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확보만 하면 코로나 잡힐까… 美 접종 혼란 점입가경

입력
2021.01.01 10:00
수정
2021.01.0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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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종 부진, 백신 아닌 계획 없어 차질" 지적도?
물량 확보 전 접종 시스템 안정적 구축 중요

미국 제약사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EPA 연합뉴스

미국 제약사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EPA 연합뉴스

한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확보 전쟁에서 뒤처져 있는 동안 영국을 필두로 미국, 유럽연합(EU) 등이 백신 접종을 시작했지만 각국의 접종 속도는 지금까지 대체로 지지부진하다.

원료 조달 등의 문제로 백신 공급 물량이 기대에 못 미친 때문이기도 하지만 접종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소홀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접종 대상자의 단계적 선정 같은 거시적 문제는 물론 접종 과정에 필요한 일회용품 수급 문제까지 백신 접종은 전체 과정을 하나의 체계로 새로 구축해야 하는 문제인 까닭이다.

미국에서 지난달 14일(현지시간)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이후 발생한 크고 작은 사건·사고와 이와 관련된 접종 체계의 문제점을 짚어 봤다. 백신 공급을 기다리는 한국에도 곧 닥쳐올 일이기 때문이다.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보다 더 예측하기 어려운 백신 접종 체계 준비를 백신 도착 전에 모두 마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하나둘씩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①새치기..."의료인 아닌데 백신 맞아" 일반인 SNS에 과시

지난달 1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레드랜드커뮤니티병원 관계자들이 첫 백신을 전달 받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레드랜드커뮤니티병원 페이스북 캡처

지난달 1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레드랜드커뮤니티병원 관계자들이 첫 백신을 전달 받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레드랜드커뮤니티병원 페이스북 캡처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내가 코로나19 백신을 맞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백신 접종을 마쳤고 매우 행복하다."

지난달 20일 미 캘리포니아주(州)에 사는 33세 여성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이 논란이 됐다. 디즈니랜드 직원으로 알려진 이 여성은 "일반인은 아직 접종할 수 없는데 어떻게 백신 접종이 가능했냐"고 묻는 친구의 질문에 "시숙모가 레드랜드커뮤니티병원에서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 여성은 이 글이 SNS에서 논란이 되고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자 곧바로 글을 삭제했다.

지난달 28일 영국 데일리메일 등에 따르면 레드랜드커뮤니티병원 의료진에 공급된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 중 남은 물량을 코로나19 최전선에서 근무하지 않는 직원들도 일부 접종했다. 병원 측은 "화이자 백신은 영하 70도로 보관하고 해동 직후 투여해야 하기 때문에 귀중한 백신을 버리지 않기 위해 폐기하지 않고 다른 직원들에게 투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화이자 백신은 보관과 관리가 상당히 까다롭다고 볼 수 있다. 영국 의약품규제청(MHRA)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백신은 냉동고 안에서 영하 80도~영하 60도에서 혹은 단열 컨테이너 속에서 영하 90도~영하 60도의 조건에서 최대 6개월 동안 보관이 가능하다. 단 빛에 노출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냉동 백신은 일단 해동 후 5일 동안 2~8도에서 냉장 보관이 가능하다. (냉장고에서 냉동실에서 냉동 보관을 하다 냉장 보관을 위해 냉장실로 옮겼다고 보면 된다.)

이후 실제 접종은 실온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실온에서는 6시간 안에 접종하지 못하면 폐기해야 한다. 특히 온도가 25도 가까이 올라갈 경우에는 반드시 2시간 안에 접종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공중보건 비상 사태를 감안해 남은 백신 물량을 모두 사용하는 게 맞다면서도 가족의 영향력을 발휘한 디즈니랜드 직원의 사례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다. 앤드루 노이머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공중보건 교수는 "병원들은 비록 남는 백신을 투약하는 것일지라도 적절하고 공평하게 맞도록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이날 뉴욕주는 웃돈을 내고 백신을 맞는 '백신 새치기' 사례가 잇따라 보고되자 백신 접종 순서를 어기는 의료인에 100만달러(약 11억원)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의료 종사자와 요양원 거주자가 백신을 우선 접종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접종을 담당하는 일선 병원에도 여전히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백신을 맞게 할 지 결정권이 있다.

