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부모의 학대에 시달리다 지난해 10월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양 사건의 첫 재판을 앞두고 경찰의 소극적인 초동대처에 대한 공분이 커지고 있다.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가해자 처벌 강화, 신고 의무자 확대 등 제도 보완이 이뤄졌지만 경찰이 이처럼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면 비극을 막을 도리가 없다.
정인양이 숨질 때까지 세 차례나 신고가 접수됐지만 이를 묵살했다는 점에서 경찰은 ‘공범’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지난해 5월부터 9월까지 어린이집 교사의 수사의뢰, 차량에 장시간 방치된 정인이를 발견한 시민 신고, 피해자를 진찰한 소아과 의사의 신고가 잇따랐지만 경찰은 번번이 무혐의 처분했다. 피해 아동이 결국 장 파열로 숨질 정도로 끔찍한 피해를 입었는데도 사건을 부실하게 처리했던 경찰들은 경고, 주의 등 경징계만 받았다. 피해자가 진술을 할 수 없는 영아이고 가해자인 양부모들이 거짓진술로 일관했다고 하더라도 또래보다 현저히 부실한 아이의 발육상태, 전문가인 소아과 의사의 소견에 조금만 더 촉각을 곤두세웠다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안타깝다.
정인양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더불어민주당은 4일 아동학대의 형량을 2배로 높이고 학대자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도록 아동학대 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분노한 여론에 편승한 안이한 해법은 아닌지 의문이다. 2013년 울주에서 계모 폭행으로 사망한 ‘이서현 사건’ 이후 아동학대 사망사건의 형량을 높이는 아동학대특례법이 제정되고 20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이 7차례나 개정되는 등 처벌 강화 위주의 입법이 이어졌지만 아동학대 사건은 잊혀질 만하면 터지고 있다.
경찰은 2016년부터 학대예방경찰관(APO)을 운용하는 등 대책을 내놨지만, 이번 사건은 아동학대에 대한 경찰의 경각심이 시민들보다 뒤떨어진다는 점을 방증한다. 아동학대 사건의 최일선 담당자로서 전문성을 키우고 학대 감수성을 높이는 경찰의 노력 없이는 제2, 제3의 '정인양 사건'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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