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입력
2020.12.31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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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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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새해 첫날 새벽, 대관령 기온은 영하 20.2도를 기록했다. 대관령에서 기상관측을 시작한 1971년 이후 1월 1일 최저 기록이다. 이날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동네 중 한 곳인 철원은 영하 18.5도, 서울은 영하 10.4도였다. 2001년 새해 첫날에도 추위가 몰아쳤다. 대관령은 영하 18.2도로 관측 이래 새해 첫날로는 5번째 추위였고, 철원 영하 16.9도, 서울 영하 9.5도까지 수은주가 떨어졌다. 지난 30년간 서울의 1월 1일 평균 최저기온이 영하 5.4도라는 점에서 ‘새해 첫날 한파 10년 주기설’은 나름대로 근거를 갖춘 가설이다.

□ 2011년과 2001년의 공통점은 새해 첫날 한파뿐이 아니다. 역시 10년 주기로 발생한 대형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다졌던 한 해였다. 2001년 1월 1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경제 위기에 대해 사과했으나, 그해 8월 23일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서 벗어났다. 2011년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를 조기 극복한 해였으며, 4월 25일에는 종합주가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2,200포인트를 돌파했다.

□ 새해 첫날 한파와 고난 극복이 한 해로 묶이는 것 역시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동짓날이 추워야 풍년이 든다’는 속담에는 겨울이 추워야 병해충이 얼어 죽어 풍년이 든다는 옛사람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하지만 추위를 견뎌낸 존재가 풍성한 열매를 맺는 이치가 어디 곡물과 과실에만 적용될까. 시련을 도약의 자극제로 만드는 힘은 포기하지 않는 ‘의지’다.

□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 (중략) / 영하 20도 지상에 /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 (중략)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 속으로 불타면서 /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 (중략) /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 온몸이 으스러지도록(황지우 시 ‘겨울 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 중)

새해 해돋이 구경도 제대로 못 하는 상황에서 맞는 2021년 첫날에 또다시 10년 주기 한파가 찾아왔다. 겨울 나무의 의지가 올해도 2001년과 2011년처럼 새로운 전환을 이루는 한 해를 만들 것이란 희망을 품는다.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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