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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브 용기, 열심히 자르고 씻어도 "재활용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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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사지 않을 권리]<2>튜브형 용기
기후위기와 쓰레기산에 신음하면서도 왜 우리 사회는 쓸모없는 플라스틱 덩어리를 생산하도록 내버려 두는 걸까. '제로웨이스트 실험실'은 그 동안 주로 소비자들에게 전가해온 재활용 문제를 생산자 및 정부의 책임 관점에서 접근했다.
치약을 짜서 양치질을 하고, 핸드크림을 짜서 손에 바르고, 케찹을 짜서 오므라이스에 뿌리고, 폼 클렌저를 짜서 얼굴을 씻는다. 이 모든 단계를 함께 하는 것이 튜브형 플라스틱 제품이다.
작은 힘으로 알맞은 양을 덜 수 있어서 널리 쓰이는 튜브형 용기는 얼마나 재활용이 될까.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이 튜브 용기 10개를 수집해 직접 확인해보니, 이중 무려 9개가 재활용이 불가능했다.
보통 플라스틱 재활용의 가장 큰 걸림돌은 재질로 알려져 있지만, 튜브형 용기는 더 큰 걸림돌이 있었다. 바로 크기이다. 작은 용기들이 많은 튜브형은 재활용 선별장에서 손에 잡히지 않아서 버려지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공공선별장에서는 15㎝ 이상, 민간선별장에서는 18㎝ 이상은 돼야 선별이 됐다. 기업들과 소비자들이 제품을 만들고 살때 꼭 염두에 둬야 할 부분이다.
이런(작은) 것 까지 저희가 선별은 못해요"
포천시 자원순환센터 김순례 선별실장
우선 민간 선별장을 찾았다. 서울 및 수도권 여러 지자체의 폐기물을 위탁 선별하는 금호자원. 이곳 김영원(64) 작업반장에게 수집한 튜브용기들을 보여줬다. “이것까지만 저희가 잡을 수 있어요.” 김 반장이 고른 것은 길이 18㎝의 마요네즈 통. 10개 중 세 번째로 큰 용기다. 이보다 길이가 작은 나머지 7개 튜브는 재활용하지 않고 소각ㆍ매립된다.
선별은 사람이 손으로 하는 작업이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스무 명의 작업자들이 빠른 손길로 직접 재활용이 가능한 것을 가려낸다. 아무리 순발력이 좋아도 손바닥만한 작은 플라스틱은 선별이 어렵다. 컨베이어 속도를 늦출 수도 없다. 처리해야 할 쓰레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곳의 하루 처리량은 최소 100톤. 코로나19 유행 이후 물량이 30% 넘게 증가해 더욱 작은 플라스틱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작은 것까지 선별하려고 애쓰다 보면 더 큰 게 쓰레기로 내려가잖아요.” 김 반장이 말했다. 소재가 좋고 무게 측정이 쉬운, 이른바 ‘유가상품’ 위주로 가려야 수익이 난다.
공공 선별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기 포천시 자원순환센터의 김순례(55) 선별실장이 가리킨 것은 14.6㎝ 염색약 용기. “이것부터는 선별이 어렵다”고 말했다. 10개 중 15㎝를 넘지 않는 튜브용기 5개는 버려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도 "안 바쁠때" 얘기다.
다소 수익성이 낮아도 일단 재활용 가능한 용기를 보면 골라내지만, 물리적 한계가 있다. 김 실장은 “포천에 인구가 많지 않던 예전에는 아주 작은 용기도 재활용이 가능하겠다 싶으면 잡았다”고 말했다. “요즘은 쓰레기 양도 늘고 포장음식도 많이 먹다 보니 이런 작은 것까지는 처리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소비자들은 보통 재활용을 위해 튜브형 플라스틱을 자른다. 남은 내용물을 닦아 배출하려면 용기를 잘라야 하기 때문. 그러면 원래 크기보다 작아져서 더 선별이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세척하지 않고 통째로 버릴 순 없다. 이상덕 포천시 자원순환팀장은 “오염된 용기는 그 자체만 못 쓰는게 아니라 옆에 있는 것들까지 오염시키니 되도록 깨끗이 씻어서 버려야 재활용률이 높아진다”고 거듭 강조한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김 실장은 “잘라낸 용기의 윗부분에 아래를 끼워 넣은 뒤 한꺼번에 버리면 된다”며 ‘꿀팁’을 공유했다. 만약에 잘라서 끼우지 않고 그냥 버릴 경우는 가운데를 댕강 자르기 보다, 맨 윗부분만 살짝 잘라낸 뒤 세척해 버려야 한다. 가능한 큰 덩어리를 만들어서 배출해야 하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 잘라낸 작은 조각은 폐기될 수 밖에 없다. 그렇다 해도 약 15㎝ 이하의 작은 튜브용기는 여전히 구제불가다.
