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당 난입 트라우마 극복하는 美 공동체 교육의 힘

입력
2021.01.10 14:0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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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 챌린지호 폭발 같은 트라우마 우려
美 학교 '사실 직시, 대책' 두고 토론·교육 활발

8일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의 난입 당시 진압에 나섰다가 숨진 경찰관을 애도하는 조기가 게양돼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8일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의 난입 당시 진압에 나섰다가 숨진 경찰관을 애도하는 조기가 게양돼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미국인들은 2001년 9ㆍ11 테러로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에 비행기가 부딪히고, 건물이 무너지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당시 테러는 첫 공격 후 계속 TV로 생중계됐다. 한국인의 세월호 ‘트라우마’처럼, 9ㆍ11 테러 순간 자신이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다가, 누구와 함께 그 장면을 지켜봐야 했는지가 미국인 마음 속마다 상처로 남아 있는 것이다. 미국인이 이런 충격과 슬픔에 빠졌던 기억은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지호가 발사 직후 폭발한 순간,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지난 6일(현지시간) 워싱턴 국회의사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 시위대에 유린당한 날도 추가될 것 같다. 1776년 미국 건국 이후 1814년 미영전쟁 중 영국군이 의사당을 점령해 불태운 일 외에는 이 같은 충격적인 사태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상처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공동체와 교육의 힘이 작동하는 셈이다.

9일 USA투데이에 따르면 미국 전역 학교에서는 의사당 사태 이후 교사와 학생 간 토론, 수업 등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번 사건 같은 트라우마의 충격은 오래 간다. 아이들의 걱정을 줄여주고 트라우마의 충격에 완충 역할을 하는 건 이런 일을 걱정하는 어른들과의 강한 유대관계 유지가 핵심”(애슐리 크로프트 캘러리 테네시주 잉글우드 초등학교 교장)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교사들의 공통된 지적은 있었던 일을 사실 그대로 확인하고 학생 주도로 토론하는 과정의 중요성이었다. 데이비드 존슨 뉴욕 냑크중 교장은 “이번 사태가 ‘시위’인지, ‘반란’인지 용어를 정의하는 것부터 학생들이 스스로 결정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또 머리로 알기 전에 마음으로 느끼기, 편견을 갖지 않되 인간이란 존재의 취약성 자체는 인정하기, 앞으로 이런 역사적 사건을 어떻게 다룰지 고민하기 등의 조언도 나왔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만약 흑인 시위대가 의사당을 공격했다면 총에 맞았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고, 폭력을 규탄하는 정치인들의 행동을 높이 사는 발언도 있었다고 교사들은 전했다. 교사 조엘 코빙턴은 “이번 일을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 발생 수업과 연계해 가르칠 계획”이라며 “미래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수 있을지 배울 것”이라고 소개했다.

아이들이 다니는 버지니아주 초등학교에서도 의사당 사태 다음날 이런 이메일이 왔다. “분열, 분노, 공포라는 지금의 기류는 우리 모두에게 심대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이들을 지원하고 있겠지만, 아이들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학교도 지원을 할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는 강건하고, 이 힘든 시기를 함께 극복해낼 것입니다.” 폭도에게 민주주의의 상징은 뚫렸지만 아직 이런 공동체 정신이 살아 있어 미국은 무너지지 않는 것 같다.

워싱턴= 정상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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