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2020년 12월 14일자)에서 트럼프 임기 내에 카타르 단교 사태가 해결될지 눈여겨봐야 한다고 했다. 1월 5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제41차 GCC정상회담에서 3년 7개월을 끌어온 카타르 단교 사태 종식에 합의하였다. 개최 장소는 바레인에서 쿠웨이트를 거쳐 최종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로 결정되었다. 그만큼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상회담이 개최된 사우디아라비아 북서부의 알 울라(Al Ula)는 그다지 알려진 도시가 아니다. 어린 시절을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에서 보냈다는 아랍인 지인은 알 울라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사우디 비전 2030을 추진하면서 주목받지 않았던 도시 알 울라를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알 울라에는 나바테아인들이 건설한 무덤군인 마다인 살레(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를 비롯한 많은 고고학적 유적지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회담 장소로 사용된 마라야 홀은 특별한 외관으로 눈길을 끌었다. 마라야는 아랍어로 거울이라는 의미로, 세계에서 가장 큰 거울로 덮인 건물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알 울라 정상회담 의장을 맡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카타르와의 화해에 가장 앞장서는 모습을 보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카타르와의 육로·해상·항공로를 개방했고, 외교관계를 복원한다는 방침하에서 카타르 수도 도하에 대사관 업무를 재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그리고 이집트까지 사우디아라비아의 조치를 따라 카타르에 대한 봉쇄 해제에 동참하였다.
이번 정상회담은 카타르 단교 사태 해결뿐만 아니라 GCC국가 간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함께 결의하였다. 일례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보건안보 분야 협력 필요성이 커지면서 회원국 간 질병에 대한 공동 대응을 위해 걸프 질병예방 통제센터를 설립하기로 했다. 이 외에도 집단방위기구로서 GCC의 한계점을 보완하기 위해 기존의 아라비아 반도 방위사령부를 'GCC통합 군사령부(GCC Unified Military Command)'라는 명칭으로 개정하기로 합의했다.
정상회담으로 채택된 알 울라 선언은 이렇게 많은 성과를 낳았지만 오랜 갈등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기에는 부족한 면도 드러냈다. 우선 알 울라 정상회담의 결과물을 살펴보면 카타르 단교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관한 구체적 내용이 결여되어 있다. 이는 원론적 차원에서 합의는 있었지만 관련 국가 간에 세부 사항을 두고 조율이 쉽지 않았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여전히 갈등의 원천은 그대로 남아 있다. 원래 단교 해제 조건으로 카타르에 제시한 13개 요구 조항 가운데 이행된 것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이와 관련, 정상회담 이후 카타르의 무함마드 빈 압둘라흐만 외무장관은 카타르의 이란과 터키와의 관계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군다나 사우디아라비아의 단교 해제 조치는 카타르에 대한 신뢰 회복의 산물로 보기 어렵다. 오히려 출범하는 바이든 정부와 연관된 정치적 해법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2017년에 시작된 카타르 단교 사태는 애당초 트럼프 대통령 임기를 끝으로 사라질 운명이었을지 모른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트럼프 정부의 대 이란 강경 정책 기조에 발맞추어 이란과 우호관계를 형성해 온 카타르에 대하여 보다 강력한 외교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 신정부는 트럼프 정부의 정책을 180도 뒤집을 가능성이 크고, 이는 단교 해제를 서두르게 된 배경이라는 해석이다.
이 외에 아랍에미리트는 여전히 카타르의 행동이 미덥지 못하다. 카타르와 터키 간의 돈독한 관계를 문제 삼고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리비아, 시리아 내전은 물론 동 지중해 에너지 문제를 둘러싸고 터키와 지속적인 갈등을 빚어 왔다. 아랍에미리트의 입장에서는 카타르에 있는 터키의 군사기지가 눈에 가시와도 같은 존재이다. 따라서 알 울라 선언으로 카타르 단교 사태 해소라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신뢰 회복을 위해 풀어야 할 숙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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