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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거리로 방치?… "관리부실 토끼섬 고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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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철학으로 시작된 청와대 국민청원은 많은 시민들이 동참하면서 공론의 장으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 못하는 동물은 어디에 어떻게 억울함을 호소해야 할까요. 이에 동물들의 목소리를 대신해 의견을 내는 애니청원 코너를 시작합니다.
우리는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센트럴파크 내 토끼섬이라는 곳에 살고 있는 굴토끼입니다. 토끼섬은 2012년 공원 내 인공수로에 조성되어 육지와 연결된 곳은 없습니다. 인천시설공단 관리자들은 우리에게 밥을 주기 위해 하루에 두 번 작은 뗏목을 타고 들어오지요.
왜 사람이 드나들기도 힘든 곳에 토끼섬을 지었을까요. 인공수로에서 카누나 카약 등 수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데, 그 이용객들이 가까이 와서 우리를 보게 하려 했다는군요.
70~100㎡규모의 작은 섬에 사는 토끼는 현재 18마리입니다. 암컷과 수컷이 각각 몇 마리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그저 우리 밥만 챙겨주고, 영역 다툼이나 질병으로 죽어 나가면 소각 처리할 뿐이죠.
가장 큰 문제는 우리 번식력을 과소평가했다는 겁니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출산이 가능합니다. 생후 4개월부터 임신할 수 있기 때문에 중성화하지 않으면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 있습니다. 지난해에도 70여마리까지 늘었는데요, 깜짝 놀란 시설공단 측은 부랴부랴 영종공원사업소와 월미공원사업소에 각각 20마리를 보냈습니다. 나머지 10여마리는 자연사, 병사하면서 현재의 개체 수에 이르게 됐지요.
무분별한 번식은 무려 9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토끼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고 수년 전부터 인천경제청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성의 있는 답은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얼마 전 토끼 복지를 위해 힘쓰는 단체인 토끼보호연대 회원이 현실을 목격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알리면서 우리 문제가 이슈가 됐습니다.
실태가 알려지면서 다행히 인천경제청과 시설공단은 그 동안의 관리소홀을 인정하고 우리의 중성화 수술을 하기로 했습니다. 추운 겨울 동안은 비닐하우스에서 지내고 해주고 그 다음은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는데요.
사실 우리는 토끼섬이 사라지길 바랍니다. 몸 하나 누일 곳 없는 토끼섬은 겨울엔 너무 춥고, 여름엔 너무 덥습니다. 특히 겨울철 물이 얼어버리면 마시지 조차 못합니다. 토끼보호연대 활동가들은 더 이상 토끼를 들이지 말고 우리가 자연사할 때까지만 키우고, 토끼섬이 아니라 공원 내 제대로 관리 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달라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에 강력히 동의하는 바입니다.
지방자치단체가 우리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서 볼거리로 제공해 문제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해 서울 동대문구청이 조성한 배봉산 근린공원내 사육장에서도 토끼가 20마리에서 100마리로 단시간에 5배나 급증했고, 2018년엔 서울 서초구 몽마르뜨 공원 토끼가 80여마리까지 늘기도 했지요.
덩치가 작다고 키우는 사람이 적다고 우리 생명의 가치도 하찮은 게 아닙니다. 우리를 그저 볼거리로 바라보지 말고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관리해주길 요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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