따라서 한국 정부도 백신 도착 전에 우선적으로 백신 접종이 필요한 의료 종사자와 요양시설 입소자 등이 어떤 장소에서 어떤 방식으로 백신을 맞을지 우선순위 관리 시스템을 갖춰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 CNBC방송은 미국 내 백신 배포 전인 지난해 11월 중순 "백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아무 계획이 없기 때문에 백신 유통은 대혼란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②느슨한 유통망..."의사도 백신 맞으러 차량 40분 거리 이동"

미국의 백신 유통망이 대도시가 아닌 시골까지 전달되기 어려운 설계라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CNN방송의 뉴스. CNN 캡처

미국의 백신 유통망이 대도시가 아닌 시골까지 전달되기 어려운 설계라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CNN방송의 뉴스. CNN 캡처

화이자 백신은 영하 70도 초저온에서 보관·운송해야 한다. 생산 공장에서 나온 백신은 병원·약국 등 접종 장소까지 수백㎞를 이동해야 하며 각급 병원은 극저온 저장고도 갖춰야 한다.

특히 화이자 백신은 운반상자 하나에 975회분의 백신이 담긴다. 한 병원에서 975회분을 소화할 수 없는 시골 지역이 문제다. 조지아·유타·인디애나·위스콘신 등이 해당된다.

이 때문에 조지아주 8개 카운티를 관할하는 해안보건지구에서는 의료인들이 백신 접종을 위해 차량으로 40분 거리를 이동해야 했다. 환자 치료로 바쁜 이들은 자리를 비울 여건이 안돼 이 지역은 백신 접종률이 유독 낮았다.

또 미 CNN방송은 백신 운송을 위해 왕복 6시간을 운전한 미시간주 미들랜드의 미드미시간 메디컬 센터 리처드 베이츠 박사의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미들랜드에서 240㎞ 떨어진 도시 알페나의 이 병원 지점 직원들을 위해 백신 130회분을 전달한 베이츠 박사는 "출산한 부모에게 아이를 넘겨주듯 직원들이 백신을 맞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고 말했다.

미 연방정부는 CVS와 월그린 등 전국적으로 영업망을 갖춘 약국 체인도 백신 접종 장소로 활용하기 위해 협약을 맺었다고 밝힌 상태다. 하지만 백신 유통망이 시골 지역까지 촘촘하게 연결돼 있지 못한 상황에서 약국 체인이 유통 지점이 될 것이라는 선언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 민간 기업의 시설과 직원 활용에 대한 보상이 충분히 논의돼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③보안... 500회분 모더나 백신 폐기 "병원 직원, 의도적 방치"


지난달 29일 미국 플로리다주 포트마이어스에서 코로나19 백신을 맞으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플로리다주가 확보한 백신 물량이 65세 이상 노인 인구에게 모두 돌아가지 않게 되자 지역 주민들은 담요와 의자를 들고 와 야영까지 하며 백신 접종을 기다렸다. 포트마이어스=AP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미국 플로리다주 포트마이어스에서 코로나19 백신을 맞으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플로리다주가 확보한 백신 물량이 65세 이상 노인 인구에게 모두 돌아가지 않게 되자 지역 주민들은 담요와 의자를 들고 와 야영까지 하며 백신 접종을 기다렸다. 포트마이어스=AP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미 위스콘신주의 한 병원에서는 500회분이 넘는 모더나 코로나19 백신이 폐기되는 일이 발생했다.

오로라메디컬센터의 한 직원은 의도적으로 500명에게 접종할 수 있는 모더나 백신 57병을 냉장고 밖에 꺼내 놓았다. 상온에서 방치된 이 백신들은 더 이상 쓸수 없게 됐다.

병원 측은 이 사건이 실수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여겼으나 직원의 의도적인 범행임을 파악하고 이 직원을 해고했다. 범행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다.

미 매체 포브스는 "백신 배포 현장에는 군중과 교통 관리뿐 아니라 환자와 직원을 보호할 보안 전담 직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백신 보안은 도난으로부터 보호하는 것 이상의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각 납품팀에 백신 운반과 취급, 안전 요건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중요한 보안책"이라고 덧붙였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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