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부터 한복까지…美 의회 '드레스코드' 바꾼 그들

입력
2021.01.0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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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릴린 스트릭랜드(왼쪽) 미국 연방 하원의원이 3일 한복을 입고 등장했다. 오른쪽은 재선에 성공한 앤디김 의원.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페이스북 캡처

메릴린 스트릭랜드(왼쪽) 미국 연방 하원의원이 3일 한복을 입고 등장했다. 오른쪽은 재선에 성공한 앤디김 의원.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페이스북 캡처


한국 이름 '순자'로 알려진 메릴린 스트릭랜드(민주·워싱턴주) 미국 연방 하원의원이 한복을 입고 의회에 등원해 취임 선서를 한 가운데 미국 의회에 불어온 '다양성' 바람이 드레스코드(복장 규정)도 바꾸고 있다. '히잡' 착용이 논란이 된 과거와 비교했을 때 이제는 다양성에 대한 긍정적 시선이 더 우세하다는 분석이다.

메릴린 스트릭랜드(민주·워싱턴주) 미국 연방 하원의원이 3일 한복을 입고 등장했다. 트위터 캡처

메릴린 스트릭랜드(민주·워싱턴주) 미국 연방 하원의원이 3일 한복을 입고 등장했다. 트위터 캡처

미 연방의회 117회기 개원 첫날인 3일(현지시간) 스트릭랜드 의원은 붉은색 저고리와 보라색 치마 한복을 입고 등장했다. 그는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트위터에 "한복을 입는다는 건 개인적으로 깊은 의미가 있다"며 "한복은 내가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을 상징하고 우리 어머니를 명예롭게 할 뿐만 아니라 미국, (워싱턴)주, 그리고 의회에서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라고 썼다.

그동안 미국 여성 정치인의 드레스코드 공식은 어깨에 패드가 들어간 재킷에 노출이 없는 긴 바지나 무릎 길이의 치마였다. 2016년 대선 때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복장이 대표적이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부부가 2016년 11월 8일 대선 투표를 마치고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장면. 뉴욕=AP 연합뉴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부부가 2016년 11월 8일 대선 투표를 마치고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장면. 뉴욕=AP 연합뉴스

이 같은 행보는 종교와 인종 배경이 다채로운 여성 의원들의 정계 진출에 따라 의회 내 다양성을 불러온다는 설명이 나온다. 앞서 미국 의회 사상 첫 소말리아계 의원이기도 한 일한 오마르 의원은 하원에 히잡을 착용하고 출석할 수 있도록 규정 변경을 촉구하면서부터 민주당의 '포용성'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오마르 의원은 어린 시절 내전을 피해 케냐 난민캠프에서 4년을 보냈고, 1995년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했다. 영양지도사로 일하다 2016년부터 미네소타 주의원으로 활동했다.

일한 오마르 의원. 위키피디아 캡처

일한 오마르 의원. 위키피디아 캡처

최초의 여성 원주민 출신 하원의원인 샤리스 데이비스(민주·캔자스) 의원은 2018년 11월 6일 개표 현장에 스스로 레즈비언임을 알리는 무지개 스카프에 타이트한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나타나는 파격 의상을 선보였다.

원주민 출신인 뎁 할랜드(민주·뉴멕시코) 연방 하원의원이 2019년 1월 4일 샤리스 데이비스 의원의 스카프에 눈물을 닦고 있다. 트위터 캡처

원주민 출신인 뎁 할랜드(민주·뉴멕시코) 연방 하원의원이 2019년 1월 4일 샤리스 데이비스 의원의 스카프에 눈물을 닦고 있다. 트위터 캡처

또 최연소 하원의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는 재킷을 입지 않은 채 흰색 셔츠에 베이지색 치마, 긴 생머리에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개표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당시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새로 정치권에 들어온 여성 정치인들의 틀에 박히지 않은 패션이 남성 위주의 미 의회를 바꿀 것"이라고 내다봤다.


117대 의회, 최초의 한국계 여성 의원들 등판

메릴린 스트릭랜드(민주·워싱턴주) 미국 연방 하원의원이 3일 한복을 입고 등장했다. 트위터 캡처

메릴린 스트릭랜드(민주·워싱턴주) 미국 연방 하원의원이 3일 한복을 입고 등장했다. 트위터 캡처

WSJ의 관측은 현실화된 듯하다. 제117대 미국 연방 의회는 이전에 비해 역대 가장 많은 한국계 하원의원 4명이 동반 입성했다.

의회 진출에 성공한 이들은 앤디 김(민주·뉴저지주), 메릴린 스트릭랜드 의원, 미셸 박 스틸(공화·캘리포니아주), 영 김(공화·캘리포니아주) 의원이다. 영 김, 미셸 박 스틸, 메릴린 스트릭랜드 의원은 최초의 한국계 여성 의원이기도 하다.

미 공영방송 NPR은 "기록적인 수의 여성, 소수인종, 성소수자 의원들은 117대 의회를 역사상 가장 다양한 의회로 만들었다"며 "의회의 다양성을 높이는 데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고 평했다.

메릴린 스트릭랜드(민주·워싱턴주) 미국 연방 하원의원이 3일 한복을 입고 등장했다. 트위터 캡처

메릴린 스트릭랜드(민주·워싱턴주) 미국 연방 하원의원이 3일 한복을 입고 등장했다. 트위터 캡처

이날 스트릭랜드 의원의 복장을 향한 반응은 대부분 긍정적이다. 미국 공영방송인 C스팬의 하워드 모트먼 홍보책임자와 한국계 워싱턴포스트(WP) 기자인 김승민씨는 해당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했다.

재선에 성공한 앤디 김 의원도 스트릭랜드 의원이 세 명의 한국 초선 의원 중 한복을 입고 등원했다는 한 언론 매체 기자의 트윗에 "미국 내 한인 커뮤니티를 위한 놀라운 순간이자 큰 진전이다"라고 답했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도 "코끝이 찡하고 아주 진하게 가슴이 뿌듯해진다"며 "스트릭랜드의 저 정체성에 대해서 한인 2세들이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할까"라고 밝혔다. 또 "2년 전 미네소타주의 일한 오마르 연방 하원의원이 머리에 히잡을 쓰고 등원, 자신이 무슬림 여성임을 당당하게 알리면서 등장했을 때 솔직히 부러웠다"고 덧붙였다.

미국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된 한국계 여성 메릴린 스트릭랜드 후보와 어머니 김인민씨.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미국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된 한국계 여성 메릴린 스트릭랜드 후보와 어머니 김인민씨.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한편 스트릭랜드 당선인은 한국인 어머니 김인민씨와 미군인 흑인 아버지 윌리 스트릭랜드 사이에서 1962년 9월 서울에서 태어났다. 1살 때 아버지가 버지니아주의 포트리 기지로 배치되면서 미국으로 건너온 스트릭랜드 당선인은 마운트타코마 고교를 졸업한 뒤 워싱턴대에서 경영학을, 클라크애틀랜타대학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전공했다.

노던 생명보험사, 스타벅스 등을 거쳐 타코마 시의원으로 선출되며 정계에 입문했고, 2년간의 시의회 경험 뒤 타코마 시장에 당선돼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시장으로 봉사했다. 타코마 시장으로는 첫 동양계였으며, 흑인 여성으로서 타코마 시장에 당선된 것도 처음이었다. 시장직을 마친 뒤에는 시애틀 메트로폴리탄 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기도 했다.

손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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