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의 딜레마

입력
2021.01.03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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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21년 신축년을 맞이하며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스1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21년 신축년을 맞이하며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스1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신년 언론인터뷰에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할 생각이 있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국민통합을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두 전직 대통령에 여전히 적대적인 여권 지지층 일각에선 “촛불민심에 대한 배신”이란 얘기까지 나온다.

□이번 논란은 우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다가 되레 지지층 내부의 분열을 초래했던 상황과 비교된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하반기이던 2005년 7월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선거제도 개편과 연계해 연립정부 구성을 제안했으나 야당의 외면과 지지층 반발로 30%대였던 지지율마저 더욱 추락했다. 특히 당원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나온 “(한나라당과의) 노선 차이는 크지 않다”는 등의 발언이 지지층을 자극했다. 정치 양극화에 따른 국론 분열을 극복하겠다는 취지였으나 정체성을 강조하는 진보 진영의 정서와는 맞지 않았던 셈이다. 이 대표 역시 국민통합과 진보 정체성 사이의 딜레마에 부딪혀 노 전 대통령과 유사한 곤경에 처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레임덕을 향해 가던 노 전 대통령과 달리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라는 점에서 이슈 역동성이 다르다. 특히 대연정의 경우 당시 야당이 선거제 개편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으나 사면은 야당이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 시기적 리스크가 있긴 하지만 의제 선점 효과만은 확실하다. 실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에 전두환·노태우 사면을 건의해 IMF 위기 상황에서 국민 통합을 이끌었다. 호남 출신인 이 대표 입장에선 노무현이 아니라 김대중 노선의 계승이라 할 법하다.

□친문 진영 주자로 인식된 이 대표가 DJ 노선을 부각시킨 게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그간 친문 지지층 눈치를 보느라 자기만의 색채를 잃어 결국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왔던 터다. 이번 제안의 숨은 성격은 친문과의 차별화일지 모른다. 하지만 당 경선 통과를 위해 친문의 지지를 잃지 않으면서 어떻게 차별화할 수 있을까. 이 대표가 진정으로 부딪힌 딜레마다.

송용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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