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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반위 지휘자의 열손가락, 오케스트라를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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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현 클래식 평론가가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활동합니다. 경기아트센터에서 근무 중인 그는 공연계 최전선에서 심층 클래식 뉴스를 전할 예정입니다. 오페라에서 가수가 대사를 노래하듯 풀어내는 '레치타티보'처럼, 율동감 넘치는 기사가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새해에도 코로나19의 확산세는 줄어들지 않았다. 해외 아티스트들의 국가 간 이동은 여전히 제한되고 있다. 가장 심각한 영향을 받은 곳은 당연 오케스트라다. 오케스트라는 한 회 공연 제작비가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단원들의 2주간 체재비까지 고려하면 코로나 상황에서 공연으로 수익을 내긴 쉽지 없다. 이런 이유로 해외 오케스트라의 내한 사례는 지난해 2월 이후로 거의 없었다. 지난해 11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2주간의 자가격리 면제 조건으로 일본에 입국한 건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그래서 올해는 오케스트라보다 독주자들의 내한공연 비중이 늘 예정이다. 그 중에서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아닌 피아니스트로 돌아오는 마에스트로들이 눈에 띈다. 현재 특급 오케스트라들과 함께하는 세 명의 지휘자가 피아니스트로서 국내 무대를 찾는다. 정명훈, 다니엘 바렌보임 그리고 미하일 플레트네프가 피아노 앞에 앉아 관객을 만난다.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 기능을 꿰고 있는 지휘자들은 피아노에 대한 시선도 남다르다. 이들의 공연이 특별한 이유다.
피아노는 '악기의 왕'이라 불린다. 다른 악기들에 비해 표현력과 음역이 엄청나게 넓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아노 자체를 하나의 작은 오케스트라로 볼 수도 있다. 올해 해외 오케스트라를 만나긴 힘들지만, 지휘자들의 열 손가락을 통해 관객들은 작은 오케스트라를 만날 수 있게 된다.
우선 피아니스트 정명훈의 무대가 시작됐다. 정명훈은 이달 초부터 23일까지 KBS 1TV '숨터'에 출연해 피아노 연주를 한다. 정명훈은 지휘자로 유명하지만, 1974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등을 하며 피아니스트로 커리어를 먼저 시작했다. 정명훈이 본격적으로 지휘에 매진한 뒤로는 그의 피아노 연주를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정명훈은 트렌디하거나 현대적인 조형미를 부각하는 연주보다는, 자연스럽게 풀어낸 연주 그 자체가 예술이 되는 피아니즘을 가지고 있다. 음유시인과도 같은, 보기 드문 피아니스트다.
5월에는 다니엘 바렌보임의 피아노 리사이틀이 예정돼 있다. 바렌보임은 세계 최정상의 악단들을 지휘해왔으며, 내년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를 지휘할 정도로 현재 최고의 지휘자 중 하나다. 그 역시 피아니스트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바렌보임은 어린 시절 피아노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다. 전설적인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어린 바렌보임에게 베를린 필과의 협연 제안을 하기도 했다.
바렌보임은 이번 무대에서 베토벤 작품들만으로 무대를 꾸민다. 그는 베토벤 피아노 작품들은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품고 있다고 말해왔다. 단순한 피아노 작품이지만, 베토벤은 오케스트라 소리를 떠올리며 피아노곡을 작곡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케스트라에 대한 이해 없이 베토벤 피아노 작품을 연주하는 건 어렵다고 주장한다. 피아노 위의 왼손과 오른손이 때로는 다른 악기들을 연주해야 하는 것이다. 바렌보임이 연주할 베토벤 작품들을 살펴보면, 관객들은 오케스트라 소리를 찾아낼 수 있다. 바렌보임의 공연은 5월 19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끝으로 러시아 내셔널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는 미하일 플레트네프 역시 피아니스트로서 무대에 오른다. 그는 1978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까지 거머쥔 러시아 피아니스트였다. 플레트네프는 2006년 피아노 활동을 중지하고 지휘에 매진하기도 했지만, 2010년대에 들어 다시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는 피아노라는 악기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연주자이며, 시도와 변화를 거듭하며 끝없이 진화중인 예술가다. 최근 그의 피아노 연주는 차원이 다른 감수성과 상상력을 보여주며, 가장 시적인 순간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플레트네프는 음악가라면 지휘, 연주, 작곡 모두를 하나의 연결된 예술활동으로 여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거 모차르트나 베토벤이 이 모두를 아울렀던 것처럼. 플레트네프의 공연은 12월 4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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