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릴린 먼로의 유혹은 목소리에서 나왔다

입력
2021.01.27 04:30
<21>목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나

편집자주

독창적 문체로 남성 패션지 ‘GQ’를 18년간 이끌어온 이충걸 전 GQ 편집장이 문화 현상의 이면을 새롭게 들춰 봅니다. 현재 서울 필동에 사는 이 전 편집장의 ‘멘션(mentionㆍ촌평)’은 격주 수요일자 <한국일보>에 실립니다

목소리에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나이 좀 지긋하신 어른들이나 생활의 이치에 밝은 동네 철학자들은 말한다. 세상에 완벽한 건 없다고. 다 가진 것은 오히려 결핍이라고. 살아보니 정말 맞는 말이었다. 다 가진 줄 알았는데 돈이 없고, 잘생긴 줄 알았는데 목소리까지 못 생긴 나로선. 내 말은,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겠는데, 잉잉대는 목소리로는 도대체 살기 퍽퍽하다는 것이다.

나쁜 목소리는 허리케인 같은 대재난이었다. 입만 열면 서툰 목소리 때문에 밑천 떨어져 보였다. 성대 전문 이비인후과에도 가보고, 다음 생은 목소리 좋게 태어나고 싶다고 어금니를 앙 물어 본들 다 허튼 짓. 다음 생은 없다.

작은 단서만으로 누군가의 전체를 알 수 있다는 말은 인간사의 상투어가 되었다. 먹는 것, 입는 것을 말해주면 네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고? 그렇다면 찻잔을 쥐는 손의 형태,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눈동자, 돌아보는 고개의 각도 같은 몸짓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것도 목소리만큼은 아니다. 목소리는 지문과 같아서 벗겨낼 수 없는 우리의 구성 분자니까.

그날 밤, 어느 와인 바에서 유수 브랜드 런칭 행사의 뒷풀이가 있었다 패셔너블하다는 것이 뭔지 가뿐히 과시하는 이들의 열기는 머리카락이 휘날릴 정도였다. 화장은 서양에서도 먹히는 요즘 것이었고, 수트 단추는 사회적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굳이 반짝거렸다. 긴장으로 눌린 아랫배도 딱 한번만 튀어나왔다.

그러나 와인이 몇 순배 돌자 양상이 달라졌다. 새처럼 재재거리던 목소리들이 누군가의 가십을 사악하게 옮기자 말벌이 붕붕대는 데시벨로 치솟기 시작했다. 저 정도면 거의 F# 5 아니야? 부정적으로 감탄하는데 누군가 왜 아무 말 안 하느냐고 물었다. 세속의 절정을 보여주는 자리에서 주춤주춤 애매하게 구는 건 초월적인 물건들의 문화에 오래 충실했던 기능인에게 적절한 태도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의 후회에는 쉰 냄새가 났다. ‘불편해…조용히 일어나 나가고 싶어…’ 그 자리는 악몽이라기보다 땀에 젖은 축축한 꿈 같았다. 그때 한쪽 어깨에 이세이 미야케 스카프를 두른 회색 플란넬 셔츠의 그녀가 와인을 한 병 더 주문했다. 안정되고 자욱한 목소리는 소음 덩어리로부터 떨어져 나와 별개의 존재감을 보여주는데, 담배를 꺼내 지포 라이터를 켜지 않아도 구소련 시대에 암약하던 여간첩의 오라를 물씬 풍겼다. 아니면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마약을 밀매하던 짙은 아이라인의 소녀? 나는 그 몇 마디만으로 나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당장 알 것 같았다. 그러나 목소리 점은 늘 틀리기 마련이다.

