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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빌딩숲으로 "닦고 쓸고 사라지는, 우리는 투명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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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와 경비원, 청소노동자가 스러질 때마다 정부·국회·기업들은 개선책을 쏟아냈다. 금방이라도 해결될 듯 보였지만 그들의 삶이 한 뼘이라도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일보가 고달픈 현장 노동자들의 삶을 심층 취재했다.
청소노동자가 하는 일은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규정된다. 직장인과 대학생이 출근하고 등교하기 전까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일처리를 마치고 조용히 사라지기 때문이다.
어떤 청소노동자에겐 죽음마저도 보이지 않았다. 한여름인 2019년 8월 9일 서울대 제2공학관 지하 1층 계단 옆 가건물 휴게실에서 청소노동자 A(67)씨가 잠을 자다가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 창문도 에어컨도 없는 휴게실 내부는 찜통이었다. 청소노동자 휴게실이 죽음의 공간으로 알려진 지 17개월이 지난 지금, 이들은 좀더 편히 쉬고 있을까. 하루 종일 우리 주변에 있지만 의식하지 않고선 한 번도 볼 수 없는 그들, 한국일보가 지난 5일과 7일, 8일 세 차례에 걸쳐 서울 여의도와 용산의 빌딩 그리고 마포와 목동의 아파트를 찾아 청소노동자들의 숨소리를 들어봤다.
어제 눈 치우다 미끄러질 뻔해서 오늘은 신발에 주방용 철수세미를 달고 나왔어. 이젠 미끄러질 염려도 없겠지.
여의도 소재 빌딩 청소노동자 김남문(가명·68)씨
영하 18.6도. 20년만에 가장 수은주가 낮았던 8일 새벽 4시, 김남문(가명ㆍ68)씨는 서울 독산동 정훈단지 버스정류장에서 첫 차를 기다렸다. 금방이라도 피부를 벗겨버릴 것 같은 칼바람에 11년째 매일 새벽 이곳을 지켰던 김씨조차도 '춥다'라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차고지인 석수역을 떠난 507번 파란색 버스가 새벽 4시 10분 도착했다. 버스는 이미 승객들로 만석이었다. 김씨처럼 50~70대 청소노동자와 경비노동자가 대부분이었다. 저마다 두툼한 외투에 털모자, 마스크를 썼지만 서로가 누군지는 금방 알아봤다. 김씨가 버스에 오르자마자, 뒷좌석에 앉아있던 여성은 “언니 안 무거워? 가방 나한테 줘”라며 김씨 가방을 들어줬다. 동이 트기 전에 달리는 첫 차는 정류장을 지날 때마다 마천루와 아파트를 향해 가는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을 태웠다.
고(故)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은 생전 새벽 5시 반까지 강남빌딩으로 출근하는 청소노동자들을 ‘투명인간’이라 지칭하며, 이들을 태우고 가던 '6411번 버스'을 언급한 적이 있다. 여의도 빌딩에도 투명인간들이 타는 '여의도판 6411번 버스들'이 있다. 김씨가 몸을 실었던 507번 버스도 마찬가지다. 김씨는 “507번 이외에도 구로에서 출발하는 5618번, 인천에서 출발하는 88번 첫 차에도 여의도 빌딩 청소노동자로 가득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의도 빌딩 청소노동자들의 출근길은 강남 빌딩 청소노동자들과 달랐다. 새벽 4시 32분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내린 김씨는 버스에서 내려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다. 김씨 뿐 아니라 다른 청소노동자들 역시 대림역, 구로디지털단지역 근처에서 삼삼오오 모여 택시를 잡는 게 다반사였다. 택시를 타는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김씨는 “버스를 타고 여의도 환승센터까지 가면 출근시간인 새벽 4시 50분까지 맞춰 갈 수 없다”고 답했다.
새벽 5시 이전 여의도 빌딩에 도착하는 택시는 대개 투명인간들이 타는 '품앗이 택시'다. 최저임금보다 고작 80원 높은 시급 8,800원을 받는 이들에게 시급에 준하는 택시비 7,000원은 1시간 무료노동을 의미한다. 여의도 청소노동자들은 택시비 한 푼이라도 아끼고자 주변 빌딩에서 일하는 동료들과 무리를 짜서 택시를 이용해왔다. 김씨가 탄 택시 역시 보라매병원 인근에서 잠시 멈췄다. 신림에서 온 이웃빌딩 청소노동자 주소분(가명ㆍ63)씨, 신대방에서 온 박경숙(가명ㆍ71)씨를 태우기 위해서다. 1분이 지났을까. 건너편 횡단보도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는 주씨와 박씨의 모습이 보였다. 종종걸음으로 김씨가 탄 택시 쪽으로 건너온 두 사람의 손에는 빨간 비닐봉지가 쥐어져 있었다.
