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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놀면서 무슨 긴급돌봄을..." 주부에게 비수가 된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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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20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국내에 상륙했다. 그 뒤 1년간 3차례 대유행을 겪으면서 전 국민이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였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방지 와중에 놓쳐버린 것들도 있다. 다섯 차례에 걸쳐 되짚어 본다.
“돌밥, 돌밥, 돌밥의 연속이죠. 우리끼리 ‘죽어야 끝나지’라고 해요.”
경기 남양주시에서 두 남매를 키우는 신민정(36)씨는 지난 한 해 '엄마로서의 자괴감'을 제대로 느꼈다. 첫째는 학교를, 둘째는 어린이집을 못가니 하루 일과는 '돌밥', '돌아서면 밥하기'만 반복했다.
신씨는 "두 아이가 9시 아침, 12시 점심, 이후 저녁 세끼에다 중간에 간식까지 먹어야 하다 보니 말 그대로 돌아서면 밥만 했다"며 허탈한 듯 웃었다. 아이들과 하루 종일 붙어있으니 싸움도 늘었다. 성격도 나빠지는 것 같았다. 스트레스가 쌓인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스마트폰만 끼고 살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1년, 신민정씨처럼 번아웃된 주부들의 이야기는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하지만 집에서 안전하다고 여기다 보니 눈여겨보는 이는 드물다.
하지만 위험신호는 여러 곳에서 나온다. 지난해 10월 유명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팀이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코로나19 국민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직업별 코로나19 스트레스 경험을 분석해보니 전업주부가 3.71점으로 1등을 차지했다. 학생 3.66점, 자영업자 3.63점 순이었다.
가장 큰 원인은 당연히 늘어난 돌봄시간이다. 은기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지난해 11월 한국노동연구원의 ‘노동리뷰’에 실은 ‘코로나19 팬데믹과 자녀 돌봄의 변화’ 보고서를 보면, 전업주부의 자녀 돌봄시간은 하루 평균 9시간 6분에서 코로나19 이후 12시간 38분으로 3시간 32분이나 늘었다. 이에 비해 맞벌이하는 여성의 돌봄시간 증가는 1시간 44분, 맞벌이하는 남성의 돌봄시간 증가는 46분, 홑벌이하는 남성의 돌봄시간 증가는 29분으로 뚝뚝 떨어졌다.
프리랜서인 김민영(38)씨는 지난해 4월부터 외동딸(7세)을 유치원에 보냈다. 코로나19 걱정에 끼고 있었지만, 김씨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류마티즘이 있어 집에다 작업실을 갖추고 음악일을 해온 김씨에게 딸을 돌보는 건 만만찮은 과제였다. 참다 못한 김씨가 딸을 유치원에 보내려 하자 안전을 이유로 모든 가족들이 반대했다. 김씨는 “아직은 위험하니 집에 데리고 있으라 하는데, 나를 하루 종일 하는 일 없이 집에만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많이 참담했다"고 말했다.
집 밖에도 난관은 있었다. 정부는 보육 공백을 메우겠다고 긴급돌봄(유치원·초등학교), 긴급보육(어린이집) 등을 도입했다. 그런데 맞벌이쪽에선 “우리도 재택근무하면서 아이를 데리고 있는데 전업주부가 긴급보육을 보내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말들이 나왔다. 자신의 일은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한 것 같아 슬펐다.
이런 상처는 신민정씨도 마찬가지다. 신씨는 “어린이집에서 등원자제 요청이 왔을 때 나부터도 ‘맞벌이 대신 내가 빠져줘야지'라는 생각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신씨는 사실 지자체의 육아지원센터에서 기간제 일을 한다. 재택근무가 가능해 가끔 사무실을 나갈 뿐이다. 그런데도 스스로 전업주부라 여겼다. 신씨는 “밖에서 일하는 것만 경제활동으로 인정하는 시각이 알게 모르게 내게도 짙게 배어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온라인 근무 확산이라는 뉴 노멀은, 가정집 앞에서 멈춘다.
신씨가 그나마 숨통을 튼 것은 아파트 단지에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돌봄위원회 덕분이다. 지난해 7월부터 서로 사정을 어느 정도 아는 이웃들끼리 돌봄 품앗이를 시작한 것이다. 품앗이 덕에 얻는 잠깐의 휴식이, 그마나 버텨나갈 수 있는 힘이다.
애쓴다, 고생한다는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이들은 할머니들도 마찬가지다. 서울 마포구에서 맞벌이하는 딸의 가족과 함께 하는 김경숙(61)씨는 지난 1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다. “가을 쯤엔 코피가 쏟아지더니 멈추질 않더라고요. 체중도 10㎏이나 늘고 발바닥이 갑자기 부으면서 찢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그럴 만도 한 것이 두 손자(9·5세)를 돌보다 보니 사실상 집에 갇혀 지냈다. 일주일에 한 두번씩 남산 둘레길도 걷고 교회에 나가 예배보던 시간이 완전히 사라졌다. 한창 뛰놀 나이인 아이들은 집 안에서도 천방지축이다.
