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에 휩싸인 컨테이너,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

입력
2021.01.19 04:30
임현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를’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매주 한 편씩,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사회부 기자들이 본격적인 겨울의 시작을 알아차리는 신호가 있다. 급격히 늘어나는 화재 사고 비율이다. 그때부터는 늘 코끝에 매캐한 연기 냄새를 달고 다닌다. 온갖 것을 태운 냄새가 재와 함께 공기 중에 떠도는 현장을 종일 헤매고 나면, 집에 돌아온 뒤에도 냄새가 가시지 않는다. 그 냄새가 점퍼에서 다 빠질 때쯤 봄이 온다.

화재 사고 중 단신으로라도 언론에 보도되는 것은 일부다. 인명피해가 있거나, 재산피해가 커야 한다. 사회적으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사상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조명되고, 몇 년 뒤에도 회자되는 사고는 이 중에서도 극히 일부다. 하지만 이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도 매년 겨울철이면 평균 1만 5,145건의 화재가 발생하고, 평균 142명이 사망한다.

악스트 2020년 11/12월호에 발표된 임현의 단편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를’은 그렇게 우리가 놓쳤을 사고 하나를 소환한다. “온전히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결국엔 잊어버리고야 마는 것. 분명하게 존재하지만 존재를 의식하는 순간 불편해지는 것”, ‘눈꺼풀’이나 ‘새끼발가락’, ‘목구멍’이나 ‘팔꿈치’ 같은 이야기 하나를 들려준다.

전말은 이렇다. 상가건물이 밀집한 구역에서 겨울철 난방기 부주의로 인한 화재사고가 발생한다. 다른 곳으로 불이 옮겨 붙지 않았고, 사설로 운영되는 주차장에서 일어난 불이라 재산상의 피해도 크지 않았다. 생수병을 넣기에도 비좁은 한 단짜리 냉장고와, 실외기 없이 작동하는 에어컨이 전부인 컨테이너 관리실에서 난 불이었다.

그러나 “컨테이너가 화마에 휩쓸리고 있던 그 순간, 그곳에는 사람이 있었다”

임현 소설가. 현대문학 제공


그날 컨테이너에 있었던 사람의 이력을 읊자면 이렇다. 베이비부머 세대로 태어나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배터리를 수출하던 건실한 중견기업에서 사무직으로 39년간 일했다. 본인 명의의 부동산과, 20년을 넘긴 개인 연금도 있었다. 안정된 노후에 대한 믿음은, 임대수익률 12%를 보장해준다던 관광호텔에 투자했다가 운영사가 파산하면서 산산조각났다. 그렇게 그는 최저시급과 단순노무의 삶으로 내몰린다.

어쩌면 식상하다고 할 수 있는 실패의 이력이다. 그러나 이런 이력이 그를 화재 사고 생존자에서 어떤 실종 사건의 용의자로 탈바꿈시킨다. 은행 이자와 연체 내역이, 채권추심단으로부터 독촉에 시달렸다는 정황이 그렇게 만든다. 소설은 “나의 억울한 사연이 이대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의 이야기를 계속해” 달라는 남자의 부탁을 들어준 결과다.

오늘 하루 한 명이 화재사고로 사망했고 100명이 무사히 겨울을 났다면 이 중 무엇이 소설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전자일 것이다. 왜냐면 그들의 존재감은 팔꿈치나 새끼발가락만큼이나 미약해서, 고통을 겪는 순간에야 거기 있음을 눈치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계속해달라”는 팔꿈치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소설의 역할이며, 오늘도 기자들이 매캐한 사고 현장의 한 가운데를 헤매는 이유라고 나는 믿는다.

한소범 기자
이.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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