최근 길고도 불행한 결혼을 끝낸 친구는 자책으로 발등을 찍고 있었다. “처음부터 신경 써서 목소릴 들었다면 이렇게까지 꼬이진 않았을 거야.” 이것은 목소리 무늬로 헤아리는 운명학? “목소리는 조근조근 착해 보여도 조금만 들으면 매몰찬 성격이 다 드러나는데 왜 그걸 몰랐을까”

다른 후배는 입사 첫날, 칸막이 너머에서 들리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목소리에 전신이 떨렸다. 후배는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 크지도 않은 회사를 헤맸지만 그 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며칠 뒤, 휴게실 자판기 옆에서 통화 중인 옆 부서 과장을 보곤 그대로 주저 앉았다. “저렇게 가루지기처럼 생긴 사람이 그 목소리였다고?” 목소리가 좋으면 얼굴이 처진다는 남녀 상열지사의 진실은 나도 겪은 바 있다.

대학생 때 다방 DJ 아르바이트를 했던 어떤 이는 그때 얼마나 추파에 시달렸는지 기회 있을 때마다 떠벌렸다. 외모 우선주의의 풍속으로 인색하게 말하자면, 한 푼 주고 얼굴 보라면 두 푼 주고 고개 돌릴 얼굴이…. 그러나 싹이 촘촘히 돋아난 모판에 습기로 촉촉해진 목소리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목소리와 얼굴의 도식만큼 야비하게 찝찝한 것도 없을 것이다.

좋은 목소리엔 확실히 모든 불리한 조건을 상쇄하는 파괴력이 있다. 레오나드 코헨의 집에 전화했다가 용건에 상관없이 사랑에 빠진 이들은 얼마나 많았나. 어떤 여자가 집에 없는 걸 알면서도 자동응답기에 녹음된 목소리를 듣자고 수시로 전화를 걸었던 남자 이야기도 있었다. 그녀 목소리의 비밀은 그레타 가르보의 허스키 보이스를 닮았다는 것이었다. 또는 뜨거운 열대의 밤? 역시 목소리의 성적인 힘만큼 강렬한 것이 없다는 얘기이다.

오래 전 상 파울로 공항을 거쳐간 사람이라면 목소리의 조여 드는 힘을 온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공항 안내 방송이 섹시하고 부드럽게 굴러가는 포르투갈어로 리오 데 자네이로 행 비행기가 어느 게이트에서 떠나는지 속삭이면 정신이 산란해져 비행기를 놓친 이들이 꽤나 있었을 것이다. 걸프전 당시 세계를 휩쓴 CNN방송 시청률 뒤에는 전장의 소식을 타전하는 크리스티안 아만포 앵커의 쓸린 듯 에로틱한 목소리가 있었다. 한편, 나폴레옹에게 조세핀의 나른한 목소리는 저항 불가능한 애무 같았다. 나폴레옹은 조세핀이 넘실대는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지 않으면 잠도 못 잤다니까. 마가렛 대처가 미디어 컨설턴트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1979년은 어떻게 됐을까? 컨설턴트가 대처의 날카롭고 여교사같은 목소리를 느리고 유혹적인 톤으로 바꾼 덕에 선거에서 이겼다는 분석은 그녀에게 스트레스였을까?

마릴린 먼로는 숨 멎을 것 같은 속삭임의 힘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메릴 스트립의 침식된 목소리는 강한 여운을 남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영화 ‘연인’의 첫 신, 만년필이 종이 위에서 서걱거리는 음향을 덮어버리던 잔느 모로의 모래 섞인 목소리. 메콩 강가, 프랑스 여자애와 중국인 부호의 불길한 사랑으로 우리를 끌고 가던 황혼의 목소리. 무엇보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남자는 시련을 향해 떠난다. 그러나 여자는 남아서 고독을 견딘다"라고 진술하는 메릴 스트립의 침식된 목소리.

마릴린 먼로는 숨 멎을 것 같은 속삭임의 힘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 누군가 들릴 듯 말 듯 읊조리면 상대는 그 목소리를 더 잘 듣기 위해 상체를 기울일 것이다. 이런 테크닉은 존 F. 케네디에게 너무 효과적이었다. ‘돌아오지 않는 강’에서 기타 반주로 ‘폭풍우 치는 바다에서 길을 잃을 때까지 노 저어 가자’던 심전계 항진의 목소리가 1962년,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케네디를 위해 ‘해피 버스 데이 투 유'를 부를 때, 생일 축하 노래 하나로 맨해튼을 날려버린 걸 우린 똑똑히 보았다.

