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쥐꼬리' 잡고 싶은 캄보디아 농민들... 쥐 팔아 생계 유지

입력
2021.01.05 07:00
14면

코로나19 확산으로 지난해만 50만 실직
돈 벌이 위해 너도나도 쥐잡기 뛰어들어
봉쇄 탓에 수요 줄면서 이마저도 어려워

캄보디아 캄퐁스페우 지역의 논에서 한 남성이 쌀을 수확하고 있다. 쌀 가격은 내려가고 임금이 줄면서 캄보디아 농가에서는 쥐잡기가 성행하고 있다. 캄퐁스페우=EPA 연합뉴스

캄보디아 캄퐁스페우 지역의 논에서 한 남성이 쌀을 수확하고 있다. 쌀 가격은 내려가고 임금이 줄면서 캄보디아 농가에서는 쥐잡기가 성행하고 있다. 캄퐁스페우=EPA 연합뉴스

캄보디아 농민들은 요즘 쥐를 잡는다. 귀중한 식량을 축내는 유해조수를 박멸하려는 게 아니다. 감염병 공포가 나라를 집어 삼키면서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수출용 쥐잡기에 혈안이 된 것이다. 그나마도 사람이 몰리면서 벌이는 시원찮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 보건도 경제도 망가진 빈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추산한 지난해 캄보디아의 실직자는 50만명. 생산가능 인구(900만명)의 5.5%가 코로나19 확산에 삶의 터전을 떠났다. 대부분 농촌으로 돌아갔지만 그곳이라고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바이러스가 한창 퍼지던 지난해 1~4월 농민 임금은 예년의 3분의1 수준으로 급락했다. 한 농민은 3일(현지시간)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 “쌀 가격이 너무 싸서 논밭 경작 만으로 충분히 벌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그래서 농민들은 쟁기 대신 쥐덫을 들었다. 이제 캄보디아에서 쥐잡기는 ‘정규직’이 됐다. 과거에는 농작물 보호를 위한 부업 정도로 치부됐지만, 이웃 베트남에 쥐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야생 쥐는 베트남에서 별미로 꼽힌다. 2014년에는 kg당 야생 쥐 가격이 2.5달러까지 오르기도 했다.

캄보디아 시엠레아프주의 한 주민이 마을 나무에 붙어 있는 금융서비스 전단에 손을 뻗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캄보디아 농민들은 빚더미에 올라 생계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엠레아프=AFP 연합뉴스

캄보디아 시엠레아프주의 한 주민이 마을 나무에 붙어 있는 금융서비스 전단에 손을 뻗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캄보디아 농민들은 빚더미에 올라 생계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엠레아프=AFP 연합뉴스

하지만 쥐를 아무리 많이 팔아도 수익성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지금은 kg당 1달러를 받기도 벅차다. 수요는 줄거나 같은데 너도나도 쥐 잡기에 나서니 값은 내려갈 수밖에 없다. 캄보디오 타케오 지역의 한 마을에서는 지난해 4월 이후 쥐잡이 수가 500명에서 1,000명으로 배나 늘었다. 여기에 베트남이 작년 3월부터 코로나19 확산을 막는다며 강력한 봉쇄 조치를 취한 탓에 잡은 쥐를 내다팔기도 쉽지 않다. 이에 목숨을 걸고 쥐 밀반출을 시도하는 등 불법 행위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또 쥐가 각종 감염병의 매개체라는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소비 심리는 더욱 위축됐다. 베트남 연구진은 지난해 8월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에 게재한 논문에서 “식용 박쥐와 쥐에서 다양한 코로나바이러스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문제는 쥐잡기 말고는 캄보디아 빈곤층의 벌이 수단이 딱히 없다는 점이다. 베트남에서조차 코로나19 여파로 공장들이 문을 닫았을 때 일부 노동자들이 쥐잡기에 나서기도 했다. 멈추지 않는 감염병 확산이 가난한 나라의 일자리를 빼앗고, 빚더미에 앉은 주민들은 극한의 생존 경쟁으로 내몰리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이인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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