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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여가부, '돌봄'이 먼저다

입력
2021.01.21 00:00
27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여성가족부. 뉴시스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여성가족부. 뉴시스


여성가족부가 출범 20주년을 맞았다. 2001년 여성부는 한명숙 초대장관으로 시작해 현재 정영애 장관에 이르기까지 성평등 정책의 주무부서로서 활약해 왔다. 출범 초기에는 조정업무 중심의 초미니 부서였으나 2021년 현재는 예산 1조2,325억원 규모로 커졌다.

여성가족부는 여성운동과 거버넌스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 여성가족부는 여성정책의 패러다임을 '부녀정책'에서 '성평등 정책'으로 전환시켰다. 해방과 전후를 거치며 빈곤과 혼란 속에서 정부는 남성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여성을 대상으로 '가족복지정책' 또는 '부녀(婦女)정책'을 펼쳤다. '윤락(淪落)여성 선도(善導)정책' 같은 게 대표적이었다

부녀정책이 봉건시대 유교적 가족관의 산물이었다면 여성가족부의 성평등 정책은 공화국시대의 민주시민을 대상으로 한다. 부녀정책에서 여성은 의존적인 존재이지만 성평등 정책에서 여성은 민주시민으로서 헌법에 보장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 독립된 인격체이다. 여성가족부의 20년은 여성의 위치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보여 준다.

두 번째, 여성가족부는 우리사회 민주화 운동의 성과였다. 여성가족부 출범의 법적 근거인 여성발전기본법은 김영삼 정부에서 마련됐고 김대중 정부에서 여성부가 출범했으며 노무현 정부에서 호주제 폐지 등 중요한 정책의 성과가 있었다. 문민정부에서 기초를 닦고 진보 정권에서 여성가족부가 생기고 발전했다. 여성가족부는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결정하는 바로미터라 할 수 있겠다.

세 번째, 여성가족부는 민관 협치 거버넌스의 상징이라 할 만큼 민간의 여성운동과 함께 성장했다. 우리나라의 성평등 정책은 열정적인 여성운동이 안내자 역할을 했다. 여가부의 정책 의제와 전문인력들이 주로 여성단체에서 수혈되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등장했던 여가부 폐지론, 그 때마다 여성지도자들은 보수와 진보를 떠나 기꺼이 여가부 수호대가 되었다. 한여름 휴가를 반납하고 정당 대표와 면담하고, 연로한 여성계 어른들을 따라서 봉고차를 타고 다녔던 기억도 생생하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20주년을 맞는 여가부는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더 할 일이 많아져야 한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돌봄 행정'의 부재가 드러났다. '돌봄'은 양극화로 약한 곳이 더 취약해지는 재난의 법칙을 극복할 유일한 대안이다. 돌봄은 단순한 약자 지원 복지 정책이 아니라 한 생명의 성장과 삶 전체를 관통하는 공동체의 안전과 건강을 목표로 한다. 대통령이 말한 포용사회에 꼭 필요한 가치이다.

여성가족부는 그동안 여성권익 업무를 기본으로 하고 그 위에 보건복지부의 영유아 업무나 청소년 업무를 가감하면서 발전해 왔다. 앞으로 개인화 언택트화하는 추세를 감안할 때 여가부의 가족업무가 늘어나는 건 불가피하다. 여가부가 아니면 다양한 가족구조를 위한 통합적인 가족정책을 담당할 곳이 없다. N번방 같은 디지털 범죄도 성인지 감수성에 기반한 접근이 필요하므로 여가부에 디지털 관련 업무를 담당할 부서가 신설되어야 한다.

여성가족부처럼 작은 규모에도 돌봄의 가치를 지키며 그토록 다양한 업무를 감당해 온 부처는 없을 것이다. 이제 그 축적된 경험을 활용할 때다. 포용사회를 국정목표로 하는 지금, 돌봄 가치를 정책 패러다임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여가부를 정부조직의 중심에 두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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