더욱이 재질을 따진다면 실제 재활용이 가능한 건 더욱 적어진다. 튜브용기는 주로 뚜껑이 폴리프로필렌(PP), 몸통은 저밀도폴리에틸렌(LDPE) 또는 합성플라스틱인 아더(OTHER)다. 음식물이나 치약 등 대부분의 튜브용기는 내부 산소유입 방지를 위해 여러 층의 필름으로 구성한 아더 플라스틱이다. 다른 제품으로 다시 태어날 수는 없고, 녹여서 고형연료(SRF)를 만드는 화학적 재활용만 가능하다. 일반 쓰레기처럼 매립하지 않고 연료로 쓰이는 경우도 있으니 재활용 봉투에 넣기는 해야 한다.
기자가 가져간 튜브형 용기들 중에서 크기 테스트를 통과한 3개 중 아더가 아닌 건 단 한가지, LDPE 재질의 초록색 용기만이 물질재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추정됐다.
튜브 뚜껑이 재활용 가능한 재질이라는 점은 한 가닥 희망이다. 환경부나 제조업체 모두 ‘뚜껑만 분리해 버리라’고 권한다. 하지만 뚜껑 역시 선별되기엔 너무도 작다. 김 반장은 “분리배출 할 때부터 뚜껑만 한데 모아서 버리지 않는 이상 재활용이 어렵다”고 말한다.
결국 작은 튜브 용기의 생산량을 줄이거나 감당 가능할 정도로 쓰레기량을 줄이지 않는 이상 마땅한 해결책은 없다.
기업들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오뚜기 관계자는 “300g 이하의 케찹 및 마요네즈 등 제품은 1인 가구 확대 트렌드에 따라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소스 제품은 1회 사용량이 적어서 유통기한 문제도 있다 보니 작은 용량을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오뚜기의 소스류 소용량 제품 판매 비중은 전체의 약 37.8%를 차지한다.
치약이나 염색약, 화장품 등의 튜브용기도 다양한 소비자의 요구를 맞추다 보니 작아졌다고 한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소형 여행용 치약처럼 필요에 따라 적정 용량, 가격을 따져 제작을 하는데 그러다 보니 재활용까지 다 고려해서 디자인이 결정되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렇다해도 작은 제품들이 지나치게 난무하는 것은 분명 문제다. 큰 치약을 사면 함께 주는 작은 치약, 두 세 번 짜내면 끝인 초소형 마요네즈 등. 주로 사은품이나 일시적인 소비를 위해 생산되지만, 모아보면 엄청난 양의 폐기물이 된다.
정부는 '포장재 재질·구조 평가제도'를 통해 기업들이 소비재 용기의 재활용 용이성을 평가해서 3월부터 개별 제품에 표시하게 했다. 이 기준에는 플라스틱의 재질과 라벨 분리여부 등은 있지만, 크기 규정은 찾아볼 수 없다. 한국환경공단 관계자는 "플라스틱 원료를 가공하는 재활용 업체에서 처리할 때 용이한가를 중심으로 기준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재활용 절차의 바로 전 단계인 선별작업은 평가에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안소연 금호자원 대표는 “생산자가 책임을 다해 작은 용기까지 회수해 재활용하는 게 좋겠지만, 되도록이면 작은 것은 안 만드는 게 환경에 좋다”고 말한다. 튜브용기의 재질에 대해서도 "생산 단계에서 물질재활용이 가능한 플라스틱으로, 가급적 투명하거나 백색의 플라스틱으로 통일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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