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혁명수비대가 지난 4일 호르무즈 해협 인근 공해에서 한국 유조선 케미호를 강제 나포했다. 케미호에는 한국인 5명을 포함해 20명이 승선했으나 이들의 안전은 즉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외교부가 주한 이란 대사를 초치해 선박 억류에 항의하고 유감을 표한 것은 당연하다. 청해부대와 최영함을 걸프 해역에 급파하고, 대표단을 현지 파견키로 한 조치도 신속하고 적절하다.
이란은 반관영 통신을 통해 환경오염을 나포의 이유로 제시했으나 이를 믿기 어렵다. 무력으로 상대국 민간 선박을 억류한 것은 외교관계 악화를 전제하지 않고는 감행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란이 케미호 억류와 동시에 미국을 겨냥해 우라늄 농축 농도를 20%로 상향한 것은 의심을 키운다. 하루 전에는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사령관 사망 1주기를 맞아 대미 보복을 다짐해 미 국방부가 핵항모를 중동에 재배치했다.
미국과의 긴장을 높여가던 시점에 케미호를 나포한 이란의 정확한 의도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을 끌어들여 미국 동맹들에 경고를 보내고, 출범을 앞둔 바이든 행정부를 압박하려는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미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의 대이란연합군 파병 압박에 동참하지 않는 등 이란을 고려해 온 한국으로선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선박 억류에 앞서 이란과 한국, 양국은 동결된 원유 수출대금을 코로나19 백신 구매에 사용하는 방안을 놓고 물밑 조율을 벌였다고 한다. 이란은 한국 민간은행 2곳에 예치된 약 70억 달러가 미국 제재로 동결되자 줄곧 해제를 압박해 왔다.
케미호를 둘러싼 한국과 미국, 이란의 복잡한 관계는 사태 해결을 낙관하기 어렵게 한다. 당장 미 국무부는 이란이 걸프 해역에서 항행의 자유를 위협하고, 제재 완화를 강요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케미호 억류 해제와 제제 완화를 연계시키지 않겠다는 뜻이다. 사태의 조기 해결을 위해 이란의 의도와 계산을 꿰뚫는 외교력과 동맹 미국 외교 채널을 통한 압박이 동시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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