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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면수업도, 동기도, MT도 없었다... '찬란해야 할 1년'이 사라졌다

입력
2020.12.29 04:30
수정
2020.12.29 07:23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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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코로나 1년] <2>대학 새내기들
1학기 내내 비대면 수업… 축제·MT 언감생심
2학기엔 낙향 '집콕'…?대책 없는 학교에 절망
잃어버린 20학번 "누가 어떻게 보상할까요"

지난 22일 오전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한 학생이 등교를 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대학 수업들이 비대면으로 전환된 가운데, 대학 캠퍼스가 한산하다. 최은서 기자

지난 22일 오전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한 학생이 등교를 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대학 수업들이 비대면으로 전환된 가운데, 대학 캠퍼스가 한산하다. 최은서 기자


편집자주

2020년은 코로나19에 파묻힌 해였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하후하루 힘겨운 싸움을 했습니다. 우리들에게 지난 1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요. 간호사, 대학새내기, 그리고 택시기사의 눈으로 숨가빴던 한해를 되돌아 봅니다.


띠리리링~

오전 9시 50분 알람에 눈을 뜬다. 고양이 세수와 양치만 하고 온라인 강의에 접속한다. 그러면 딱 10시. 1교시 시작이다. “여러분, 출석 체크하겠습니다.” 오늘도 10분 만에 출석에 성공한다.

나는 올해 대학에 입학한 20학번 조민준(19·가명)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 대학생은 기상 10분 만에 출석이 가능하다. 작년 고3 때는 매일 오전 6시 30분에 일어나 한 시간 만에 교실에 도착했지만, 지금은 세 시간 이상 더 잘 수 있다. 이게 좋기만 한 일일까? 내가 대학에 들어온 것인지 인강(인터넷 강의)을 들으러 온 것인지 헷갈린다.

만난 적 없는 동기들... 축제도 MT도 사라졌다

오전 11시가 좀 넘어 수업이 끝나니 학생들은 저마다 자기 얼굴을 비추던 작은 창을 닫는다. 학기 내내 화면으로만 본 얼굴들. 실제로 저들과 대화를 나눈 적은 없다. 학과 친구나 선배들일텐데, 언제 만날 지 기약은 없다. 안부 인사라도 해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공통 관심사가 없다. 결국 노트북을 덮고 침대에 눕는다.

지난 3월 생각이 난다. 부푼 마음으로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의 대학에 붙어 자신감에 넘쳐 상경했다. 당시엔 코로나19가 이렇게 오래 갈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조금만 지나면 동기, 선배, 교수님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큰 오산이었다. 학교는 닫혔고, 오리엔테이션이며 MT 할 것 없이 모든 게 비대면으로 이뤄졌다.

지난 22일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학생들이 건물로 들어서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대학 수업들이 비대면으로 전환된 가운데, 대학 캠퍼스가 한산하다. 최은서 기자

지난 22일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학생들이 건물로 들어서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대학 수업들이 비대면으로 전환된 가운데, 대학 캠퍼스가 한산하다. 최은서 기자

대면과 비대면. '비'라는 한 글자엔 혼자로 남느냐, 우리가 되느냐라는 엄청난 차이가 숨어 있었다. 만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직접 느낄 수 없는 것을 의미했다. 교수님들과의 개인적 접촉은 언감생심. 교수님들은 수업 중에도 인생에 도움이 되는 얘기들을 많이 해주신다고 들었는데, 온라인 녹화 강의는 대본대로만 흘러간 뒤 뚝 꺼져 버린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교수님과 면담 한 번을 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애정 어린 잔소리가 그리워질 정도였다.

"밥사줄게 가자." 대학 가면 선배들 따라 학교 앞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닌다고 들었는데, 난 아는 선배가 한 명도 없다. 내년에도 당분간 이 모양을 벗어나기 어려울 텐데, 그러면 후배들 만날 기회마저 잃게 된다. 20학번은 선배도 후배도 없는 학번이다. 본의 아니게 캠퍼스의 '아싸(아웃사이더)'가 될 판이다.

말 한 번 안 섞어본 동기 몇몇은 내년 초 군대를 간단다. 동기 한 명이 그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내줄 거냐고 물었다. 훈련소에선 동기들 편지를 받고 힘든 기간을 견딘다던데, 그들에게 편지 한 장 써주는 것조차 고민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꽃피던 5월을 돌아본다. 모니터로 비대면 축제를 마주했을 때는 이게 정녕 실화인가 싶었다. 처음 보는 학생회장이 나와 학과를 소개하더니 대뜸 온라인 이벤트에 응모할 것을 독려했다. 소소한 고등학교 축제가 차라리 나았다. 와플 기계로 빵을 찍어내고, 동물 잠옷 자락과 바통을 동시에 잡고 운동장을 내달리던 때가 그리웠다.

