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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철 前 주미대사 "한국, D10·쿼드 초청 기회로 활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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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한국 정부를 향한 양성철(82) 전 주미한국대사의 조언은 일견 의아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다시 짤 국제질서가 4년간 도널드 트럼프가 흔들어 놓은 기존 세계보다 우리에게 더 큰 도전일 수 있다는 걱정이 최근 부쩍 들던 터였다. 명분은 무서운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동인(動因)은 이익이었다. 거래와 이합집산을 묵인했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실존적 설명이 가능한 외교 공간이 한국에게는 열려 있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전임자와 전혀 다른 인물이다. 이념과 가치, 규범을 앞세우는 그에게 중국은 부당한 나라다.
“미국이 돌아왔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지난해 당선 직후 일성은 자유주의 질서와 민주주의 동맹을 다시 구축하겠다는 뜻이다. 물론 중국은 포위 대상일 뿐이다.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Summit for Democracy)’ 네트워크가 큰 틀이 되고, 정치ㆍ안보ㆍ경제 분야별로 ‘민주주의 10개국(D10)’, ‘쿼드 플러스’, ‘경제번영 네트워크’(EPN)’ 같은 협의체들이 구성될 전망이다.
한국은 난처한 상황이다. “2016년 주한미군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이후 악화한 한중 관계의 개선을 바라는 한국에, 미 정부는 중국 압박을 위한 동맹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는 18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보도대로다. 그러나 19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양 전 대사가 내놓은 제안은 “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선택을 강요 당하는 처지가 된 건 사실 아닌가.
“쿼드(미국, 일본, 호주, 인도 등 4개국의 중국 견제용 안보 협의체로 한국을 포함해 확대하는 방안이 거론돼 왔다)나 D10의 모태 격인 ‘주요 7개국’(G7)의 초청은 좋은 기회다. 우리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지지를 호소하는 자리로 활용해야 한다. 북한 핵무기는 우리만이 아니라 온 세상을 아수라장으로 만들 수 있다. 대량살상무기의 실존적 위협을 회원국들에게 환기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 한국에게는 중국ㆍ러시아와 관계가 중요하다. 지난 세기 잔재인 분단을 극복하려면 주변국들의 건설적 역할이 긴요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와 다른 한국의 특수성이다. 협의체에 참여하면 이런 사정을 양해해 달라고, 나아가 우리를 도와 달라고 회원국들을 설득해야 한다. 전화위복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지금껏 잘 쌓아 온 중ㆍ러와의 관계가 훼손되지 않도록 일관성을 유지하며 얼마나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느냐가 한국 외교의 핵심 과제다.”
-바이든 정부 외교팀이 공개됐다.
“지명자들 면면에서 안정감이 느껴진다. 한미 관계나 대북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 상호 핵심 이익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 같다. 대북 정책의 경우 핵을 포함한 대량살상무기를 포기ㆍ파기하게 만든다는 근본 목표가 바뀔 리는 없다. 다만 접근 방식과 해결책이 다를 것이다. ‘아시아 차르’로 불리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ㆍ태평양 조정관 커트 캠벨과 국무부 부장관으로 내정된 웬디 셔먼, 두 분을 잘 안다. 워싱턴에 있을 때 친분을 쌓았다. 3현, 즉 북한의 현안, 현장, 현실에 훨씬 큰 비중을 두고 지나치게 기대하거나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대신 실천 가능한 현안부터 하나하나 섬세하고 면밀하게 해결하는 방식을 추진할 듯하다. 보텀업 방식(실무협상부터 밟아가는 상향식)이 채택될 공산이 크다.”
실제 한국시간으로 인터뷰 이튿날 열린 미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는 비핵화 등 대북 문제에 관한 기존 접근법 전반을 다시 살펴볼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정상회담 위주의 트럼프식 협상이 결과적으로 비핵화 과정의 진전을 보기는커녕 북한에게 핵능력 고도화 시간을 벌어 줬다고 비판해 왔다.
-미중 간 패권 경쟁은 어떻게 전개될까.
