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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사람 장사'라지만... 노동자몫 빼앗는 게 생존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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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서사
당신은 힘들게 일하는 노동자입니다. 피·땀·눈물의 대가로 월급을 받지요. 그런데 누군가 그중 수십, 혹은 수백만원을 늘 떼간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은 노동시장의 최하부에 위치한 간접고용 노동자 100명에게 '중간착취'에 대해 묻고, 그 지옥도(地獄圖)를 펼쳐보기로 했습니다. 중간착취를 금지한 근로기준법(제9조)은 과연 누구를 보호하고 있는 것일까요.
“지선아, 돈 벌어서 다 어디 쓰길래 맨날 돈이 없다 그래?”
“월급이 얼마 안되잖아요. 100만원 좀 넘는데.”
“어? 아닌데···."
지선(가명·39)씨는 10년 전 대화를 잊을 수 없다. 은행 직원 중 지선씨와 가깝게 지냈던 서무 담당자였다. 지점의 살림을 도맡았던 그가 지점 운영 경비가 적힌 서류를 다시 확인하더니 말했다. “경비원 인건비로 240만원 나가.” 귀를 의심했다. 은행에서 경비원으로 일하지만 은행이 아닌 용역업체에 고용돼 있는 지선씨. 그 달 용역업체가 준 월급은 132만원이었다.
은행 직원들은 은행이 용역업체에 지급한 돈이 고스란히 지선씨 월급이 되는 줄 알고 있었다. 지선씨는 업체가 세금 등을 뗄거라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큰 돈 일줄 몰랐다. 월급에 맞먹는, 100만원이 넘는 돈을 매달 뗀다니. 10년 전 이날,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처음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이 ‘이상한 착취’는 10년 동안 계속됐다.
지금 지선씨의 월급은 10년 전보다 59만원 오른 191만원. 은행이 10년 전 용역업체에 줬던 240만원보다도 적은 돈을 받고 있다.
한국일보는 지선씨와 같은 간접고용 노동자 100명을 취재해 기상천외한 중간착취 방식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구든지 법률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영리로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지 못한다'고 규정한 근로기준법 9조(중간착취의 배제). 이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는 세상의 위선을 보여주는 잔인한 문구일 뿐이다.
용역·파견업체가 타인의 노동에 기생하는 대표적인 방식은 원청이 노동자 몫으로 지급하는 노무비조차 제대로 주지 않는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하청업체에서 자동차 부품 제조를 하는 신모(36)씨는 월급이 267만원이다. 현대차와 하청업체가 맺은 도급계약서에 따르면 노동자 1인당 인건비는 월 347만원(2019년 기준). 이 하청업체에서 80만원을 가져간 것이다.
현대제철에서 일하는 김용환(가명·33)씨도 마찬가지다. 원청은 하청업체 소속인 현장 노동자 73명 기준으로 매월 3억3,000만원(2019년 기준)의 도급비를 줬다. 노동자 1인당 단가는 약 450만원 정도. 제철업계에선 이 단가에서 관리비 등을 떼고 순수 인건비로 73%정도를 지급하는데, 이 기준대로라면 노동자들의 급여는 328만원이 돼야 한다. 하지만 용환씨의 월급은 260만~270만원이었다. 용환씨 노동력의 대가도 하청업체를 거치며 60만원 정도가 사라졌다.
한국서부발전과 용역계약을 맺은 하청업체에서 일했던 고(故)김용균씨도 그랬다. 원청이 용균씨 몫으로 준 직접노무비는 522만원이었지만 용균씨 통장에는 211만원만 입금됐다. 김씨를 고용했던 하청업체가 김씨의 월급보다 많은 311만원을 착복했기 때문이다. 불행한 사고가 터지고나서야, 많은 이들이 분노한 후에야 겨우 드러나는 중간착취의 민낯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용역업체는 노동자 1인당 노무비를 책정해 원청과 도급계약을 맺고 그 금액을 받지만, 노동자에게 그대로 지급해야 할 법적 의무는 없다. 노동자에겐 노동자와 맺은 근로계약서 상 임금만 주면 된다.
