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만화방, 교육환경 유해시설로 단정 못 해"

입력
2021.01.10 14:3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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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인근 영업 금지 처분에 '부당' 판결
"폭력·선정물이 유해할 뿐... 별도 규율로 족해"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행정법원·가정법원 청사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행정법원·가정법원 청사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만화책방이 학생들에게 유해한 시설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학교 인근 영업을 무조건 금지하는 건 부당하다는 취지다.

10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부장 김국현)는 서울 서대문구의 A만화대여점을 운영하는 B사가 서울시 서부교육지원청 교육장을 상대로 “교육환경환경보호구역 내 금지행위ㆍ시설 제외 불허 처분을 취소해 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2018년 3월 서부교육지원청은 민원 제보에 따른 조사를 거쳐 A대여점이 한 초등학교의 경계로부터 103m, 출입문에선 147m 지점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교육환경법상 학교 경계에서 200m까지인 교육환경보호구역은 절대보호구역과 상대보호구역으로 나뉘는데, A대여점은 상대보호구역에 위치해 있다. 서부교육지원청 교육장은 A대여점 측에 “즉시이전이나 폐업, 업종전환 등을 하라”고 지도했다.

A대여점을 총괄 운영하던 직원 C씨는 같은 해 4월, 교육장에게 “금지 대상에서 빼 달라”고 신청했다. ‘만화대여업은 상대보호구역에서 지역위원회 심의 등을 거치면 예외적으로 영업이 가능하다’는 관련 법 조항을 근거로 내세웠다. 하지만 ‘학습과 교육환경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불허됐고, C씨는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모두 기각됐다. 2019년 9월엔 B사가 동일 취지의 신청을 했으나 마찬가지로 불허 결정이 났다. B사는 다시 행정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1999년 만화대여업이 풍속영업에서 제외된 점을 들어 “만화나 만화대여업이 그 자체로 유해하다고 볼 근거가 없다”며 “폭력성, 선정성이 수반되는 일부 만화가 유해할 뿐인데, 이는 별도 규율로 족하다”고 밝혔다. 또, 지난해 11월 정부가 교육환경법에서 ‘보후구역 내 만화대여업 제한’ 부분을 삭제한 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이런 인식의 변화가 이 사건 심의과정에도 반영되는 게 옳다”고 설명했다. 과거처럼 책 형태만이 아니라, 지금은 온라인 웹툰 형태로도 만화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원고의 영업이 학생들의 학습과 교육환경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단정할 수 없어, 영업이 계속될 수 있도록 하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영업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와 재산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고 강조했다.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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