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산재로 죽어가는데 사면 얘기?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입력
2021.01.05 19:30
수정
2021.01.05 21:46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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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산재 유가족 김미숙·이용관씨?
중대재해법 제정 단식농성 26일째
경영진 처벌조항 완화안 여야 잠정합의

5일 국회 본청 앞에서 단식 농성 중인 이용관(왼쪽)씨와 김미숙(오른쪽)씨. 이성택 기자

5일 국회 본청 앞에서 단식 농성 중인 이용관(왼쪽)씨와 김미숙(오른쪽)씨. 이성택 기자

5일 국회 본청 앞 야외 농성장.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하며 26일째 단식 농성을 하는 산업재해 사망자 유가족들이 의지할 것이라곤 꽝꽝 언 생수병 묶음, 그리고 전기 장판뿐이었다. 농성장과 국회 본청 건물을 잇는 전깃줄이 ‘민의의 전당’이 이들에게 베푼 한 가닥 호의였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오는 8일 본회의를 열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통과시키겠다고 발표했지만, 농성 참가자들의 불안감은 가시지 않는다. 재계 단체들이 잇달아 거대 양당을 만나 ‘기업 활동을 옥죄는 과잉 입법’이라며 중대재해법 처벌 완화와 처리 연기를 요구하고 있어서다.

처벌이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법 제정을 앞두고서야 ‘처벌보다 예방이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그리고 정부와 국회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재 사망률 1위 국가'의 기록을 쓰는 동안 어떤 예방 활동을 했는지 농성 참가자들은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농성 참가자들이 마실 생수병이 영하의 날씨에 꽁꽁 얼어 있다. 이성택 기자

농성 참가자들이 마실 생수병이 영하의 날씨에 꽁꽁 얼어 있다. 이성택 기자

지난달 11일 농성을 시작해 농성장에서 새해를 맞은 유가족 목소리를 들었다. 단식 농성을 지원 중인 배진교 정의당 의원을 통해 유가족의 양해를 구했고, 유가족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 방역 수칙을 지켜 짧게 인터뷰 했다.

방송사에서 일하다 2017년 사망한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인 이용관(65)씨. '법안 심의 일정이 촉박한 졸속 심사'라는 우려에 대해 그는 "매일 산재 사고가 발생하고 추위 속에서 농성을 진행 중인데 국회의원들이 크리스마스와 신정에 쉴 것 다 쉬고 이제 와서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단식으로 수척해진 얼굴을 타고 자꾸만 흘러내리는 마스크를 연신 쓸어 올리면서다. 중대재해법을 다루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는 지난달 29, 30일 소위원회를 연 뒤, 엿새 만인 5일 소위를 재개했다.

-국회가 절박하지 않다고 보시나요.

“(의원들) 자식이 죽었으면 이럴 수 있을까요. 1년에 2,000여명이 산재 사망으로 죽는데, 일가친척까지 하면 고통 받는 사람이 매년 수만명에 이릅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남의 나라 이야기로 보는 것 같아요.”

-재계 단체들은 ‘과잉 입법’이라고 걱정합니다.

“사람을 기계 부품으로 보는 게 아니겠어요?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도 SH 사장 시절에) 산재 사고 난 뒤에 ‘운이 나빴다’는 식으로 말하잖아요. 그러다 문제가 되면 형식적으로만 사과하고….”

-'재해 예방이 더 중요하다’고도 합니다.

“안전 설비를 하려면 돈도 들고 시간도 들고 하니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 같아요.

-새해 소망이 있으시다면요.

“법이 통과 되는 때부터가 저한테는 새해입니다. 아직 새해가 안 왔어요. 정말 새해가 오면 이번에는 살아 있는 노동자의 인권 문제를 개선하고 싶어요. 살아 있는 사람들도 힘들잖아요. 특히 방송계는 저임금과 장시간 근로, 계약서 안 쓰고 일 시키기 등이 일상이에요. (방송계에) 표준계약서부터 정착시키는 게 새해 목표에요.”

5일 국회 본청 앞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단식 농성장의 모습. 이성택 기자

5일 국회 본청 앞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단식 농성장의 모습. 이성택 기자

산업재해로 숨진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53)씨도 단식 농성 중이다. 움푹 팬 눈, 누렇게 뜬 얼굴이 마스크 너머 도드라졌다.

그는 “국민들이 죽어가는데, 생명을 지키자는 중대재해법은 뒷전이고 (정치권이 전직 대통령의) 사면 얘기를 하는 건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조속한 법 제정만큼이나 ‘누더기’가 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회사에서 일하다가 사람이 죽으면 모든 증거와 정보가 다 있는 회사가 왜 죽었는지 입증해야지, 지금처럼 아무 것도 모르는 유족이 그걸 입증하는 게 맞나요. 왜 책임자가 아닌 유족이 죄인처럼 평생 벌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거죠."

사업주 책임을 좀 더 엄격하게 묻자는 원안의 조항들이 '무죄추정 원칙 등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삭제를 검토 중인 거대 양당에 김씨가 던진 절박한 물음이다.


여야, 경영진 처벌조항 정부안보다 후퇴로 가닥


한편 여야는 이날 법사위 법안소위에서 중대재해법 처벌 수위를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우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형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형을 부과하는 방향으로 잠정합의했다. 하지만 이는 정부안(2년 이상 징역 또는 5,000만~10억원 벌금)보다 징역형의 하한선을 낮추고, 벌금형의 하한을 없애는 쪽으로 수위가 완화된 것이다. 법인의 경우 사망사고에 대해서는 50억원의 벌금, 부상이나 질병 사고에 대해서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당장 정의당은 여야의 잠정합의안에 반발했다. 배진교 정의당 의원은 “법인 벌금 상한액 50억원은 대기업의 경우 법의 효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대단히 미약한 액수”라며 “벌금에 매출액 10%를 가중하는 내용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야는 6일 법사위 법안소위를 열어 최종안을 확정·의결한다는 방침이다.


이성택 기자
조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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