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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이 불지핀 핵잠수함, 미국이 OK 안 하면 우린 못 만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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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잠시 연재했던 ‘정승임의 궁금하군’을 다시 새롭게 시작합니다. 군 세계에 정통한 고수보다는 ‘군알못’(군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는 글을 씁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핵잠수함 개발 선언’이 우리 군에 그리 나쁜 뉴스는 아닌 듯 합니다. 북한이 최근 폐막한 8차 당대회에서 “핵잠수함 보유에 대한 과업이 상정됐다”고 공개적으로 불을 지핀 이상, 우리 군의 핵잠수함 보유 명분도 커졌기 때문입니다.
핵잠수함이라고 하면 ‘핵무기를 싣고 다니는 잠수함’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실제론 핵 공격과 무관합니다. 우리가 통상 말하는 핵잠수함은 디젤 연료가 아닌 원자력(핵)을 동력으로 쓰는 ‘핵 추진 잠수함’입니다. 무제한 잠항이 가능하고 속도와 작전 능력이 뛰어납니다. 때문에 핵잠수함 개발은 우리 군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노무현 정부였던 2003년 이른바 ‘362 사업’으로 불리는 핵잠수함 도입을 비밀리에 추진했지만 대내외적 이유로 좌절됐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우리나라도 핵잠수함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고 할 정도로 의지가 강했지요. 실제로 현 정권 초기, 해군은 핵잠수함 개발을 위한 비공개 태스크포스(TF)를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핵잠수함을 갖고 싶다’는 희망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진 못했습니다. 국내적으로 막대한 예산 문제(1대당 1조원 이상)가, 대외적으로는 핵 확산을 우려하는 국제사회의 외교적 압력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쩌면 김 위원장이 우리 군의 가려운 곳을 긁어줬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얼른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겁니다.
보통 잠수함을 떠올리면 원하는 만큼 잠항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 해군이 보유한 디젤 잠수함은 그렇지 못합니다. 사람이 잠수를 하다가도 숨을 쉬기 위해 물 위로 떠올라야 하는 것처럼, 디젤 엔진으로 움직이는 잠수함도 화석연료를 태우기 위한 산소를 얻기 위해 하루에 1~2번은 수면 위로 올라야 합니다. 적에게 수시로 위치가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선체 몸집을 키우다 보면 추진력이 달려서 3,000톤급 이상으론 만들지 못합니다. 때문에 어뢰, 기뢰, 미사일 등 무기도 적게 실을 수밖에 없습니다. 잠수함의 공격 능력에 제한이 있다는 뜻입니다. 국방부가 지난해 8월 발표한 국방중기계획(2021~2025년)에서 ‘4,000톤급 잠수함 건조 계획’을 밝히자 언론이 핵잠수함 도입 가능성을 대서특필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정작 국방부는 ‘핵’이란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았는데 말이지요.
반면 핵잠수함은 핵연료를 한 번 장전하면 사실상 무제한 잠항이 가능합니다. 잠수함의 생명인 ‘은밀한 작전’이 보장됩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진짜 잠수함’인 셈이지요. 선체 크기도 커서 미사일 발사관이나 어뢰관 수도 많아지기 때문에 공격 능력이 뛰어납니다. 속도 역시 빠릅니다. 디젤 잠수함의 평균 시속이 11~15㎞인 반면, 핵잠수함은 37~47㎞입니다.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맞붙은 포클랜드 전쟁은 핵잠수함의 위력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입니다. 당시 영국은 핵잠수함과 디젤잠수함을 동시에 포클랜드로 출격시켰습니다. 핵잠수함은 2주 만에 현장에 도착, 아르헨티나의 순양함을 격침해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디젤 잠수함은 전투가 끝난 5주 후에야 도착해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디젤 잠수함을 조기 퇴역시키고 핵잠수함 건조에 올인합니다. 핵잠수함의 위력을 일찌감치 깨달은 미국은 1955년 최초 핵잠수함인 노틸러스함을 만든 이후, 디젤 잠수함 건조를 중단했습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군사연감인 제인 함정연감(Jane's Fighting Ships)에 따르면 잠수함을 운용하는 40개국 가운데 핵잠수함을 보유한 국가는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인도 등 6개국뿐입니다. 모두 핵 보유국이라는 점이 눈에 띕니다. 인도를 제외한 나머지 5개국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기도 합니다. 특히 미국, 영국, 프랑스는 핵잠수함만 운용합니다. 갖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가질 수 있는 무기는 아닌 겁니다. 잠수함 강국인 독일조차 핵잠수함이 없으니 말이지요. 핵 보유국도 아니고, 안보리 이사국도 아닌 우리 군이 핵잠수함을 개발한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핵잠수함 개발을 논할 때마다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것이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입니다. 1956년 체결된 이 협정이 2015년 개정되면서 우리나라는 ‘20% 미만 우라늄 저농축’은 가능해졌지만 군사적 목적은 안 된다는 단서가 붙었습니다. 추가 개정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우리 원전은 미국 기술에서 출발했기에 이를 토대로 핵잠수함을 개발할 경우 미국의 통제를 받습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세워진 원자력 발전소인 고리 1호기는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사가 설계, 시공했고 국산화에 성공한 영광 3ㆍ4호기도 미국의 컨버스천 엔지니어링사의 기술을 도입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 보면, 미국 기술이 아닌 제3국 또는 우리 독자 기술로 개발하면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이 없이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이론적으로 불가능해보이지 않습니다. 지난해 논란이 된 김현종 전 국가안보실 2차장의 "한미 원자력 협정과 핵추진 잠수함은 완전히 별개"라는 발언이 아예 틀린 이야기는 아닌 셈입니다.
