 안희정 전 지사와 박원순 전 시장의 성폭력 피해자들은 "진짜 당한 것 맞냐"는 추궁에 시달렸다. 성폭력을 당한 이후 비참해 보이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장 의원은 그런 ‘피해자다움’을 격파하려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한 듯하다. 그는 “피해자의 정해진 모습은 없다. 그저 수많은 ‘피해’가 있을 뿐”이라고 했다. 피해자의 태도와 피해 여부는 무관하다는 뜻이다. 또 “일상을 회복하는 방법에도 ‘피해자다움’은 없다”고도 했다. 성폭력에 대처하는 방식도 피해자의 온전한 선택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정의당은 늘 '약자의 기댈 곳'이었다. 제도권 정당 가운데 성평등 이슈에 가장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김 전 대표는 정의당의 ‘얼굴’이었다. 1970년생으로, 노회찬 전 의원ㆍ심상정 전 대표의 뒤를 이을 진보 진영 차기 주자로 꼽혔다. 2019년 조국 사태 때 여당 편을 들어 지지층의 신뢰를 잃은 정의당을 ‘선명한 진보 노선’으로 다시 세우겠다고 약속한 것도 김 전 대표였다. 그는 “성희롱, 성폭력을 추방하겠다”고 수없이 공언했다. 그의 성추행에 약자들이 큰 상처를 받은 이유다.
김 전 대표의 성추행은 ‘가해자다움’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장혜영 의원은 “누구라도 동료 시민을 동등하게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 데 실패하는 순간, 성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며 “그가 아무리 이전까지 훌륭한 삶을 살아오거나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예외는 없다”고 했다.
권력자가 자제력을 잃으면 언제든 권력형 성폭력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1999년 정계에 입문한 김 전 대표는 오랜 무명의 시절을 견디고 지난해 10월 정의당 대표에 취임해 한껏 주목받았다. 스스로 대선 출마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안희정·오거돈·박원순의 성폭력 피해자들은 모두 여성 비서였다. 권력형 성폭력에 취약한 위치였다. 김 전 대표의 성추행은 최고위급 권력자인 국회의원마저 권력형 성폭력에서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1987년생인 장 의원은 나이로도, 정치 경력으로도, 직함으로도, 성별로도 위계질서상 김 전 대표보다 아래다. 권력형 성폭력 문화 아래선 국회의원 배지도 소용 없었던 것이다.
“성폭력을 저지르는 남성들은 대체 어떻게 해야 여성들이 자신과 동등하게 존중 받아야 마땅한 존재라는 점을 학습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이 질문을 직시해야 한다." 장 의원이 고민 끝에 던진 묵직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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