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낳을 봄이 되려면 아직 두 달 이상 남았지만, 지금 우리 동네 이팝나무에는 한 쌍의 까치가 둥지를 짓고 있다. 까치가 집 짓는 일이야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유독 이 한 쌍의 까치가 내 눈길을 잡은 이유는 이들이 성공적으로 집을 지으면, 우리 동네 이팝나무에 최초로 입주하는 까치 부부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는 2006년경 빌라 단지 택지개발을 하면서 어린 이팝나무 150여 그루를 가로수로 심기 시작했다. 어린나무에 집을 지을 수는 없을 터, 우리 동네 까치들은 주로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오래된 중국단풍이나 대왕참나무, 메타세쿼이아의 높은 곳에 집을 짓고는 했다. 어린 이팝나무 가로수는 무럭무럭 자라 5월이면 온 동네를 하얗게 수놓고, 보라색 열매로 동네 새들의 배를 채워주더니, 드디어 까치의 집터까지 제공해주었다.
그런데 까치 부부의 건축 현장을 보고 있는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다. 그들의 둥지가 여느 까치집에 비해 낮았기 때문이다. 이팝나무는 아직 충분히 크지 않았다. 그런데 녀석들은 왜 낮은 이팝나무에 집을 짓고 있을까?
까치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짐작 가는 일은 있다. 1년 전, 우리 동네 아파트 단지는 '강전정'이라 부르는 가지치기를 했다. 옆으로 자란 가지를 모조리 잘라내 나무 기둥처럼 만든 것도 모자라 줄기의 윗부분까지 잘라 키도 낮춰 놓았다. 그 과정에서 많은 까치집이 철거됐고, 새로운 집터가 될 만한 곳도 사라졌다. 동네를 둘러보던 까치는 차마 정든 동네를 떠나지는 못하고, 길가 낮은 나무에 집을 짓는 것은 아닐까?
대장들녘은 김포공항 주변 농지 중 부천지역 약 3.4㎢의 농지를 말한다. 전국의 '시' 중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부천. 문화시설과 생활편의시설은 비교적 잘 갖춰져 있지만, 산림녹지비율과 불투수면적비율이 각각 13.6%, 61.7%로 전국 최하위 수준인 부천에 대장들녘은 숨통이었다.
대장들녘에는 겨울마다 천연기념물 재두루미가 찾아온다. 큰기러기와 각종 물떼새, 황조롱이, 새호리기, 원앙, 청둥오리 등 새들의 보금자리이며, 대표적인 멸종 위기 양서류인 수원청개구리와 맹꽁이, 금개구리가 모두 서식하고 있다. 대장들녘에 사는 법정 보호종 동식물만 30종이 넘는다. 서울과 인천 사이, 1,400만명이 사는 대도시지역에 이런 공간이 남아 있다.
대장들녘이 생태계의 보고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곳이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주변 땅에 건물이 들어설 때, 대장들녘은 자연과 함께 남아 있었다. 부천 시민들도 대장들녘을 사랑했다. 시민들은 자발적인 생태모니터링을 통해 대장들녘의 생태적 가치를 알렸다. 아이들과 함께 자연을 만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대장들녘에서 펼쳐졌다. 부천의 아이들은 대장들녘 덕분에 야생 조류, 곤충, 논생물을 가까이에서 만났다. 5월이면 제비가 집 짓는 모습을 관찰했고, 논에 우렁이를 방사하고, 별자리를 관찰하고, 논썰매장에서 썰매를 탔다.
하지만 대장들녘은 3기 신도시에 포함되면서 대장지구로 불렸다. 보통 개발제한구역을 해제할 때는 이미 훼손이 많이 되어 보존가치가 낮은 4,5등급의 개발제한구역이 대상이 된다. 대장지구는 면적의 99.9%가 개발제한구역이고, 그중 84.5%가 2등급 이상의 보존 가치가 높은 그린벨트다. 3등급까지 포함할 경우 그 수치는 92.2%로 올라간다. 이런 숫자에 아랑곳없이 주택난 해소를 위해 대량의 아파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서울과 가까운 곳에 넓게 펼쳐진 대장들녘을 개발의 적지로 생각했다. 개발제한구역이었지만 개발유보구역, 개발예정구역이었다. 많은 사람이 대장동의 개발을 반대하지만, 그들도 지금 결정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대장지구 기본 구상에 따르면 바람길과 기존 농수로를 최대한 살린 '친환경 신도시'가 건설될 전망이다. 친환경을 누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겠다. 재두루미는 친환경 신도시를 떠날 테지만.
우리는 다른 생명과 함께 살기 위해 무엇까지 할 수 있을까? 서울과 인천 사이의 넓은 농지를 그대로 두는 결정을 할 수 있을까? 하긴, 도시 나무의 가지를 남겨두는 것도 잘 못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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