핵잠수함 개발의 필수 요소는 잠수함에 장착할 소형 원자로 기술과 핵 연료 확보, 두 가지입니다. 우리나라가 세계 5위 원전 강국인데다 3,000톤급 잠수함을 독자 설계한 경험이 있어 소형 원자로 제작은 해볼 만하다고 합니다. 362사업이 진행된 2004년 한국원자력연구원이 핵잠수함 원자로 기본설계를 마쳤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정익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원자력연구원이 2012년 개발한 소형원자로인 스마트(SMART)는 미국 기술에 기반을 두지 않기 위해 일체형 원자로라는 독특한 형태의 원자로를 선택했고 소프트웨어도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해 미국이 개입하기 힘들 것”이라며 “상업용 원자로보다 잠수함 원자로가 더 고난이도지만 해 볼만 하다”고 말했습니다.
핵 연료 역시 미국이 아닌 프랑스나 러시아 등 제3국에서 농축 우라늄을 조달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일각에선 자체 농축시설을 만드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프랑스처럼 20% 미만의 저농축 우라늄으로도 핵잠수함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리 합리적인 선택은 아닌 듯합니다. 우선 “무기가 아닌 추진 동력으로만 핵을 사용하기 때문에 군사적 목적이 아니다”라는 것을 미국에게 납득시켜야 합니다. 자체 농축시설을 만드는 것보다 외부에서 농축 우라늄을 사오는 것이 비용면에서 훨씬 저렴하기도 합니다. 이정익 교수는 “농축 우라늄 시장은 독과점이지만 가격은 안정돼 있다”며 “가격을 올리는 순간, 모든 나라들이 농축시설을 만들겠다고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미국의 반대 때문에 개발이 가능할지 장담하기 힘듭니다. 우리가 핵잠수함을 갖게 되면 일본도, 독일도 보유하겠다고 들고 일어날 것이 뻔한데 미국이 가만 있을 리 없습니다. 미국은 그간 한미동맹의 측면에서 우리의 핵잠수함 보유를 반대했다고 전해집니다. 주한미군이 버젓이 주둔하는데 비싸기만 한 핵잠수함을 왜 가지려고 하느냐는 겁니다. 실제로 미국의 입김이 세게 작용하는 국제시장에서 우리가 제3국으로부터 농축 우라늄을 사오는 게 쉽진 않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추적, 감시도 신경 써야 하고요.
50년 전에도 그랬습니다. 미국의 월남전 패배에 충격을 받은 박정희 대통령은 1970년대 초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에 착수합니다. 자신의 반대에도 닉슨 미 행정부가 주한미군 7사단 철수를 결정하자 미국을 더 이상 신뢰하지 못하게 된 겁니다. 박 대통령은 파트너로 프랑스를 택했습니다. 프랑스로부터 플루토늄을 재처리할 수 있는 장비와 기술을 전수받기로 한거지요.
그러나 1974년 인도의 핵실험 성공에 충격을 받은 미국은 핵무기 관련 자재에 대한 각국의 수입 데이터를 탈탈 털었고, 우리가 핵개발에 착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에 한국과 프랑스를 동시에 압박했고, 특히 한국을 향해서는 금융과 기술을 포함한 모든 지원을 끊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결국 박 대통령은 프랑스와 계약을 취소했지만 미국과의 껄끄러운 관계는 계속됐습니다.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미국이 아닌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 것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핵 보유국도 아니고, 미국ㆍ러시아 등 핵 강국의 동의가 없는데도 핵잠수함 개발에 착수한 나라가 있긴 합니다. 브라질은 프랑스와 협력 아래 오는 2029년까지 핵잠수함을 건조하기로 했습니다. 이 계획이 성공한다면 우리의 롤모델이 되겠지만, 현재까지 사업이 그다지 순탄하게만 흘러가는 것 같진 않습니다.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지난 20일 출범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다시 동맹을 헌신짝 취급하는 도널드 트럼프 같은 미국 대통령을 만나게 될지 모릅니다. 한미동맹에 무작정 기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미국 동의 없이 추진하는 것도 힘들다면 해답은 외교적 설득 밖에 없습니다. 미국이 굳건한 한미동맹을 이유로 우리의 핵잠수함 보유를 반대한다면, 우리는 역으로 ‘한미동맹 기여’를 들어 미국을 설득할 수도 있습니다.
북한은 8차 당대회 기념 열병식에서 성능이 개량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인 신형 SLBM 북극성-5형을 선보였습니다. 북한이 핵탄두를 장착한 SLMB을 잠수함에 싣고 미 본토 인근까지 은밀하게 이동해 쏜다면 미국은 이를 막아낼 방법이 없습니다. 한미 정찰자산이 북한의 잠수함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태풍 등 기상이 악화된 날에는 항공기 위주인 이 자산들이 제 역할을 못한다고 합니다. 이 틈을 타 북한 잠수함이 출격한다면 그야말로 ‘노답’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고 전세계를 커버하는 미군 핵잠수함이 365일 한반도에 상주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이에 전문가들은 ‘우리가 핵잠수함을 도입해 24시간 북한 감시용으로 쓰겠다’는 논리로 설득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핵잠수함은 핵무기를 싣고 다니는 잠수함을 빠르게 추적 감시하는 측면에서는 ‘핵무기를 못 쏘게 하는 잠수함’이기도 합니다. 한미동맹에 기여하는 차원에서 “우리 돈을 들인 핵잠수함으로 미국을 겨냥한 북한의 '잠수함 핵 도발'을 막겠다”는 논리도 그럴듯해 보입니다. 동맹주의자 바이든 행정부를 향한 우리의 정교한 논리 개발과 설득이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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