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군은 병참으로 싸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서 늘 곱씹게 되는 문장이다. ‘로마인 이야기’에 대한 비판은 많다. 위안부 망언 등에서 보듯 시오노는 극우 작가다. 같은 맥락에서 ‘로마인 이야기’를 두고 ‘로마인을 가장한 사무라이 이야기’라는 지적도 있다.
그런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어도 된다. 책을 읽다 보면 자주 웃음이 나온다. 가령 결정적 순간마다 시오노는 ‘~아닐까’라거나 ‘~할 때는 ~하는 법이다’는 식으로 제 마음대로 추측하고 단정해버린다. 이런 문장을 접할 때면 더 고민하기 귀찮으셨나 보다 생각한다.
카이사르, 안토니우스 같은 주요 인물을 두고 ‘매력은 30점, 능력은 70점’ 하는 식으로 점수를 매기더니 비교표까지 만들어 버젓이 책에다 실어놓기도 했다.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나 볼 수 있는 딱지 놀음 같아 웃음만 난다. ‘로마인 이야기’에 ‘CEO 조찬모임용 책’이라는, 묘한 조롱의 평이 따라 붙는 건 그 때문 아닐까.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에 ‘로마군은 병참으로 싸운다’는 말은 더 곱씹을 만하다. 사무라이 영웅주의에 물든, 그것도 개개인의 매력이 세상사를 좌우한다 믿는 극우 작가라면, ‘뽑아 든 칼 한번 번쩍하니’ ‘신출귀몰한 계략에’ ‘장군이 독려하니’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열심히 싸워 이겼다라고 쓰면 끝일 거 같다. 하지만 시오노는 인력 장비 물자 같은 병참 문제를 제일 먼저 내세운다. 이쯤에서 우리도 시오노 나나미에 빙의해보자.
혹시 그건 시오노가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에 태어나서가 아닐까. 1945년 패전 때까지 전 국민이 온몸을 갈아 넣어 버티는 걸 영웅적인 거라 믿길 강요당해서가 아닐까. 세상물정 모를 어릴 적이라 해도 그런 충격적 경험은 온몸에 새겨지는 법이다. 더구나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 다른 세계를 만났다면, 더더욱 새로운 각성의 눈을 뜨지 않았을까.
2차대전 말 일본 상황에 대한 환멸과 혐오가 온몸에 배어 있다면, 제 아무리 영웅주의에 푹 젖은 극우 작가라 해도 결국 문제는 병참이란 걸 인정 안 할래야 안 할 재주가 없지 않았을까. 그러니 시오노의 매력은 극우 성향 때문에 ?100점, 능력은 그래도 글재주가 있으니 10점 쳐주더라도, 병참을 내치지 않은 판단력 부분에선 50점 주면 어떨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역시 화두는 ‘코로나’다. 전체주의니, 매표행위니, 국뽕이니 말들은 많지만 K방역 자체는 칭찬받을 만하다 생각한다. 자유로운 개인을 존중(?)하느라 날마다 수만, 수천 명의 확진자와 사망자를 쏟아내는 다른 나라에 빗댈 건 아니다. 모두들 애쓴 이 K방역을, 마치 자신들만의 공인양 내세우는 것만큼이나 어떻게든 깎아 내리려는 것도 꼴불견이긴 매한가지다.
다만, 2021년은 바이러스와의 전쟁 2년차다. 지난해 겪을 만큼 겪었다. 올해엔 의료인력과 국민들의 영웅적 노력보다는, 조금은 행정적이고 사무적인 병참이 돋보였으면 좋겠다. 방대본, 중수본, 중대본 같은 거야 공무원 내부의 일일 뿐,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동원가능한 자원 배분에 대한 최종 책임은 결국 대통령이 질 수밖에 없다. 전임 ‘적폐’ 정부 당시 “청와대는 재난 콘트롤타워가 아니다”라던, 다시 입에 올리는 것조차 역겨운 말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상처받았는지 결코 잊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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