“트럼프 정부 때 본격화한 미중 신(新)냉전도 접근법과 해결책이 다를 뿐 지속될 것이다. 집에 비유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1979년 양국 수교 뒤 함께 살아온 집이 갈수록 못마땅하고 불리하게 보인다는 이유로 그 집을 4년간 거침없이 허물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과 협의하고 합의하며 서서히, 하지만 더 확실히 미국에 좀더 마땅하고 유리한 집으로 고치거나 새 집을 짓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구할 것이다. 그러나 갈등의 본질은 근본적인 차이다. 만리장성을 쌓은 중국과 디지털 혁명을 이끄는 미국은 문화ㆍ정치가 다르다. 정치 지도자의 시간 개념도 엄청나게 다르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중국은 길게 보고 미국은 역동적이란 뜻으로 들린다. 문화적 차이가 정치 체제에도 반영돼 있다는 이야기인가.
“민주주의 국가에는 정치 지도자에게 임기가 있지 않나. 집권 막바지에 레임덕이 발생하게 마련이다. 그때 더러 혼란해진다. 이번 미 의회 난입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반면 권위주의 국가는 임기가 길거나 없다. 2018년 전국인민대표대회를 통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임기도 사실상 사라졌다. 임기가 없으면 일관성은 있다. 효율적이다. 대신 국민의 평가가 없다. 방향이 잘못돼 더 큰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 1명보다 100명이 현명하다는 게 민주주의 신념이고, 옳다고 생각한다.”
-늘 ‘미국 우선’을 외쳤던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어울리는 지도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모범이 되지 못하니 미국의 리더십도 약해졌다.
“바이든 정부에서는 국제주의를 존중하는 쪽으로 미 전략ㆍ정책이 움직일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탈퇴한 세계보건기구(WTO)와 ‘이란 핵 합의(JCPOAㆍ포괄적 공동행동계획)’, 파리 기후변화협약 등에 재가입할 게 분명하다.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와 미일 안보조약, 한미 군사동맹 등도 다자 협력 쪽으로 복원되리라 믿는다. 복원되도록 회원국들이 바이든 정부와 함께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미국이라는 게 양 전 대사의 평가다. 4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사상 초유의 의사당 난동까지 포개지며 지금 미국 꼴이 형편없지만 양 전 대사는 ‘통합주의자’를 자처한 바이든의 리더십에 기대를 걸고 있다. 양 전 대사가 보기에, 현재 미국의 난맥상이 민주주의 후퇴는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치유해야 할 진통이다. 다만 민주주의 정치 지도자는 시간과 다퉈야 한다. 양 전 대사는 “미국의 경우 2년마다 연방 하원의원 전원, 상원의원 3분의 1이 교체되는 선거가 치러지니 코로나는 바이든 정부에 가장 시급한 과제”라며 “빨리 수습해야 원만한 국정 운영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현재 고려대 석좌교수이면서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이기도 한 양 전 대사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발탁한 인물이다. 미 하와이대에서 유학하던 그는 1965년 가을, 국무부 초청을 받아 미국으로 가던 중 하와이에 들른 야당 의원들의 통역을 맡으며 그 중 1명이던 DJ와 인연을 맺었다. 평생 정치학자이면서도 DJ와 국회의원(1996~2000년), 주미대사(2000~2003년)로 함께 일했다. 미 민주당 빌 클린턴 정부에서 공화당 조지 W 부시 정부로 넘어가던 때 그는 워싱턴에 있었다. 2002년 10월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가동 의혹이 불거졌고 북핵 해결을 위해 북미가 1994년 10월 맺은 제네바 합의가 파기됐다.
-대사 재임 중 DJ 햇볕정책을 미국에 설득했는데 바이든 대통령도 기억나나.
“당시 햇볕정책을 가장 앞장서서 지지해 주던 인물이 존 케리 상원 외교위원장과 바이든 상원의원이었다. 제네바 합의가 깨진 뒤 북한이 6번의 핵실험을 했고, 김정은 정권은 미사일을 119차례나 쐈다. 농기구나 탈것의 재료인 쇳덩어리가 무기가 된다. 누구를 겨냥한 것인가. 동갑내기인 DJ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노벨평화상 수상자란 사실도 같다.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미 정치 지도자가 카터 대통령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남북 문제에 대한 깊은 체험과 성찰을 바탕으로 한반도와 아시아 평화 복원에 이정표를 남기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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