원래 있던 당뇨가 악화되더니, 예방주사까지 챙겨 맞았는데도 대상포진이 두 번이나 걸렸다. 이젠 아예 가끔 병원에 들러 링거를 맞는다. 파김치가 된 몸을 누이려 해도 "위를 쇠갈퀴로 긁는 것처럼 너무 아파서 반듯하게 누울 수도, 깊이 잠들 수도 없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돈 버느라 바쁜 딸 부부를 돕지 않을 방법은 없다.
경기 부천시의 박미영(가명·65)씨 사정도 마찬가지다. 돌봐야 하는 손주는 20살부터 10살까지 모두 5명이다. 할 수 있는 건 밥을 해먹이는 것밖에 없었다. 그것만 해도 벅차다. 박씨는 “하루에 내가 먹는 약이 40알 가까이 되는데 코로나 시기에 치매약은 복용량이 더 늘었다”고 말했다.
원격수업을 해도 세심하게 챙겨줄 수가 없다. 박씨는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막내만 거실 TV로 EBS 수업을, 컴퓨터 한 대로는 셋째가 수업을 듣는다"며 "나머지는 각자 방에서 스마트폰으로 수업을 들었다”고 말했다. 막내는 아직 한글도 제대로 못 익혔지만, 그저 "EBS 수업을 3학년 것만 말고 1, 2학년 수업도 들어보라"고 말하는 게 전부다.
진용숙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경기가정위탁지원센터장은 "학교와 지역아동센터를 통한 영양지원(급식·우유지원), 방과후 학교, 지역아동센터 돌봄 및 학습지원 등이 코로나19로 멈추면서 할머니들의 부담이 훨씬 더 커진 상태"라고 말했다.
대구에 사는 베트남 출신의 레티김투엔(41)씨는 코로나19 이후 정상적 일상이 불가능해졌다. 2008년 태어난 아들 신형이(가명)는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 처음엔 베트남 친정으로 보내 10년을 키웠다. 3년 전 아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면서 공장이나 식당 일도 그만둔 채 아이 뒷바라지에 매달렸다.
하지만 신형이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졌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엄마를 때리다 자해를 시도하기 일쑤였다. 그러니 아이의 교육도 교육이지만 아들이 학교에 있는 동안 공공기관을 통해 스스로 심리상담을 받기도 했고, 역시 공공기관에서 하는 각종 다문화가정 복지프로그램에 아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신형이처럼 특수한 아이를 잘 돌보고 잘 가르치려면, 아들 못지 않게 엄마도 준비가 잘 되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이 결심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신형이는 온라인수업을 거의 듣지 않는다. 비장애 한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만든 프로그램이니 한국말도 서툰 장애아가 애초 쉽게 따라갈 수 있는 수업이 아니었다.
신형이 생활은 점차 들쭉날쭉해졌다. 스마트폰만 쥐고 살았다. 거기다 코로나19 대유행이 계속 거세지면서 공공기관에서 진행하던 아들의 문제행동 교정 관련 프로그램, 자신이 받던 심리상담 프로그램도 모두 중단됐다. 그 와중에 아들은 흉기를 들고 엄마를 위협하는 소동까지 벌였다.
지금은 그나마 일부 프로그램이 재개되면서 두 사람의 치료가 다시 시작됐다. 하지만 여전히 불편하다. 그나마 한국에 적응하려던 신형이는 다시 베트남어만 쓰기 시작했다. 바깥 나들이를 할 수 없으니 불안증상도 더 심해지는 분위기다. 2시간여 인터뷰 동안 신형이는 엄마에게 안아달라고 보채다가, 휴대폰을 보는 중에 소리를 지르거나, 엄마 머리카락을 잡아 뜯고, 가스레인지를 켰다.
투엔씨는 그저 특수학교라도 다시 등교를 시작하고, 그 덕에 약간이라도 쉴 틈을 누리고 싶을 뿐이다. 투엔씨는 인터뷰 내내 “너무 힘들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보다 더 힘든 건 사실, 힘들다 말하지만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현실이다.
강미정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는 "여전히 돌봄을 폄하하고 노동이 아니라 여기는 경향이 바뀌지 않아 여성의 부담이 크게 늘었다"며 "공교육이 결국 돌봄역할까지 끌어안아야 하는데, 학교돌봄터 정책에서 보듯 정부도 교육과 돌봄을 분리시키려 하고 있어 돌봄 공공성 확보가 시급한 상황"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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