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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자궁이 나오면 누가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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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고 낯선 과학책을 수다 떨 듯 쉽고 재미있게 풀어냅니다. ‘읽어본다, SF’를 썼던 지식큐레이터(YG와 JYP의 책걸상 팟캐스트 진행자) 강양구씨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8년 전, 나와 아내는 한 동네 산부인과 병실에서 얼굴이 사색이 된 채 고민에 빠져 있었다. 아직 26주밖에 안 되었는데 배 속 아이가 세상으로 나오려는 통에, 아내는 이미 일주일간 그 효과가 미지수인 진통을 멈추는 약을 계속 맞는 상황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조산의 위험을 맞닥뜨린 나는 일주일간 동분서주하면서 온갖 정보를 수집했다.
그날 우리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한 가지 선택지는 설사 아이가 일찍 태어나도 “살려는 준다”고 자신하는 용한 의사들이 모여 있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이었다. 또 다른 선택지는 조산을 막는 데에 요령이 있다는 한 여성병원이었다. 어디를 선택하든 아이 그리고 우리 부부의 운명이 불확실하긴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일찍 태어난 아이라도 살릴 가능성이 커지는 23~24주는 지난 상태였다. 그러니 첫 번째 선택으로 아이가 살 수는 있었다. 하지만 평생 감당해야 할 장애를 가질 가능성이 있었다. 반면에 두 번째 선택으로 운이 좋다면 제대로 임신 기간을 채워서 아기를 낳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아기가 빨리 태어나면 장애를 안거나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다.
제니 클리먼의 ‘AI 시대, 본능의 미래’를 읽으면서, 8년 전의 이 난감했던 선택의 순간이 자꾸 떠올랐다. 특히 과학기술이 우리의 ‘탄생’을 어떻게 바꿀지를 묘사한 세 번째 장에서 그랬다. 이 장에서는 엄마의 자궁을 고스란히 흉내 낸 인공 자궁 이야기가 나온다. 이미 사람으로 치면 임신 23~24주의 새끼 양을 인공 자궁 안에서 키워냈다.
조산으로 아이를 잃은 적이 있는 저자가 인공 자궁을 들여다보는 마음은 복잡하다. 이런 인공 자궁으로 목숨을 잃거나 장애를 가질 수많은 조산아를 살리고 또 건강하게 키울 수 있으니 반가운 일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인간의 탄생 과정을 과학기술에 맡길 때 생길 수 있는 여러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예를 들어, 지금도 미국 캘리포니아의 고급 난임 병원에서는 임신으로 경력을 망치기 싫거나 몸매를 망가뜨리기 싫은 부유한 여성과 대리모를 연결해주는 사업이 성행한다. 체외 수정으로 배아를 만든 다음에 대리모의 자궁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다. 당연히 대리모는 돈이 필요한 가난한 여성이다. 돈만 있으면 출산까지 아웃소싱하는 세상!
만약 인공 자궁이 임상 시험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나서 상용화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한쪽에서는 여성이 출산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기회라고 환호하는 사람이 있다. 여성 혐오주의자 중에도 출산에서 여성을 배제할 수 있게 되었다면서 쾌재를 부른다. 남성 동성애 커플이 인공 자궁의 도움으로 아이를 쉽게 가질 수 있게 되리라고 기대하는 사람도 있다.
저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일이 이렇게 전개될 수도 있다. 지금도 여러 불가피한 이유 때문에 임신이나 출산이 어려운 여성이 있다. 만약 이 과정을 인공 자궁 같은 과학기술에 아웃소싱할 수 있다면, 되레 여성의 모성 신화가 강화되지 않을까. ‘어차피 뱃속에서 아이를 키울 것도 아닌데 왜 애를 안 낳아?’ 같은 사회적 압박이 없을까.
‘가디언’ 기자 출신의 저자는 원제(“Sex Robots and Vegan Meat”)에서 알 수 있듯이 탄생 외에도 과학기술이 섹스(섹스 인형), 식량(배양육), 죽음(안락사) 같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삶의 모습을 어떻게 바꿀지를 놓고서 지금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추적한다. 짐작대로, ‘섹스’ ‘식량’ ‘죽음’을 다룬 장은 ‘탄생’보다 훨씬 더 호기심을 자극한다.
덧붙이면, 8년 전에 그토록 어려운 선택을 강제하면서 애를 태웠던 아이는 다행히 40주를 거의 채우고 무사히 세상에 나왔다. 그 아이가 40대가 되면(2050년대) 정말로 도축장에서 잡은 돼지고기가 아니라 공장에서 정성껏 배양한 삼겹살을 먹고 있을까? 연애 상대는 인간일까, 로봇일까? 결국,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과학책 초심자 권유 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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