이제 목소리의 고저와 주파수, 정확한 발성의 마력을 보여주는 연극배우 이야기를 할 때가 되었다. 배우 박정자가 ‘내사랑 히로시마’에서 "당신은 히로시마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어, 아무 것도"라고 말할 때, 의인화된 관능의 목소리. 독일군을 사랑했던 프랑스 여배우의 환부를 히로시마로 끌어들이는 흑맥주 거품같은 목소리. 후려치듯 달래는 고압적인 목소리. 악령이 꿈틀대는 후음성의 핵심은 역시 공명이었을까. 그녀가 90년대 화장품 CF에서 “과학이 아름다움을 만든다. 럭키 헤레나 루빈스타인”하고 발음할 때, 화장품보다 아름다운 생체적 후두의 마법은 아이들을 울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녀를 만날 때마다 세상에서 가장 목소리 좋은 여자와 지구에서 제일 목소리 나쁜 남자의 대비가 기묘할 따름이었지.

여자들의 목소리는 시대에 따라 다른 국면을 맞곤 한다.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전통적으로 높은 가성으로 말하곤 하던 일본 여성들의 목소리는 그 사회에선 타인을 즐겁게 해주려는 예의였다. 목소리 낮은 여자는 심술 궂고 위협적으로 들려서였다지만, 우리나라는 한 술 더 뜰 것이다. 1960년대 여성 운동을 경험한 미국 여성들이 직장에서 남자들과 경쟁하는 동안 목소리가 남성화 되었다는 주장은 너무 일반화 같지만.

목소리는 때로 무기보다 무섭다. 이탈리아의 파괴적인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의 자전적 소설 ‘남자’에서 그리스의 반정부 인사 파나고울리스는 이렇게 술회한다. “고문 당한 사람한테 나직한 목소리로 다음 고문을 예고하는 것만큼 끔찍한 것은 없어.” 목소리는 경고음. 무서운 목소리의 트라우마가 제일 오래간다. 그러나 ‘엑소시트스’에서 십자가로 다리 사이를 내리찍으며 “니 딸년 꼴 좀 봐” 하던 린다 블레어의 합성 목소리보다, 관아에 붙박힌 귀신이 도망갈 정도로 오금 저리던 연암 박지원의 목소리보다 무서운 건 “너, 나 좀 보자”는 엄마의 낮은 목소리.

가끔 상상한다. 친구들에게, 사실 나는 목성의 위성 가니메데에서 온 가니메데인인데, 거기 어른이 이제 너의 별로 돌아오라는 10~40 메가헤르츠(㎒)의 전파를 하도 보내서 내일 가야 한다고 통보하곤, 어이없어 하는 얼굴들을 보며 깔깔대는 상상. 그건 비밀스럽고 잠재적인 분노가 있다는 점에서 얕은 쾌감과 닮았다. 하지만, 누구도 같이 가자거나, 가지 말라고 만류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 동안 까다롭게 굴어서가 아니라, 나의 나쁜 목소리를 또 듣고 싶지 않을 테니까. 이런 나는 무엇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목소리의 힘을 보여줘야 하나….

오늘도 매리언 앤더슨의 ‘딥 리버’를 듣는다. 극동의 변방에서 뼈가 자란 사나이가 이 밤도 그녀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영혼 깊숙이 울리는 벨벳 목소리 때문에. 구름을 타고 내려온 키리 테 카나와와 달리 새벽의 땅 속에서 울리는 그 목소리엔 존귀함이 실려 있어서. 무엇보다 나의 흠 많은 목소리도 사랑하고 아껴주는 것 같아서.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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