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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노동자 65~69세로 찾는 이유, 알고 나면 씁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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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와 경비원, 청소노동자가 스러질 때마다 정부·국회·기업들은 개선책을 쏟아냈다. 금방이라도 해결될 듯 보였지만 그들의 삶이 한 뼘이라도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일보가 고달픈 현장 노동자들의 삶을 심층 취재했다.
고령 임시 계약직 노동자의 실태를 고발해 화제를 모았던 책 '임계장 이야기'는 경비원과 같은 노년층 노동의 팍팍함을 압축적으로 담았다. 책 속에 등장하는 ‘임계장’(임시 계약직 노인장)과 ‘고다자’(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너무 쉬운)는 경비노동자의 고단함을 보여주는 상징적 표현이다. 지난해 베이비붐 세대의 맏형격인 1955년생 은퇴자를 시작으로 노년층이 생계비 마련을 위해 대거 노동시장에 뛰어들면서 ‘임계장’과 ‘고다자’는 이제 일상 속 이야기가 돼버렸다.
노년층 노동시장의 일자리 수요·공급이 붕괴된 상황에서 최근 경비노동자 시장에선 65~69세 남성들이 ‘황금나이’로 떠오르고 있다. 여성 중심으로 구성된 단순노무직 노년 일자리 시장에서 남성 노년층이 4대보험(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일자리는 경비 노동자가 거의 유일하다. 이처럼 경비 노동자를 희망하는 남성 노년층이 넘쳐나면서, 일부 입주민과 용역업체는 ‘고다자’에 적합한 연령층을 쉽게 골라내고, 마음에 들지 않는 노인들은 가차 없이 잘라내고 있다.
경비노동자에게 60대와 70대는 고용연장과 해고를 가르는 기준이 될 때가 많다. 한국일보가 한 달 동안 대면 인터뷰한 경비노동자 100명 가운데 계약종료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해고된 경비노동자 31명의 평균 나이는 74.7세였다. 반면 재계약에 성공하거나 고용승계가 이뤄진 경비노동자 69명의 평균연령은 67.4세였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에서 15년 동안 경비노동자로 근무했다가 해고된 김필두(가명·75)씨는 “용역업체가 바뀌면서 입주민들이 70대 경비노동자는 안 뽑고 싶다고 해서 고용승계가 이뤄지지 못했다”며 한탄했다.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은 "실제로 경비노동자 실태조사에 나서보면 평균연령은 65~70세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입주민과 용역업체에서 70대를 선호하지 않는 이면엔 산재 위험을 덜기 위한 목적도 있다. 서울 노원구 소재 아파트에서 근무하는 최모(66)씨는 “근로계약서에는 휴게시간을 8시간으로 정해놓고, 실제론 5시간만 운영한다고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의결했다. 하루에 19시간이나 일해야 하지만, 그나마 60대라서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 버티고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60대가 모두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비용문제 등을 따지다 보면 60대 초반은 60대 후반보다 선호도가 조금 떨어진다. 국민연금은 60세 미만, 고용보험은 65세 미만 노동자를 채용할 경우 사업주가 각각 임금의 4.5%와 1.05%를 부담해야 한다. 이 비용을 아끼기 위해 경비노동자 시장은 국민연금·고용보험 가입 자격이 안 되면서, 산재 부담도 덜 수 있는 65~69세 노년층을 가장 선호한다.
'임계장'과 '고다자'라는 불안한 고용형태가 경비노동자를 몰아붙이는 현실에서, 이들의 노동인권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서울 성북구 노동인권센터 관계자는 “고용노동부 집계상 생계비를 위해 노후에도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노년층의 실질 은퇴연령은 평균 72.1세에 달한다. 경비 노동자를 쉽게 고르고 쉽게 자르는 상황이 고착화되면, 입주민과 용역업체 부조리에 침묵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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