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취향 따라 세계 책방
“세상은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은 자는 단지 한 페이지만 읽은 것일 뿐.” 성 어거스틴의 말을 곱씹는다. 해외여행이 불가능한 시대, ‘집콕’ 생활에서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책장을 넘기는 일이다. 책이 있어서 편안하고, 분위기까지 좋았던 여행지 4곳을 골랐다.
여행 와서 또 여행, 프랑스 파리 ‘보야져드몽드(Voyageurs du monde)’
낯선 여행지일수록 지도가 절실하다. 와이파이도, 5G도 안 터지는 곳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여행 관련 ‘희귀템’을 찾고자 한다면 이곳이 제격이다. 서점 이름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세계여행자’다. 여행의, 여행에 의한, 여행을 위한 책방이다. 나라별 특색을 정리한 책자를 몽땅 모아 놓았다. 여행 가이드는 물론 음식, 역사 등 각국의 문화를 깊이 있게 다룬 서적과 지구본까지 망라했다. 여행 정보를 얻는 것에 그치지 않고, 관심 있는 나라에 대한 지식까지 넓힐 수 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해외에서 여행지로서 한국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지가 흥미롭다. 한국을 어떤 나라로 묘사하는지 또는 어느 곳을 추천하는지를 살피며 일상도 여행하듯 살리라는 개똥철학을 품어 본다. 서점을 나올 때는 또 다른 여행의 버킷리스트를 꿈꾸게 된다.
책 보다가 딴짓, 태국 방콕 ‘오픈하우스(Open house)’
엄밀히 말하면 책방과 레스토랑, 카페와 문구점을 겸한 콤플렉스 공간이다. 은밀히 말하면 심리를 활용한 지능적인 문화공간이다. 자꾸 딴짓을 하게 된다. ‘책을 보다가’ 커피를 마시고 ‘책을 보다가’ 문구용품을 사게 되니까. 부티 나는 센트럴엠버시 쇼핑몰의 6층, 빛이 발끝까지 들어오는 높은 층고가 매력적이다. 핵심은 그래도 책이다. 중심에서 벽면을 거쳐 다락방 서재에 이르기까지 책이 노랫가락처럼 퍼져 나간다. 디스플레이 실력도 벤치마킹하고 싶은 수준이다. 한 쪽에는 학구열을 불태울만한 공동작업 공간도 마련돼 있다. ‘오픈하우스’라는 이름이 기막히다. 공간만 열려있는 게 아니라 마음을 열어젖히는 기술이 있으니까. 책방 구경 갔다가 희귀 붓을 사 왔다.
고서로 만든 비밀의 숲, 독일 하이델베르크 ‘앤티쿼리아트 하트리(ANTIQUARIAT HATRY)’
책방의 가치가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엄선된 양서의 구비로 나뉜다면, 이곳은 전자에 가깝다. 책으로 만든 비밀의 숲, 21세기에 만나는 고서의 성지다. 건축 면에서 이미 베일에 싸여 있다. 외관상 단층처럼 보이지만, 실내로 들어가면 지하와 지상 각 2층으로 똬리를 친 계단이 나타난다. 불량한 듯 보이지만 질서 있게 놓인 책을 요리조리 피해 걸었다. 삐거덕거리는 계단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비밀을 탐사하는 책벌레가 된다. 족히 20만권은 소유하고 있을 법한 이 공간의 또 다른 비밀은 큐레이터의 천리안. 원하는 책을 문의하면 머뭇거림 없이 즉각적으로 답한다. “코너를 돌아 왼쪽에 첫 번째로 쌓인 책 가운데 있어요.” 세계 8대 불가사의에 등록하고 싶어졌다.
책과 사람의 소통,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아메리칸 북센터(The American Book Center)’
가끔은 내가 있는 장소가 나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이곳 ABC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 누구보다 감각적이라고 허세를 부리게 된다. 서점의 3층 내부를 시원하게 관통하는 통나무의 정기 때문일까, 나무 계단을 따라 뱅뱅 둘러 안착한 아트북의 곡예 때문일까. 아니면 표지만으로도 반하는 책의 매력 때문일까. 각각의 책이 텅스텐 조명 아래 정확히 진열돼 있다. 큐레이터의 병적인 정리 습성이 엿보인다. 1972년 영어권 할인 책방으로 시작해 책과 사랑에 빠진 고수가 스태프로 활동한다. 독립 서적을 중시하기 때문에 이곳을 통해 작가 등용의 꿈을 실현할 수도 있다. 덕분에 책을 빙자해 현지인과 이런저런 말을 섞게 되는, 여행의 또 다른 묘미를 기대해도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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