용역업체들은 ‘관리비’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원청과 계약 시 노동자 노무비, 경비, 일반관리비, 이윤을 모두 별도로 책정해 계약을 맺고, 그 금액을 받는다. 직접노무비는 100%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임금이며, 간접노무비는 4대 보험료의 회사부담분(근로자 임금의 9~10%)이다.
그럼에도 응당 노동자에게 돌아가야 할 월급에까지 손을 대 이윤을 극대화한다. 노동자들이 원청에서 받는 도급비의 사용내역을 요구하면 늘 ‘영업기밀’이라는 대답만 되풀이한다.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이 전년보다 1,060원(16.4%)이나 올라 역대 최고인상액을 기록한 2018년을 생생히 기억한다.
“최저임금이 오르니까 기본급이 오르잖아요. 도급 업체가 매달 주던 식대 10만원, 교통비 10만원을 없애더라고요. 결국 월급이 달랑 3만원 올랐어요.” (건강보험공단 콜센터 상담원 이경화(50)씨)
수당, 복지제도 등 노동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을 빼앗으면서도 거침없었다. 노조 결성 등 노동기본권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간접노동자들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원래 1년에 5일씩 유급 휴가를 줬어요. 그런데 2018년에 용역업체가 ‘내년부터 유급 휴가제도를 폐지한다’고 문자로 통보했죠. 이젠 하루라도 쉬면 월급에서 연차수당이 7만원 정도 빠져요.” 은행 경비원 임성훈(가명·36)씨가 말했다.
수당과 복지제도를 없애 더 뺄것이 없으면 근로시간을 줄인다. 일터에 머무는 시간과 일의 양은 똑같은데 ‘휴게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아파트 경비원.
“최저임금이 오를 때마다 휴게시간을 30분, 1시간씩 늘려서 지금은 24시간 근무 중 10시간30분이나 돼요. 근데 쉴 수도 없어요. 분리수거 해야되고 일 생기면 나가서 처리해요. 아파트 밖으로 나가는 것도 안된대요.” 아파트 경비원 김찬섭(가명·72)씨의 말이다. 용역업체들은 휴게시간이 무급인데다 상한이 없다는 점을 악용한다. 김씨의 지난해 월급은 전년보다 2만원 오른 183만원이었다.
용역업체들은 도급비는 공개하지 않은 채 “원청의 최저가 낙찰제 때문에 우리도 남는 게 없다” “원청이 도급비를 동결했다”고 항변한다. 이는 거꾸로 ‘인건비 따먹기’가 아니면 자생할 수 없는 용역업체의 실체를 보여준다. 독립적인 회사가 아닌, 임금을 착취해야만 유지되는 전형적인 ‘사람 장사’의 세계다.
“프로그램 개발자로 처음 일을 시작할 때였어요. 파견업체는 도급사에 저를 4년차 개발자로 소개했고, 월 450만원씩 받기로 했어요. 하지만 파견업체가 다달이 270만원씩 가져가고 저는 180만원만 받았어요.” 개발자 성모(30·남)씨의 말이다.
서울 구로, 가산 지역의 소규모 인력파견업체에서는 흔한 일이다. 정보기술(IT) 회사 간판을 달고 있지만 아무 전문성도 없이 사장 혼자 일하는 이런 회사들은 상위 단계 도급업체에 개발자를 파견한 후 인건비를 착취한다. 경력 뻥튀기, 면접비 요구 등도 서슴지 않는다. 성씨는 “신입 개발자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업체”라고 말했다. 개발자들은 이곳을 ‘IT 보도방’이라 부른다.
공장지대인 경기 안산 지역의 파견업체들도 마찬가지. 김연철(가명·60)씨는 안산의 생활용품 제조공장에서 일했다. “9년 동안 같은 공장에서 같은 일을 했는데 파견업체는 4번 바뀌었어요. 이 중 두 곳은 갑자기 폐업해서 월급이랑 퇴직금을 못 받았고요.”
