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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1일을 아름답게, 피크엔드를 위하여

입력
2020.12.29 22: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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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께 올 한 해는 어떤 시간이었나요? 소셜미디어인 트위터에서 재미있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올 한 해를 한 단어로 말하자면?"이라는 것이었는데요. 사람마다 각기 다른 답변을 던지며 대유행을 타더니, 세계적인 기업들까지 재치 있는 답변으로 가세했습니다. 가장 먼저 유튜브는 구독 취소라는 답변으로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냈습니다. 또한 빵 길이를 선택할 수 있는 샌드위치 프랜차이즈인 써브웨이는 "long(길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버텨내기가 너무 길고 시간이 안 간다는 의미를 다양하게 담아냈지요. 아마 우리 모두에게 비슷한 느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저도 올 한 해 내내 "언제 끝나…"를 입에 달고 살았던 것 같으니까요. 상담하는 사람들끼리는 가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지요. "우리 같은 직업 가진 사람들이 할 일 없어서 백수 되는 세상이 건강한 세상인데." 그런 말들이 무색하게 올해는 바쁜 나날들이었습니다. 일 년 내내 입술에 물집이 잡혀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제 입술에 잡힌 물집보다도, 내담자들의 마음에 잡힌 크나큰 물집들이 너무 크게 다가오는 한 해였습니다.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상담, 들여다보면 우울과 불안으로 가득한 사연들, "이제 이곳에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걸지 몰라요"라고 말하고, 이내 정말 세상을 등져버린 이들의 빈소를 찾는 일까지... 끝이 없는 터널 속에서 '이 눈치 없는 2020년. 코로나랑 둘이 손잡고 빨리 좀 꺼져라. 임마!'라고 얼마나 중얼거렸는지요. 그렇게 오늘, 올해의 마지막 상담이 끝났습니다. 남은 건 31일 단 하루더군요. 상담가 장재열에서 개인 장재열로 돌아와 고민했습니다. "뭘 하면서 보내야 하지?"라고요.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한 해니까, 눈 뜨면 2021년 되게 24시간 정도 푹 퍼질러 잠이나 잘까. 넷플릭스 틀어서 드라마 정주행으로 시간을 순삭(순식간에 삭제)시켜 버릴까. 이런저런 고민하다 그러지 않기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저는 피크엔드법칙(peak-end rule)을 믿거든요.

이 법칙은 쉽게 말해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제목과도 맞닿아 있는 법칙입니다. 이스라엘의 심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대니얼 카너먼과 그 연구팀이 말했던 이론인데요. 위의 희곡처럼 끝만 좋으면 다 좋다는 뜻은 아니고요. 사람의 인식은 어떤 시기 전체에서 '가장 절정이었던 순간(피크)'과 '가장 마지막 순간(엔드)'의 평균값으로 결정된다는 겁니다. 즉, 영화로 치면 클라이맥스 장면과 엔딩 장면 두 개가 얼마나 좋았냐에 따라 "그 영화 명작(졸작)이지"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 이론을 조금 빌리자면, 코로나 19로 최악이라는 기분이 들었던 올해, 마지막 장면인 31일을 의미 있게 채우는 것으로 올해에 대한 감정의 평균값을 조금이나마 조정해볼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호미나 가래로 터진 둑을 다 막을 수야 있겠습니까만 아주 조금이라도 말이죠. 저는 남은 하루, 감사한 사람들에게 손편지를 쓰면서 종일을 보내보려고 합니다. 짜증 나는 일, 화가 나는 일, 슬픈 일이 훨씬 많은 한 해였지만 진흙 속에서도 연꽃이 피었다는 말을 되새기는 마지막 하루를 보낼까 합니다. 일 년 동안 설익은 제 글에 함께 웃고 울어주신 여러분께도 감사의 마음과 함께, 피크엔드 법칙이 조금은 적용되기를 기도하면서요.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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