(비닐봉지 가리키며)"언니, 오늘은 뭐 가져왔어?"
"라면"
"또 라면이야?? 다른 것도 좀 갖고 와. 애분(가명) 언니가 갖고 온 게 정말 맛났었는데..."
"그러게 말야. 그러고보니 올해부터 애분 언니 잘리고 없으니 택시 자리 하나 비는데 더 충원해야 하지 않아?"
"응... 구해야지. 한 달이면 1만원 넘게 더 들잖아. 소분아, 좀 알아봐줘. 근데 신입들은 어때?"
"걔들은 근로계약서에 출근시간이 6시라서 그때 출근한대"
"뭐? 그게 말이 돼?"
"내버려뒀어. 어차피 6시에 출근하면 직원들 출근할 때까지 다 해놓지 못할 게 뻔해. 그제서야 5시에 출근하겠지."
주씨의 말처럼 여의도 빌딩 청소노동자들 사이에는 근로계약서상에 적힌 출근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빨리 출근하는 게 관행으로 자리잡았다. 이른바 ‘공짜노동’이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1시간 공짜노동을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근로계약서상의 출근시간인 오전 6시에 나오면 금융인들이 출근하기 전까진 도저히 일을 끝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을 못 끝내면 어떻게 되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씨 등은 "금융회사 직원들의 볼멘소리가 들리고, 용역업체 역시 폭언과 욕설을 쏟아낸다"고 입을 모았다.
최모(76)씨가 최근 해고된 이유도 ‘공짜노동’을 견디지 못해서다. 최씨는 “20년 넘게 여의도 빌딩에서 청소하는 동안 용역업체가 8번 바뀌었지만 업체가 바뀌어도 출근시간은 (근로계약서상의 6시와는 달리) 늘 새벽 5시였다. 그런데도 빌딩 사람들이 일언반구 안 한 걸 보면 그들도 책임이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여의도의 다른 금융회사 빌딩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 이모(72)씨 역시 '공짜노동'의 희생양이었다. 이씨는 심지어 계약서에 명시된 연차 13일도 전혀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해 용역업체로부터 연차를 안 써도 수당을 안 받겠다는 각서 제출을 강요받았던 탓이다. 이씨는 “청소직이 고령자들이 일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자리라는 점을 악용해, 거리낌 없이 부당 대우를 이어가고 있다"며 씁쓸해했다.
이들의 노동강도는 살인적 수준이었다. 새벽 5시 작업복을 입은 김씨의 일과는 18층 사무실 창문을 열고 밤새 꽉 찬 쓰레기를 수거하면서 시작됐다. 빌딩 내 쓰레기통을 모두 비우기만 해선 안 된다. 분리수거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1시간 정도를 들여 분리배출을 끝내면 화장실 청소가 기다리고 있다. 직원들이 양치하러 오기 전에 서둘러 끝내야 한다는 생각에 김씨는 고무장갑도 끼지 않은 채 물청소를 마무리하고 휴지를 교체했다.
하나의 업무가 끝나면 다른 업무가 다가왔다. 화장실 청소를 끝낸 김씨는 빨간 리스킹 걸레로 바닥 먼지를 쓸어냈다. 김씨는 “직원들 있을 때 청소하다가 기름왁스에 미끄러질뻔한 사건이 있었다. 이후에는 용역업체가 출근 전에 끝내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바닥 청소를 마친 김씨는 유리에 묻은 손자국과 엘리베이터 8대의 먼지를 닦아냈다. 마지막으로 탕비실을 정리하는 걸로 출근업무를 마무리하고 오전 8시반부터 10시까지 휴게시간에 돌입했다. 이 모든 일과가 여의도 빌딩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까지 아무도 모르게 이뤄져야 한다.
오전 10시 이후에도 김씨 업무는 쳇바퀴 돌듯 똑같았다. 근로계약서상으론 오전 11시까지 일하고 오후 1시까지 휴게시간이지만, 닦아도 닦아도 금방 더러워지는 화장실 청소, 핸드타월 교체, 거울에 묻은 물때를 지우는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금세 정오를 넘기기 일쑤다. 복도 양끝 계단 청소는 덤이었다. 결국 김씨는 직원들 점심시간에 아무도 모르게 청소한 뒤 낮 12시 20분이 돼서야 일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무려 1시간 20분 가까이 휴게시간에 일을 한 것이다. 김씨는 “내가 베테랑이라 그나마 40분 쉴 수 있는 거지, 다른 친구들은 1분도 못 챙겨먹을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김씨는 오후 1시부터 퇴근시간인 오후 3시 30분까지 똑같은 업무를 반복하고 퇴근할 수 있었다.
