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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자동차 50년 아성' 깰 전진기지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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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정부 공인 첫 자카르타 특파원과 함께 하는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 통일)'의 생생한 현장.
상전벽해. 양떼가 노닐던 허허벌판은 한눈에 담을 수 없는 은빛 성채로 변했다. 갯벌처럼 발이 푹푹 빠지던 77.6ha의 팽창성 토질은 60㎝ 깊이까지 흙을 파낸 덕에 단단한 지반으로 거듭났다. 정확히 20개월 전 ‘조네 데(D존)’라는 단서만 들고 차량과 도보로 그 땅을 찾아 헤맸던 기억이 멋쩍다. 우리에겐 불모지나 다름없는 동남아시아 자동차시장의 공략 거점은 7일 막바지 건설이 한창이었다.
프레스, 차체, 도장, 조립, 엔진으로 이어지는 16.5ha의 완성차 생산공장은 대부분 설비가 들어와 있다. 일부는 시운전도 하고 있다. 노란색 자동차용접로봇 대열이 돋보였다. 연구개발(R&D)센터와 현대식 이슬람사원도 짓고 있다. 2019년 12월 1일 말뚝을 박기 시작한 현대자동차의 동남아 첫 생산기지는 4월 준공, 5월 시험생산, 12월 양산을 앞두고 있다.
"하루하루가 고달팠다"(최윤석 현대차인도네시아생산법인장). 우기와 건기의 열대 기후, 생소한 현지 노동자들, 세상을 압도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등 난관이 많았다. 그럼에도 단 한 건의 안전사고도 없이 공사기간을 한 달 줄였다. "특별 입국 등 인도네시아 정부와 한국 대사관 지원 덕분"이라고 애써 공을 돌리지만 마음 졸인 최 법인장과 땀 흘린 현장 노동자 4,000여명의 성과다. 적도의 땡볕을 피해 노동자들이 안전사고의 충격을 "악" 소리 나게 체감하도록 마련한 실내 가상현실(VR)안전체험교육장에 깃든 배려도 든든했다.
현대차가 입주한 수도 자카르타 동쪽 약 40㎞ 지점의 서부자바주(州) 브카시 델타마스 공단은 적진 한복판이다. 일본 미쓰비시와 스즈키, 중국 울링은 공단 안에, 도요타와 인도 타타자동차는 차로 20분 거리에 포진했다. 일대를 돌면 인도네시아가 '일본 자동차의 50년 아성(牙城)'임을 실감할 수 있다. 일본은 현지 자동차 판매 실적의 98%를 장악하고 있다.
1971년 현지 법인을 설립한 도요타와 비교하면 우리는 반세기가 늦었다. 현대차는 내연기관차 15만대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차종은 아세안 시장에 특화된 코나급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다. 수출과 내수가 반반이라 연간 7만5,000대가량을 차질 없이 인도네시아에 팔더라도 판매 실적은 6위 정도다.
결국 판을 깰 돌파구는 전기차다. 현대차는 2022년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전기차 생산을 검토하고 있다. 최 법인장은 "내연기관차와 전기차를 동시에 생산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마침 인도네시아 정부도 '동남아 전기차 허브'를 꿈꾸고 있다.
아직 현지 생산 전인데도 분위기는 좋다. 현대차는 지난해 11월 6일부터 인도네시아 진출 자동차업체 중 처음으로 일반 고객에게 직접 전기차 두 종(아이오닉 일렉트릭, 코나 일렉트릭)을 팔고 있다. 한국에서 제작돼 들여온 전기차는 두 달 만에 130여대의 계약 실적을 올렸다. 지난해 초까지 자카르타에 등록된 전기차 대수가 699대인 걸 감안하면 높은 수치다. 지난해 1월부터 승차공유업체 그랩, 병원 등에 전기차를 착실히 공급한 결실이다.
예컨대 인도네시아 교통부는 2월까지 관용차 40여대 이상을 현대차의 전기차로 바꿀 계획이다. 서부자바주는 리드완 카밀 주지사가 직접 현대차의 전기차를 시승한 뒤 관용차 3대를 전기차로 교체했다. 인도네시아전력공사(PLN) 산하 자바발리발전(PJB)은 한국중부발전 소개를 받아 현대차 2대를 긴급 구매했다. 카르야완 아지 PJB 인사처장은 "차량을 빨리 받을 수 있어서 감사하고 현대차 성능에 만족한다"라며 "2023년까지 운용차량의 80%를 전기차로 바꿀 계획"이라고 한국일보에 말했다.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충전소 등 부족한 기반 시설 확충, 내연기관차에 뒤지는 가격경쟁력 향상 등은 인도네시아 정부의 협조가 절실하다. 일본의 방해 공작도 만만치 않다. 일본 자동차업체들은 현대차의 전기차 공세에 맞서 인도네시아 정부 상대로 하이브리드차량을 밀고 있다는 후문이다. 전기차는 시기상조라는 논리다. 현대차 관계자는 "전기차만큼은 한발 늦은 일본이 향후 5년간 하이브리드차량으로 시장 주도권을 유지하고 시간을 벌면서 전기차 전략을 세우겠다는 계산"이라고 설명했다.
다행히 인도네시아 정부는 세제 혜택, 충전소 건설 계획 등 전기차 관련 정책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2019년 말 본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전기차는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한 산업이다. 인도네시아는 아시아 전기차 거점 기지가 되길 소망한다. 그런 점에서 현대차 투자는 '인도네시아의 행운'이다."
덕담만으로는 버거운 싸움이다. 일본의 50년 아성은 철옹성이다. 오래 산 교민들조차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현지 진출 후발 주자라는 꼬리표를 떼고, 전기차 선두 주자라는 이름표를 각인시키는 게 아무래도 중요해 보인다. '2022년 전기차 생산 검토' 계획은 아직 완공되지 않은 공장 곳곳에서 읽을 수 있었다. 땀에 젖은 채 공장 건설 현장 견학을 마치고 돌아오자 최 법인장이 말했다. "우리는 될 때까지, 끝까지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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