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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은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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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돌봄의 궁극적 책임은 국가에
한국사회 아이 눈높이 감수성 취약
공직자 육아휴직 의무화 등 검토해야
아이는 누가 키우나? 이 질문이 주어진다면 아마 가장 많은 답변은 '엄마가 키운다'일 것이다. 다소라도 성평등 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부모가 키운다'고 답하리라. 이웃과 함께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아이는 온 마을이 키운다'는 아프리카 속담을 떠올릴지 모른다. 양육의 사회적 책임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아이에 대한 돌봄과 보호의 궁극적 책임은 국가에 있다'고 말할 것이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이 모든 것이 필요하다. 부모와 이웃이 아이를 혼자 두지 않고, 어린이집과 학교, 돌봄시설이 적절하게 운영될 때 아이가 안전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아이의 영양과 건강, 교육에 필요한 자원이 충분히 제공될 때 아이가 정상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아이가 기쁘거나 슬플 때, 외롭거나 불안할 때 마음을 돌볼 성인들이 곁에 있어야 아이는 정서적인 안정 속에서 커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당연한 상식이 한국 사회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 것 같다. 일하는 부모들은 시간에 쫓기고 가난한 가족은 OECD 평균보다 높은 아동 빈곤율 속에서 살고 있다. 부모의 계층 지위가 아이의 교육 격차로 이어지고 한국의 아이들은 똑똑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집단에 속한다. '2018년 아동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아동·청소년의 삶의 만족도는 OECD 국가들 중 가장 낮다. 10점 척도 기준으로 OECD 국가 평균 아동·청소년의 삶의 만족도는 7.6점인 데 비해 한국은 6.6점에 불과하다. 또한 한국 아동·청소년의 33.8%는 학업 문제 등으로 인해 '죽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또는 자주' 한다.
한국사회에서 자라는 많은 아이는 행복하지 않다. 학대와 폭력에도 취약하다. 16개월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양부모의 지속적인 학대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공공기관의 보호체계는 작동하지 않았다. 어린이집과 이웃주민, 의사 등 민간인들의 신고가 있었지만 아동보호 전문기관도, 경찰도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 유엔의 아동권리협약은 21조 1항에서 아동의 입양은 '권한 있는 관계당국에 의해서만 결정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민간기구가 전담한다. 아직 한국은 헌법에 아동의 권리를 명시하지 않고 있다.
정인이의 죽음 이후 세상이 소란하다. 경찰청은 책임자를 문책하고 아동청소년 보호대책을 세우겠다고 하고, 검찰은 뒤늦게 아동학대치사죄에서 살인죄로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국회에서는 부랴부랴 아동학대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그러나 또다시 입양 아동의 파양과 교환이 가능하다는 대통령의 실언과 그에 대한 비난이 터져 나오고 있다. 입양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나 전후 맥락의 제시 없이 파양을 거론한 발언도 문제지만, 그것을 비판하는 정치적 공세도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여(與)든 야(野)든 한국의 주류 남성 정치인들이 아이를 키우는 일의 무게를 얼마나 깊이 고민해 보았을까. 그들은 아이의 기저귀를 몇 번이나 갈아 보았을까. 열이 오르는 아이의 몸을 식히며 마음 졸인 적이 얼마나 될까. 한밤중에 깨어난 아이의 울음소리에 얼마나 귀를 기울여 보았을까.
아이들은 정치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있는 '말하는 주체(a speaking subject)'가 아니다. 따라서 누군가 그들의 마음을 대변해야 하지만 한국의 주류 남성 정치인들이 이런 감수성을 갖추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선거에 나오거나 새로운 직책을 얻으려는 공직자들에게 단 한 달이라도 육아 휴직 경력을 필수요건으로 하면 어떨까. 물론 해외 유학을 육아 휴직으로 포장하는 일은 없어야겠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당분간 한국사회에서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라길 바라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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