학과 못지 않게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고 들었던 동아리 활동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이다. 연극, 춤, 프로그래밍, 기타 등 가입하고 싶은 동아리가 많았는데, 학교도 제대로 가지 못하니 동아리는 꿈도 꿀 수 없었다. 학기 내내 새로 사귄 친구가 없어 기숙사 1층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라면으로 혼자 끼니 때우는 시간이 많았다. 고등학교였다면 벌써 단짝 친구들이 생겼을 텐데.

수업도 우왕좌왕... "나아질 기대도 안 해요"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지나가버린 새내기 시절을 안타까워하는 학생들이 익명 글로 심정을 나누고 있다. 독자 제공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지나가버린 새내기 시절을 안타까워하는 학생들이 익명 글로 심정을 나누고 있다. 독자 제공

1학기가 끝났다. 서울에 있어봐야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서 2학기 때는 기숙사를 떠나 고향에서 머물렀다. 그러나 2학기도 달라질 게 없었다. 온라인 강의로만 수강 과목을 채웠다.

새내기들은 오프라인에서 고민을 해결할 방도가 없으니, 온라인에 불만과 걱정을 다 쏟아부었다. 시간표를 만들기 위해 에브리타임(에타) 앱을 실행했다가 뜻밖의 공론장을 발견했다. 원룸 얻을 돈이 없는 1학년 학생은 대면 수업을 못 가서 F학점을 받을 위기에 놓였고, 해외 거주 학생이라서 기숙사를 신청했더니 수강신청 기회를 빼앗겼다(기숙사 포기시 비대면 강의 우선권을 줌)는 1학년도 있었다. '모두 여기에 모여 있었구나' 싶은 안도감도 잠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만 고충을 토로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서러움이 몰려왔다. 억울한 학생들이 모여서 수강신청 권리를 보장해 달라는 대자보도 썼다는데, 학교를 못 가는 나는 대자보를 읽을 수조차 없었다.

수강신청은 잘 넘어갔지만, 이젠 수업 방식 때문에 벽에 부딪쳤다. 학교에 있을 이유가 없어 나처럼 고향으로 내려온 새내기들이 많은데, 그 사정을 모르는 교수님들이 일부 강의를 비대면에서 대면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수업 하나를 들으러 왕복 4시간 걸려 서울로 가려니 암담했다.

전국 197개 대학 수업 진행 현황. 송정근 기자

전국 197개 대학 수업 진행 현황. 송정근 기자

말도 섞어 본 적 없는 동기들에게 가까스로 연락해, 단체로 교수님께 메일을 보냈다. "교수님, 저희는 기숙사도 원룸도 없습니다. 이 수업을 제외한 모든 수업은 비대면입니다." 절절한 메일이 통했는지 수업은 다시 비대면으로 전환됐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학생들이 교수님에게 오프라인 수업이 필요하다며 메일을 보냈다. "교수님, 실습 없는 온라인 수업으론 아무 것도 배울 수가 없습니다."

결국 교수님은 다시 검토한 후 메일로 공지하겠다는 말씀을 끝으로 더는 말이 없었다. 제대로 된 학교 정책도 방침도 없이 각각의 수업마다 우왕좌왕 헤매는 이 상황. 이게 2020년 대학 교육의 현실이었다.

얼마 전 저녁 식탁에서 엄마가 물었다. "코로나가 사라지면 뭘 해보고 싶니?" 글쎄. 이제는 바라는 것도 없다. 코로나 종식은 당장 바랄 수는 없고, 그렇다고 해서 잃어버린 1년을 되돌릴 수도 없다. 다만 새내기 생활은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부실했던 두 학기 수업을 보충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졌으면 좋겠다. 학점 보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코로나 시대에 온라인으로 들었던 강의만큼은 나중에 실제 강의로 다시 듣게 해주는 것. 그것이 지금 상황에서 떠올릴 수 있는 최소한의 소원이다.

지난 22일 오전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학생이 등교를 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대학 수업들이 비대면으로 전환된 가운데, 대학 캠퍼스가 한산하다. 최은서 기자

지난 22일 오전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학생이 등교를 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대학 수업들이 비대면으로 전환된 가운데, 대학 캠퍼스가 한산하다. 최은서 기자

다음 수업은 오후 3시다. 거리두기 때문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 그때까지 방에서 낮잠이나 잘 수밖에 없다. 다시 또 눈을 붙인다. 낮잠 때문에 밤에 눈을 붙이는 시간이 늦어지고, 학교에 갈 필요가 없으니 또다시 늦잠을 자는 악순환은 내일도 반복될 것 같다.

최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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