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흑역사 쓰고 추락하는 소통령 트럼프

입력
2021.01.12 18:00
26면

의회 난입 사태로 국격 추락시킨 트럼프
홍콩시위대에 워싱턴 프레임 씌운 중국
성공한 정부평가 스펜스 기준 되새겨야


대선 결과 인증 반대 집회에서 연설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 연합뉴스

대선 결과 인증 반대 집회에서 연설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 연합뉴스


트럼프 지지자들의 지난 6일 의회 난입 사태는 국가 지도자의 품격과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주는 일대 사건이다. 같은 날 의사당 인근에서 열린 지지층 집회에서 트럼프는 "우리의 힘을 보여주자"며 시위대를 부추겼다. 현직 대통령이 미국 흑역사(黑歷史)의 배후가 된 참담한 현실 앞에 많은 미국인이 절망하고 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홍콩과 워싱턴에서의 공격은 반민주적이고 반법치주의라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논평했다. 관영 CCTV는 '세계적 망신'이라며 비웃었다. 중국 외교부 화춘잉 대변인도 "홍콩의 폭력 시위를 '아름다운 광경'이라고 묘사했던 미국 정치인과 언론이 오늘 미국에서 발생한 일에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이중성(?)을 꼬집었다.

중국 정부와 언론은 바야흐로 홍콩 문제에 '워싱턴 물타기'를 시도하는 중이다. 홍콩 시위대에 워싱턴 폭도 '프레임'을 씌우려 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은 똑바로 하자. 홍콩 시위대가 권위주의 정부에 맞서 화염병을 들었다면 워싱턴 폭도들은 민주적 선거 결과에 불복해 총을 들고 의사당을 공격한 범죄자들이다. 미국 민주당은 트럼프의 '내란 선동'에 대해 초유의 '퇴임 후 탄핵'을 추진할 뜻을 비쳤다. 하지만 추락한 국격은 어디서 어떻게 만회할 것인가.

미국 퓨(Pew) 리서치센터가 작년 가을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가 떠올랐다. 한국과 일본, 호주, 캐나다, 유럽 9개국 등 총 13개국 국민을 상대로 '미국에 대한 호감도'를 물었더니 모든 나라에서 전년 대비 많게는 27%p, 적게는 12%p 대미 호감도가 대폭락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트럼프 집권 이후 호감도는 이미 하향 곡선을 그리던 중이었다. 대미 호감도 1위인 한국(59%)에서 조차 전년 대비 18%p나 하락하였다.

미·중 커플링(coupling)일까? 이들 국가들의 중국에 대한 비호감도 또한 2019년에 비해 평균 12%p나 급상승하는 패턴을 보였다. 중국을 제일 싫어하는 나라는 일본(86%), 스웨덴(85%), 호주(81%), 한국(75%) 순. 시진핑 집권 이후 대중 비호감도는 상승했고 2020년엔 퀀텀점프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인의 대중 비호감도가 박근혜 정부때는 평균 43% 낮은 수준이었지만 현 정부들어 60%대로 수직 상승하더니 작년에 역대 최고치 75%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현 정부의 친중 정책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중국의 사드 보복과 외교적 무례, 우한 바이러스와 홍콩 탄압의 기억을 결코 지우지 않는, 뒤끝(?) 있는 민족임이 드러났다.

트럼프의 추락을 보면서 마이클 스펜스 뉴욕대 교수가 생각났다. 노벨상 수상자인 그는 저서 '넥스트 컨버전스(The Next Convergence)'에서 성공하는 지도자와 그의 정부는 아래 네 가지 기준을 충족시키는 놀라운 특성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첫째, 정부가 경제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가? 둘째, 지지자 그룹만이 아닌 국민 전체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일에 정부가 중요한 가치를 두고 있는가? 셋째, 정부가 능력이 있고 효율적인가? 넷째, 경제적 자유가 지금 존재하는가?

트럼프 대통령은 우선 둘째와 셋째 기준에서 탈락한 듯싶다. 지지자들의 소통령임을 자임했던 그는 새로운 미국 흑역사를 쓰고 추락했다. 중국의 경우 정부가 효율적인지 의문이다. 국유화 바람에 알리바바까지 떨게 만든 나라 아닌가. 경제적 자유는 공산당 체제와 양립 가능하지가 않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위 기준들을 얼마나 충족하고 있을까? 현명한 독자들이 냉철하게 한번 판단해 볼 일이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장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