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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을 두려워 하는 청춘들에게

입력
2021.01.19 22: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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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어느 계절의 바다를 좋아하시나요? 저는 한여름 바다를 사랑합니다. 눈부신 에메랄드빛도 좋고요, 보고만 있어도 활력 넘치는 그 에너지가 꼭 '청춘'을 닮았거든요. 그런 연유로 가장 꺼리는 바다는 겨울 바다였지요. 저에게 겨울 바다의 의미는 뭐랄까요, 정말 펑펑 울고싶을 때 틀어놓는 슬픈 음악처럼 우울감이나 슬픔을 증폭시키는 그런 공간이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공간, 쓸쓸한 분위기, 차가운 공기가 한데 어우러져 제 빰을 스치면, 노년기를 떠올리곤 했습니다. 나이든 나는 어떤 모습일까. 견뎌낼 수 없는 쓸쓸함이나 고독감을 마주하는 시기는 아닐까? 겁이 많은 저에게는 마치 겨울 바다가 '나이 듦과 고독' 그 자체인듯 다가오곤 했거든요. 그래서 10년이 넘도록 가지를 않았습니다.

여러분께 나이 듦이란 어떤 감정인가요? 저에게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꼭 노년기가 아니어도, 삼십 대가 되어서는 항상 그랬던 것 같네요. '이제 30살이네, 33살이네, 36살이네.' 뒤에는 꼭 "근데 왜 아무것도 이룬 게 없지?"라던가 이 나이쯤 되면 좋은 반려자와 함께 살아갈 줄 알았는데… 여전히 혼자네. 앞으로도 혼자겠지?"라는 혼잣말이 뒤이어 붙곤 했지요. 그러면서도 저는 '내가 유독 심한 것 같다'는 자책을 한 스푼 더했습니다. 과거에 불안장애와 공황장애,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을 겪었던 저인지라, '후유증 아닐까? 다른 사람들은 이 정도는 아닐 거야'라고 생각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상담가라는 일을 직업 삼은 지 9년 차가 된 지금, 매해 저와 비슷한 감정을 가진 청년들이 많아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올해는 특히 더욱 그랬습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꿈이 좌절되어서, 해가 지난다고 달라지지 않을 것 같으니까. 나이'만' 들어가는 자신이 싫다는 토로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청년들의 그 마음이 가슴 시려서, 저도 조금은 비워내야 할 것 같아서 문득 떠났습니다. 코로나 시국, 사람 없는 곳을 찾아 도착한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꺼리던 겨울 바다였습니다. 얼마나 바라보았을까요. 문득 보이지 않았던 겨울 바다의 멋진 면이 보이더군요. 온통 시선을 빼앗는 독보적인 에메랄드빛이 아니기에, 오히려 다른 풍경들과 조화를 이룬다는 점이었습니다. 바다 '색'에 시선을 빼앗기는 대신 파도 소리 같은 청각적 아름다움에 귀 기울이게 되기도 하고요. 뛰노는 아이들도, 멋진 서퍼들도 없으니 사람 구경 대신 물결에 반사되어 일렁이는 빛의 조각에 집중하며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기도 하더군요. 몇시간을 바라보았을까요. 문득 '아름답다'라는 탄성이 입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아무도 없는 쓸쓸함이 아니라 혼자와 마주할 수 있는 고요함으로, 칙칙한 색깔이 아니라 깊이 있는 색감으로 눈에 가득 담기더군요. 겨울 바다는 나를 외롭게 한다. 라는 십여 년간 굳어버린 억단(臆斷)이 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어쩌면 삶도 그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겨울 바다처럼 나이 듦 또한 다른 색의 아름다움이 기다리고 있을진대, 우리는 '해가 바뀌어도 나아지지 않을 거야'라는 억단을 확신으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건 아닐까. 그곳에 도달했을 때에야 비로소 마주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면, 지금 그것을 두려워 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말입니다.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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