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복소복

입력
2021.01.06 04:30
25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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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린다. 아이든 어른이든 창밖으로 짧은 감탄사를 내보내자 눈은 세상을 하얗게 덮는다. 조금씩 내리는 ‘가랑눈’, ‘살눈’, ‘포슬눈’도 있고, 한 길이나 쌓인다는 ‘길눈’, ‘잣눈’, 갑자기 쏟아지다가 곧 그치는 ‘소나기눈’도 있다. 겨우 발자국이 날 만큼만 내린 ‘자국눈’, 밤사이에 몰래 내린 ‘도둑눈’에서는 인기척마저 느껴진다.

비가 섞이지 않은 ‘마른눈’과 비 섞여 내리는 ‘진눈깨비’, 빗방울이 얼어 쌀알 같은 ‘싸락눈’ 등 하늘이란 무대는 여러 눈을 만든다. 아무래도 눈 풍경의 대명사는 ‘함박눈’이다. 굵고 탐스럽게 내리는 함박눈은 온갖 사연을 머금은 듯 ‘펑펑’ 내려 ‘소복소복’ 쌓인다. 함박눈의 다른 이름들 ‘솜눈, 영감눈, 허깨눈’은 함박눈의 인기를 보여 준다. 속담에 ‘함박눈이 내리면 따뜻하고 가루눈이 내리면 추워진다’라는 말이 있다. 고운 가루 모양의 ‘가루눈’은 기온이 낮고 수증기가 적을 때 내리는 눈이다. 가루눈과 함박눈은 상층대기의 온도에 따라 달라지므로 눈의 모양은 날씨를 예측하는 근거가 된다.

최근 인터넷 세상에서 ‘소복소복’이 인기 검색어가 되었다. 방탄소년단(BTS)의 국외 팬들이 지민의 노랫말 뜻을 알아내려 애쓰며 생긴 일이다. 딱히 맞는 말이 없어 ‘falling falling’으로 번역되었지만, ‘소복소복’의 느낌을 자세히 알려 달라는 요청에 덧붙은 설명이 난상 토론처럼 전개되고 있다. 그들은 한국어를 감성적 언어라 평한다. 그저 내린 눈을 그린 말로만 알았는데, ‘소복소복’은 눈 내린 풍경과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감성이 소복하게 담긴 말이었다.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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