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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계는 '최측근 금품수수' 듣고도 왜 안 말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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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여 전 대전 지역사회에 파문을 일으켰던 박범계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최측근 금품 수수’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박 후보자 본인은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으나, 그가 법무부의 새로운 수장 후보에 지명된 것을 계기로 또다시 세간의 주목을 끌게 된 것이다. 의혹의 핵심은 박 후보자가 자신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던 최측근 2명이 정치 신인들을 상대로 거액을 요구하거나 뜯어내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별다른 조치 없이 묵인ㆍ방조했다는 것으로, 조만간 열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최대 논란거리로 부상할 전망이다.
특히 ‘1억원을 달라’는 요구를 받았던 김소연 전 대전시의원은 “박 후보자에게 사실을 알렸지만, 계속 묵살당했다”면서 재차 폭로전에 나서는 모습이다. 한국일보는 해당 의혹 검증을 위해 4일 김 전 의원을 만나 인터뷰를 한 뒤, 5일 입수한 박 후보자 측근들의 형사사건 판결문 및 박 후보자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결정문을 분석해 전체 사건을 재구성해 봤다. 관건은 결국 측근들의 범행에 대한 박 후보자의 인지 여부다.
이 사건의 주요 등장인물 중 박 후보자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은 전문학(50)씨와 변재형(48)씨, 이렇게 두 명이다. 전씨는 박 후보자의 지역구인 대전 서구에서 주로 활동하며 구의회 의원 및 시의원을 지낸 바 있다. 변씨는 전씨와 함께 지역 기반을 다지면서 박 후보자의 비서관으로도 활동했다. ‘박범계 사단’의 핵심 멤버였던 셈이다.
두 사람은 2018년 6ㆍ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해 2월 2일, 전씨는 대전 서구에서 구의원으로 나서려 했던 방차석(61)씨를 접촉했다. 변씨도 ‘선거운동 전문가’ 행세를 하며 함께 만났다. 문제는 2월 말쯤, 변씨가 방씨에게 “선거사무소 운영비가 필요하다. 일단 2,000만원만 현금이나 다른 계좌로 준비하라”고 요구했다는 점이다. 선거에 필요한 비용은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한 공식계좌로 입금해 써야만 하는데, ‘다른 계좌’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법망을 벗어나 사용할 돈을 따로 마련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지역 사회에선 나름 인맥도 있고 신망이 두터웠던 방씨였지만, 본격적인 정치는 처음이었던 탓에 ‘전문가’의 조언과 도움이 필요했다. 게다가 지역구 국회의원인 박 후보자의 측근들이었기에 더욱 더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다. 방씨는 3월 3일 950만원이 입금돼 있는 ‘타인 명의’의 체크카드를 변씨에게 건넸다. 비밀번호도 알려 줬다. 변씨는 이 체크카드를 쓰면서 방씨의 허락이나 승인을 받지 않았다. 9개월 후, 형사처벌이 예고되는 순간이었다.
방씨를 상대로 ‘성공’을 거둔 전씨와 변씨는 시의원 선거에 뛰어든 김 전 의원을 다음 타깃으로 정했다. 당시 지역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던 김 전 의원은 박 후보자가 같은 해 3월 초 영입한 인물이었다. 본격적인 선거 준비에 나선 지 한 달쯤 지난 4월 11일, 변씨는 김 전 의원에게 “1억원을 다음 주까지 준비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법률전문가인 김 전 의원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선관위 신고 계좌에 이미 1,600만원을 입금해 둔 터라, 다른 경로로 추가 선거비용을 지출하면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김 전 의원은 4월 11일 당일, 곧바로 박 후보자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김 전 의원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떠올리며 “판사 출신 변호사인 박 후보자에게 이런 상황을 보고하면 ‘범죄’라는 걸 금방 알 것이라고 생각하고 보고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그날 오후 5시쯤, 박 후보자의 차량 안에서 약 20분간 ‘의원님의 최측근들이 1억원을 요구한다’고 정확히 설명했다고 주장했다. 설명을 들은 박 후보자는 차량에서 내리며 “전문학은 뭐야, 권리금 달라는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 전 의원에겐 “어떤 경우에도 불법선거를 하면 안 된다”면서 ‘금품 요구’에 절대 응하지 말라고도 주문했다. 김 전 의원은 “박 후보자의 ‘권리금’ 발언은 전씨가 자신의 시의원 자리를 나에게 ‘물려주면서’ 돈을 요구한 것이냐는 취지로 들렸다”며 “박 후보자가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다음날인 4월 12일, 전씨와 변씨는 방씨에게 현금 2,000만원을 더 뜯어냈다. 또, 6일 후에는 차명 체크카드를 통해 방씨한테서 1,000만원을 추가로 받기도 했다. 1억원을 순순히 주지 않는 김 전 의원을 계속 압박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4월 16일, 전씨가 직전 지방선거에서 썼다는 비용 내역을 보여주며 “나중에 보전받게 되는 돈을 미리 달라”고 재차 요구했다. 그러나 해당 내역을 보면, 보전받을 수 있는 금액은 3,400만원 정도였다. 당초 요구했던 1억원보다 적은 돈이라도 받아내려는 의도였던 셈이다. 김 전 의원이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자, 변씨는 4월 23일 김 전 의원에게 “돈 안 줄 거면 사무실 빼라”면서 최후통첩을 날리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 전개를 보면, 박 후보자가 측근들을 전혀 제지하지 않은 것이고 이는 ‘선거법 위반 방조’나 다름 없다는 게 김 전 의원의 의심이다. 그는 4월 11일에 이어, △4월 21일 △6월 3일 △6월 24일 등 총 네 차례에 걸쳐 박 후보자에게 ‘측근 범행’을 보고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박 후보자는 그때마다 언성을 높이고 화를 내며 묵살했다”고 김 전 의원은 주장했다. 김 전 의원은 “4월 11일 나의 첫 번째 보고를 들은 박 후보자가 전씨와 변씨를 말렸다면, 나도 1억원 요구를 더 이상 받지 않았을 것이고, 방씨가 추가로 3,000만원을 내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참다 못한 김 전 의원은 2018년 9월 26일 이런 사실을 페이스북을 통해 폭로했다. 조사에 나선 선관위는 10월 8일 전씨 등을 검찰에 고발했고, 대전지검 공안부는 전씨와 변씨, 방씨 등 4명을 기소했다. 전씨와 변씨는 법원에서 범행이 인정돼 각각 징역 1년 4월과 1년 6월의 실형이 확정됐다. 김 전 의원의 폭로가 검찰과 법원에서 ‘사실’로 인정받은 셈이다.
다만 박 후보자는 증거불충분에 의한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그럼에도 박 후보자가 김 전 의원에게 얼마나 구체적인 ‘보고’를 받았는지, 전씨와 변씨의 ‘금품 요구’ 행위를 전혀 몰랐는지 등은 속시원히 규명되지 않아 향후 청문회에서 공방이 불가피해 보인다. 박 후보자 측은 이에 대해 “선거법 위반 방조 혐의는 검찰의 무혐의 결론이 나왔기 때문에 또다시 사실관계를 다투는 건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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