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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순의 '불미한' 말장난

입력
2021.01.07 18:00
수정
2021.01.07 18:3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남인순 캐리커처. 배계규 화백

남인순 캐리커처. 배계규 화백

국립국어원 발행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불미(不美)하다’의 뜻을 찾아 봤다. 혹시 남녀 사이의 일을 두고 ‘불미스럽다’고 할 때 범인(凡人)들이 떠올리는 상황이 틀린 것일까 해서다. 다른 뜻은 없는지도 궁금했다. 의미는 ‘아름답지 못하고 추잡한 데가 있다’다. 사전은 ‘불미스럽다’의 첫 예시문으로 ‘남녀 간의 불미스러운 관계’를 적시하고 있다. ‘추잡’은 ‘말이나 행동 따위가 지저분하고 잡스럽다’는 뜻이니, 일반의 생각이 과히 틀리진 않아 보인다.

□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야당과 여성계로부터 난타를 당하고 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피소 예정 사실을 서울시에 알린 의혹에 대한 해명 때문이다. 그는 박 전 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날 서울시 젠더특보에게 “시장 관련 ‘불미스러운’ 얘기가 도는 것 같은데 무슨 일 있느냐”고 물은 게 전부라며 사건 내용은 들은 바 없다고 강변했다. 검찰 발표 6일 만의 해명치곤 어쭙잖고 군색하기 이를 데 없다.

□ 피해자 변호인이 여성단체 대표에게 ‘고소 예정 사실’을 알리고 ‘지원 요청’을 한 게 시작이다. 그리고 남 의원 연락을 받은 특보는 박 전 시장에게 “피해자 ‘고소가 예상’되고, 여성단체와 함께 공론화할 예정”이라고 보고했다. 남 의원의 선과 후 모두 ‘성폭력 피소’를 가리키는데 남 의원만 ‘불미스러운 얘기’로 둘러대며 성폭력 피해나 ‘피소’를 몰랐다고 발뺌하니 “담배는 피웠으나 연기는 안 마셨다?” ’피소’는 몰랐고 ‘피소 예정’은 알았다? 둘이 다르냐”는 조리돌림을 당하는 거다.

□ 남 의원은 여성운동 경력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하지만 그는 여성 인권, 성폭력 피해자 보호보다 정치인으로서 기득권 지키기에 더 급급한 듯하다. 그는 입장문에서 피해자에게 ‘고통에 공감하고 위로를 드린다’고 했을 뿐 사과는 하지 않았다. 사과가 피소 내용 유출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판단했음직하다. 지난해 7월 민주당 여성의원들의 사과 성명 발표 당시 남 의원이 ‘피해 호소인’ 표현 사용을 주도했다니, ‘여성계 대모’라는 수식이 부끄럽다. 남 의원은 정치 입문의 초심을 돌아보기 바란다.

황상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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