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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좁은 집으로, 더 외곽으로 내몰리는 '도미노 전세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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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영등포구의 전세 아파트에 거주하는 김모(57)씨는 요새 잠을 못 이룬다. 임대차 계약이 내년 4월 만료되는데 집주인이 일찌감치 실거주를 엄포했기 때문이다. 2016년 전세 6억원에 이사한 후 4년간은 묵시적 갱신이 이뤄졌지만 지난해 7월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되자 집주인은 갑자기 실거주로 생각을 바꿨다.
문제는 돈이다. 서울에서 4인 가구가 살만한 6억원짜리 아파트 전세를 찾는 건 거의 불가능이다. 서울 외곽으로 시야를 넓혀도 마찬가지다. 빚을 낼 수도 있겠지만 은퇴가 코 앞이라 원금은커녕 이자 갚을 길이 막막하다.
결국 김씨도 집주인과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 본인 소유 중소형 주택에 사는 세입자의 계약갱신을 거절하고 그곳에 들어가는 것이다. 온 가족이 살기엔 터무니없이 비좁고 낡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는 상태다. 김씨는 "집을 팔 수도 있지만 양도소득세를 고려하면 더 좁은 곳만 매매 가능하다"며 "지금 내 집에 사는 세입자도 난처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고 한탄했다.
#. 경기 고양시의 반전세 주택에 사는 이모(46)씨는 비좁은 자가조차 부러운 상황이다. 이씨는 3기 신도시 '고양 창릉지구' 청약을 기다리며 2019년 9월 보증금 1억원에 월세 45만원으로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당시 집주인은 4년 이상 살 수 있다고 말했으나 이달 돌연 월세를 120만원으로 올리지 않으면 실거주하겠다고 통보했다.
이씨는 당장 갈 곳을 못 찾고 있다. 그는 "얼마 전 22개월 된 아이가 다닐 어린이집 배정을 어렵게 받았는데 이사를 가게 되면 어린이집을 다닐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며 "직장과 멀어지고 청약도 힘들어질 위기인데 집 없는 처지가 너무 서럽다"고 말했다.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지난해 7월 일명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이 시행됐지만 도시 세입자들은 전세난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호소한다. 법 시행 후 6개월이 흐르는 동안 전셋값은 무섭게 올랐고 매물 부족은 계속되고 있는 탓이다. 게다가 집주인이 실거주를 주장하면 방어막도 없다.
전세난에 허덕이는 세입자들은 더 작은 면적으로, 점점 더 외곽으로 연쇄적으로 밀려나고 있다. 동시에 임대차 분쟁은 나날이 증가 중이다.
26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개정 주택임대차법 시행 직후인 작년 8월 대비 4.12% 상승했다. 한 해 전 같은 기간(0.71%) 대비 상승폭이 6배 가까이 커졌다. 새해에도 전셋값은 계속 상승곡선을 그려 이달 18일과 지난달 28일을 비교하면 0.75% 높아졌다.
전세 급등에도 여당은 태평하다. 과거보다 임차인 주거가 안정됐단 이유다. 허영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지난 17일 논평에서 "지난달 3주차 서울 전세 2억~10억원 중저가 단지 100곳을 분석한 결과, 전월세 통합갱신율이 73.3%로 집계됐다"며 "주택임대차법 시행 이전 1년간 평균 통합갱신율(57.2%) 대비 16.1%포인트 상승한 수치"라고 밝혔다.
법 취지가 좋고 갱신율 상승 효과가 발생했어도 갱신을 못한 나머지 26.7%가 문제다. 2년 전 전셋값으로는 현재 사는 곳과 비슷한 수준의 집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서울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은 2018년 12월 대비 12.29% 급등했다. 평균 전셋값도 2018년 12월 4억6,277만원이었으나, 2년이 지난 지난달에는 5억7,582만원으로 뛰었다.
계약 갱신 실패자는 외곽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통계청의 국내이동통계도 이를 방증한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300만5,000명이 집 문제로 주거지를 옮겼다. 전년 대비 24만7,000명이 늘어났다. 특히 서울시민 7만9,600명이 주택 때문에 순유출(전출-전입)됐다.
임대차 기간을 둘러싼 갈등은 커지고 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계약갱신·종료' 분쟁은 총 122건으로, 전년(43건) 대비 3배 가까이 늘었다. 이 중 90.2%(110건)는 개정 주택임대차법 시행 이후인 지난해 8월부터 접수됐다. 공단이 지난해 상담한 임대차 기간 관련 문제도 9,833건이나 됐다.
임대차 분쟁이 법원까지 가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서 조정 개시된 분쟁 414건 중에서 26건(6.3%)이 조정 불성립됐다. 이는 전년(5.4%) 대비 0.9%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세입자나 집주인이 조정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은 비율이 늘어났다는 뜻이다. 이 경우 민사소송을 통해 시시비비를 따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세입자 주거 하향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일단 2년간의 단기적인 혼란을 버티더라도, 중장기 공급물량이 부족한 상황인지라 또 다시 전월세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며 "당장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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