이처럼 원청의 눈치와 하청의 갑질 사이에서 김씨와 같은 청소노동자는 ‘공짜노동’ 속에 살아야 했다. 김씨의 하루를 동행한 결과, 근로계약서에 적힌 근로시간과 휴게시간은 각각 6시간과 3시간 30분이지만, 실제론 8시간 20분과 2시간 10분이란 사실을 확인했다. 김씨는 한 달 평균 50시간을 공짜노동 했는데, 임금으로 환산하면 44만원에 달한다. 김씨가 이렇게 주5일 일한 대가로 받는 월급은 136만원(세후기준)이었다.
고된 노동에도 청소노동자들은 잠시나마 몸을 누일 수 있는 휴게공간조차 변변치 못했다. 비상구 옆에 파란색 페인트로 칠해진 문짝을 열자 1.6㎡(0.5평) 남짓한 공간에 김씨가 누워 있었다. 스티로폼에 전기장판과 전기밥솥이 있는 비좁은 공간, 김씨만의 휴게실이었다. 김씨는 “각 층의 폐창고를 개조해 휴게실을 만들었다”며 “지하 공동휴게실은 너무 비좁고 냄새 나서 차라리 지상의 창고를 쓰는 게 낫다”고 말했다.
청소노동자를 투명인간처럼 대하는 자세는 바이러스 앞에서 더욱 도드라졌다. 지난해 서울 용산구의 B빌딩 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건물 전체가 일시 폐쇄될 때, 청소노동자들은 폐쇄 사실을 다른 직원들보다 몇 시간이나 늦게 접했다. 청소노동자 이모(52)씨는 “그것도 관리자가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 들었다. 우리는 건물이 더러워져야 생각나는 존재인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B빌딩 청소노동자가 겪어야 했던 부당한 대우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난해 건물 엘리베이터에 직원이 갇히는 사고가 두 차례 발생했지만, 사고를 당한 직원 소속에 따라 용역업체의 대처는 완전히 달랐다. 빌딩 직원이 엘리베이터에 10분 동안 갇혀 있었을 당시 업체에선 직원에게 꽃다발을 보내며 위로를 표했지만, 청소노동자가 한 시간 가까이 갇혔을 때는 한 마디 위로도 없었다. 사고를 당했던 청소노동자는 트라우마로 폐쇄병동에서 수 개월 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지 못했다.
겨울에는 걸레가 얼어서 바닥을 닦을 때도 힘이 더 들어. 휴게실에서 쉴 때도 너무 추워서 쉰 것 같지도 않고.
양천구 소재 아파트 청소노동자 이모(72)씨
서울 양천구 아파트단지 청소노동자 이금순(가명·72)씨의 휴게실은 아파트 지하 1층에 있다. 작은 백열등 전구 하나가 유일한 빛인 휴게실에서 이씨는 천장 배관에서 물이 지나가는 소리를 벗삼아 점심을 먹고 쪽잠을 청한다. 도색조차 하지 않은 시멘트 벽면에서 찬바람이 새어 들어와 휴게실 내부는 영하의 추위에 그대로 노출됐다. 기자와 인터뷰 하는 동안 이씨 입에선 하얀 입김이 계속 나왔다. 이씨가 일하며 누리는 '유일한 복지'는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온수뿐이다.
결국 옥상 아니면 지하였다. 빌딩처럼 아파트와 대학 청소노동자들이 머무는 공간 역시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서울 마포구 주상복합단지 청소노동자 서금숙(가명·74)씨의 휴게실은 주차장 옆에 붙어 있었다. 청소노동자 9명이 앉으면 꽉 차는 평상에서 이들은 각자 가져온 반찬으로 식사를 한다. 서씨는 "식대비랑 주휴수당도 없어서 집에서 반찬을 공수해온다"고 말했다.
용역업체의 갑질로 이들에겐 휴가도 주어지지 않았다. 업체는 입주민이 여행을 떠나고 없는 성수기인 여름에만 2박 3일로 휴가를 가도록 강요했다. 청소노동자 한미숙(가명·58)씨는 "지난해 10월 딸 결혼식이 있었는데, 관리소장에게 사정해서 간신히 쉬었다"고 말했다.
2019년 8월 서울대 청소노동자 A씨가 사망한 뒤, 대학 내 휴게실 개선작업이 이뤄졌지만 여전히 땜질식 처방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동국대 1층 계단 밑 휴게실은 입구 높이가 1m 남짓 밖에 되지 않아 머리를 부딪히기 일쑤였다. 충격을 완화하고자 스티로폼을 붙여놨지만, 청소노동자들이 오가며 머리를 박아 스티로폼 일부가 떨어진 흔적이 역력했다. 옥상 휴게실 역시 여름에 빗물이 새서 한 달 가까이 이용을 못했다. 학교에서 석고를 발라 보수작업에 나섰지만 한겨울 추위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동국대에 일하는 한 청소노동자는 "학교 측이 휴게실 개선작업에 나서고 있지만, 속도가 너무 더뎌 이번 겨울에도 추위에 시달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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