회사 사정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파견업체들은 임금과 세금을 떼 먹기 위해 6개월~1년마다 폐업한다. 폐업 몇 달 전부터 노동자들의 4대 보험료와 부가가치세를 내지 않고, 임금 지급을 미루다가 폐업과 동시에 ‘한몫’ 챙긴다. 그리고 곧장 회사 이름과 대표자 이름만 바꿔 다시 파견업체를 차린다.
이런 ‘위장 폐업’은 숱하게 일어난다.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가 3년간(2018~2020년) 안산 지역의 파견업체 유지 현황을 조사한 결과 2018년 정부에서 허가 받은 파견업체 179개 중 118개(66%)가 1년만에 폐업했다. 2020년까지 유지된 업체는 27개(15%)뿐이었다. 이 외에 무허가가 의심되는 파견업체도 126개나 됐다.
중간착취 역사가 가장 긴 곳은 건설업. 다단계 하도급 관행이 뿌리 깊어 단계마다 돈을 뗐고 현장 노동자들은 적게 받거나 한 푼도 못받기 일쑤였다. 이에 정부는 공공 공사는 건설사가 노동자의 계좌로 임금을 바로 송금하도록 법제화(임금직접지급제)했고, 민간 공사에도 이를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건설 현장 전기작업팀에 들어간 최기영(가명·39)씨는 첫 날 팀장에게 월급통장을 줘야 했다. 건설업체와는 일당 20만원으로 근로계약서를 썼지만 팀장과는 일당 13만원으로 구두합의 했기 때문이다. 팀장은 기영씨의 통장에서 차액 7만원과 일당의 10%(1만3,000원)를 ‘세금’이라며 빼갔다. 결국 20만원 중 기영씨가 받는 건 11만7,000원뿐. 월급 중 200만원 넘게 가져가는 달도 있었다. 팀장은 다른 팀원 3명의 월급도 같은 방식으로 떼갔다.
“통장 주는 거 거부한 사람들은 팀에 들어왔다가 금방 나갔어요. 팀장은 작업보다 팀원들 월급에서 돈 떼서 이윤 남기는게 더 큰 목적인 것 같았어요. 타지에서 ‘노가다’하며 힘들게 사는 사람들의 주머니를 터는거죠.” 기영씨가 말했다.
건설업계에선 이런 중간착취를 ‘똥 떼기’라 부른다. 근로기준법 9조 위반이고, 형법상 금품갈취도 해당된다. 팀장의 통장에 송금하게 하면 금융 기록이 남기 때문에 노동자의 통장이나 체크카드를 자신이 보관하면서 흔적 없이 착취한다. 월급날이면 통장 여러 개를 들고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자기 몫을 출금하는 팀장들의 모습은 어느 건설현장에서든 어렵지않게 볼 수 있는 풍경이라고 한다.
매일 새벽 인력사무소에서 일을 구하는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시흥 정왕동에 있는 인력사무소에 다닐 때 일당 15만원 중 5만원을 떼갔어요. 그 동네에선 그게 평균이었어요. 그렇게 해도 일할 외국인이 많으니까요. 도저히 안되겠어서 더 일찍 일어나서 집에서 먼 안산역까지 가서 10%만 떼는 인력사무소를 다녔어요.” 일용직 건설노동자 이상진 (가명·33·남)씨가 말했다.
일당의 30%를 떼인 그에겐 ‘10%만’ 떼는 곳이 그나마 나은 곳이었지만, 둘 다 불법이다. 현행 법(직업안정법 19조)상 직업소개소가 구직자에게 받을 수 있는 수수료는 임금의 1%뿐이다. 노동력을 사용한 회사(구인자)로부터는 임금의 10%까지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직업소개소들은 '갑'에 받아야 돈을 '을'에게 받고 있다. 문상흠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노무사는 "노동력을 사용한 사업주한테 받아야 할 수수료까지 노동자한테 다 부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용역·파견업체, 직업소개소는 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부지런히 노동자들의 몫을 빼앗아간다. 그 집요한 착취는 일용직 노동자도, 10년차 은행 경비원도 피할 수 없다. 노동력을 사용하는 사람과 노동자 사이에 누군가 개입하는 순간, 착취는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인터랙티브] 중간착취의 지옥도 바로가기https://interactive.hankookilbo.com/v/indirect_la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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