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우로페는 아름다웠다. 그의 아름다움에 반한 제우스는 황금 뿔이 달린 황소로 변신하여 에우로페에게 접근하였다. 황소의 힘찬 젊음에 반한 에우로페는 제우스의 아들 셋을 낳았다. 아름다움에 반한 사랑은 결코 오래 가지 않는다. 제우스는 에우로페를 크레타의 왕 아스테리오스와 결혼시켰다. 아스테리오스는 제우스의 세 아들을 양자로 받아들였다. 에우로페가 죽자 사람들은 그녀를 기려 어느 대륙에 그녀의 이름을 붙였다. 유럽이 바로 그것.
아스테리오스가 죽자 세 아들 사이에서 왕위 다툼이 일어났다. 첫째 미노스는 자신이 왕이 되는 게 신의 뜻이라고 주장했지만 두 동생이 호락호락 받아주지 않았다. 미노스는 포세이돈에게 왕의 징표로 황소 한 마리를 보내달라고 기도했다. 포세이돈은 온몸이 하얀 황소를 보내주었고, 형제들은 미노스를 왕으로 인정했다.
그리스 신화의 한 대목이다. 그런데 '하얀 황소'라니… '하얀 누렁소'처럼 읽히는가? 오해다. 황소의 황은 누를 황(黃)이 아니다. 한자말이 아니라 크다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황소란 큰 수소를 일컫는다. 생물 연구사와 생물 철학을 연구하는 철학자 이주희 선생님의 책 '동물과 식물 이름에 이런 뜻이?!'에 나오는 설명이다.
선생은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정지용의 시 '향수'를 인용한다. "얼룩백이 황소가 / 해설피 금빛 /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만약에 황소가 누렁소라면 '얼룩백이 황소'는 형용모순이다. 황소가 큰 소라고 한다면 얼룩백이 큰 소라는 뜻이니까 아주 자연스럽다. 원래 우리나라에서 기르던 황소에는 누렁이도 검둥이도 얼룩이도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에게는 한결같은 특징이 있는데 정말 치사빤스(!)라는 것이다. 치사한 정도가 차마 우리 입으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수준이다. 인간들이 갖는 보편적인 도덕의식은 찾아볼 수 없다. 욕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행동에서 선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한때 그리스로마신화 만화가 대히트를 친 적이 있는데, 도대체 이런 이야기를 초등학생에게 읽히는 게 맞는가라는 고민을 한 적이 있을 정도다.)
포세이돈이 거저 하얀 황소를 보내서 미노스가 왕위에 오르게 했을 리가 없다. 그랬다면 그는 그리스 신화의 신이 아니다. 미노스는 하얀 황소를 포세이돈에게 다시 제물로 바쳐야 했다. 그런데 하얀 황소가 너무 아름다웠다. 미노스는 황소를 바꿔치기 한다. 포세이돈이 그걸 모를까? 포세이돈은 미노스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었다. 신이 욕심과 욕정에 빠진 인간을 혼내는 일은 쉬울 터.
포세이돈은 미노스의 아내 파시파에에게 사랑의 감정을 심어주었다. 대상은 바로 미노스의 하얀 황소. 하지만 인간이 어찌 황소와 사랑을 나누겠는가, 라고 체념하고 끝나면 신화가 아니다. 미노스는 당대 최고의 기술자 다이달로스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황소와 사랑을 나누겠다는 왕비의 욕정이 망측했지만 다이달로스에게는 자신의 기술을 뽐내고 싶다는 욕정이 불타올랐다.
다이달로스는 나무를 깎아 아름다운 암소를 만들고 암소 가죽을 입혔다. 파시파에는 다이달로스가 만든 암소의 뱃속에 들어가 암소 흉내를 냈다. 욕정은 신과 인간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짐승도 마찬가지. 미노스의 황소는 파시파에가 들어 있는 다이달로스의 암소를 보고 반했다. 결국 왕의 소와 왕비는 사랑을 나눴고, 사람은 사람인데 황소 머리를 하고 있는 아기 또는 새끼가 태어났다. 그가 바로 미노타우루스. 미노스의 황소라는 뜻이다.
미노스는 다이달로스에게 미궁(迷宮) 라비린스토스를 만들게 하고 거기에 미노타우루스를 가뒀다. 미노타우루스도 먹어야 산다. 그런데 하필 어린아이만 먹는다. 끊임없이 아이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 누군가 나타나 미노타우루스를 죽여야만 한다. 이때 영웅이 등장해야 신화다. 포세이돈의 아들 테세우스가 그 주인공.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루스를 죽이고 아드리아드네 실타래를 이용해 무사히 미궁을 빠져나옴으로써 하얀 황소를 둘러싼 비극이 끝난다.
올해 2021년은 신축(辛丑)년이다. 신축은 매운 소가 아니라 하얀 소다. 신축년에는 온갖 욕정과 욕망을 경계하면서 부디 실타래 같은 지혜를 발휘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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