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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 우먼’이 OTT로 직행한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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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개봉한 영화 ‘원더 우먼 1984’의 도입부는 좀 낯설다. 할리우드 대형 영화사 워너브러더스의 소개 영상이 바뀌어서다. 물결처럼 출렁이는 스튜디오 건물 이미지는 사라지고, 익숙한 방패 모양 로고와 함께 워너브러더스의 모회사인 워너미디어만 간략히 써있다. 영화사를 의미하는 수식을 없앤 셈인데, 최근 일련의 일들을 감안하면 의미심장하다.
‘원더 우먼 1984’는 미국의 경우 극장과 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OTT) HBO맥스에서 동시에 공개됐다. 워너미디어의 자회사인 HBO맥스 유료 가입자들은 추가 비용을 내지 않고 최신 블록버스터를 집에서 볼 수 있다. HBO맥스 한달 이용료는 14.99달러다. 지난해 미국 영화 티켓 평균 가격은 9.16달러였다. 가족이나 친구가 함께 HBO맥스로 ‘원더 우먼 1984’를 본다면 돈을 제법 아끼게 된다. 미국 언론은 ‘원더 우먼 1984’의 공개 방식을 파격으로 평가했다. 100년 넘게 영화의 주요 수익원이었던 극장 상영을 사실상 포기해서다.
‘원더 우먼 1984’는 시작에 불과했다. 워너브러더스는 ‘매트릭스4’와 ‘듄’, ‘고질라 vs 콩’ 등 내년 개봉 예정 영화 17편 모두를 극장과 HBO맥스에서 동시에 선보이겠다고 지난 5일 밝혔다. 17편의 제작비는 10억달러가 넘는다. 극장 흥행 없인 회수가 쉽지 않다. 감독과 배우들이 극장 흥행 보너스가 사라졌다며 소송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백신이 잇달아 개발돼 코로나19 극복이라는 희망까지 생겼다. 대세로 떠오른 OTT사업 강화를 위한 조치라고 하나 의문이 남는다.
거대 통신사 AT&T의 계산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AT&T는 2018년 워너미디어를 인수했다. 라이벌인 미국 최대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 컴캐스트가 할리우드 영화사 유니버설을 손에 넣은 것에 자극 받았다. 지난 8일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HBO맥스는 AT&T 무선통신 사업의 핵심이다. AT&T 무선통신 사업 규모는 710억달러다. 고객 0.01%만 유지해도 1억달러의 수익이 발생한다고 한다. 휴대폰과 인터넷 상품을 HBO맥스와 묶음으로 판매해 가입자를 모으고 이들의 이탈을 막으면 막대한 돈을 벌 수 있다. AT&T에게 최신 영화와 드라마는 호객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코로나19가 AT&T의 욕망을 실현하는 좋은 빌미가 된 셈이다.
앞서 유니버설은 지난 4월 애니메이션 ‘트롤: 월드 투어’를 극장과 주문형비디오(VOD)로 동시에 선보였다. 미국 극장 대부분이 문을 닫은 시기였는데, ‘트롤: 월드 투어’는 VOD만으로 3주만에 8,000만달러가 넘는 수익을 챙겼다. 전작 ‘트롤’(2016)이 5개월 동안 거둔 극장 수익(7,680만달러)보다 많았다. 컴캐스트의 후광이 작용했다. 컴캐스트는 세계 최대 케이블 방송국이기도 하다. 컴캐스트와 유니버설은 코로나19 덕분(?)에 극장과 수입을 나누지 않고 돈 버는 방법을 알게 됐다.
실리콘밸리에서 태동한 OTT 넷플릭스는 코로나19 시대 할리우드 실세가 됐다. 1년 사이 테크 기업들이 할리우드에서 목소리를 키우면서 대중문화의 중심이었던 영화는 뒷전으로 밀렸다는 말이 나온다. 관람 방식이 바뀌면 콘텐츠 생산 방식도 바뀌기 마련이다. 테크 기업이 장악한 할리우드 영화는 어떻게 변모할까. 한국 영상산업엔 또 어떤 영향을 미칠까. 2020년이 던지고 가는 질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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