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다사다난했다며 한 해를 보내지만, 올해는 더욱 그 말을 절감하게 됩니다. 일상이 바뀌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내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시간, 내 삶에 소중한 사람들을 느끼는 시간이 늘어났고,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 보내는 시선이 섬세해지는 등 소소하게 얻어지는 것도 있네요.
걱정스러운 일 가운데 하나는 힘들어지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곳곳에서 갈등이 깊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서로 다른 입장과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나라가 어려울 때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음을 합해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갈등이라는 말은 한자로 칡과 등나무를 뜻하는 한자가 만나 갈등(葛藤)이라고 씁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칡덩굴은 가지도 굵고 질기며 뿌리까지 깊으며 다른 나무들을 감고 올라가 숲을 관리하는 분의 입장에서는 매우 골치 아픈 존재이지요. 등나무는 퍼걸라(pergola)가 아닌 자생지에서 자라는 경우가 많지 않아 위협을 느껴본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줄기들이 꼬이고 꼬여 굵어진 모습이나, 소나무 노거수를 타고 올라간 범어사 등운곡의 등나무를 보면 두 덩굴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얽혔을 때의 견고함은 상상하고도 남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갈등을 푸는 방법은 없을까요? 두 나무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답이 나올 듯도 합니다. 우선, 보이는 것이 알고 있는 것이 다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두 나무는 다른 나무를 타고 올라가 경쟁에만 치중하는 몹쓸 존재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콩과식물이어서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는 뿌리혹박테리아에 공중질소를 고정하여 제공받고 양분을 건네주는 공생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많은 비난을 받고 있는 칡만 보더라도 한방에서는 유용한 성분이 많아 해독, 간 기능 개선 등 다양한 약재로 이용되어 왔으며 질긴 줄기는 엮어져 다양한 생활도구가 되었지요. 칡의 영어 이름이 화살뿌리(Arrow root)인데 독화살을 맞은 병사에게 칡뿌리를 먹게 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두 나무는 살고 있는 곳이 달라 실제로 서로 얽혀 풀어 낼 수 없는 갈등을 만들어 내는 경우를 보기는 어렵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합니다. 우리가 겪어내는 상당수의 갈등은 제대로 알지 못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없이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한 허구에서 생겨난 것은 아닐까요? 상황은 보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서 경북 월성 오유리에 팽나무와 얽힌 등나무는 갈등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의 인연을 이어가는 자매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새해엔 아직은 갓 심은 나무들이 어려서 그늘이 부족한 수목원 산책길 어딘가에 갈등을 풀어내는 꽃 터널을 하나 만들어 볼까 합니다. 한쪽엔 등나무를 한쪽엔 칡덩굴을 올리면 덩굴들이 펼쳐지며 싹 틔운 잎새들은 초록빛 그늘을 만들고, 봄부터 여름까진 연보랏빛 등꽃과 자줏빛 칡꽃이 향기로운 아름다움을 건넬 것이며 그 꽃 터널을 지나고 나면 어떤 갈등도 통과하여 극복한다는 전설도 함께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한 해의 마감이 행복이길 기원합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