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부고·청첩장에 계좌 번호...마음 불편하진 않으세요

입력
2020.12.27 09:00
수정
2020.12.27 10:12
구독

포스트 코로나19로 바뀌는 결혼·장례 문화?
부고 문자·모바일 청첩장에 계좌번호 넣기
"어쩔 수 없는 상황" vs?"너무 속 보이는 짓"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마음을 전할 곳:
○○은행 △△△-△△△△-△△△△(계좌번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죠. 코로나19가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기에 사회 체계나 문화도 이에 맞춰 바꿔가야 한다는 겁니다.

코로나19는 우리의 풍속과 관습도 바꿔놓고 있는데요. 곳곳에서는 '아무리 그래도 이게 맞느냐'고 어리둥절해 하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코로나19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미풍양속을 해치면서까지 변화를 따라가는 건 잘못됐다는 반론입니다. 반면 변화의 흐름을 무슨 수로 막느냐, 불편해도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고 맞서는 의견도 상당합니다.

대표적인 게 장례식과 결혼식인데요. 코로나19로 부고 문자와 결혼식 모바일 청첩장을 보내면서 계좌번호를 넣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고 합니다.

실제 계좌번호가 적힌 부고 문자나 모바일 청첩장을 받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계좌번호 괜찮을까요' 온라인서 쏟아지는 질문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부고 문자와 결혼식 모바일 청첩장 속 계좌번호를 둘러싼 논쟁을 심심찮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사회의 한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는 거겠죠.

한 맘 카페에서 상을 치르게 된 누리꾼의 고민이 담긴 글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누리꾼은 "부고 문자에 계좌번호가 적혀 있는 거 어떠신가요"라며 "지금 코로나 때문에 못 오시는 분이 많아서 계좌랑 같이 적어 보내면 문자를 받으시는 분들이 욕하실까요"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맘 카페 회원들은 이에 '충분히 이해가 된다'는 의견과 '결국 부의금은 챙기겠다는 것 아니냐'라며 반으로 나뉘어 논쟁을 벌였습니다. 계좌번호를 적어 보내도 된다는 누리꾼들은 "코로나19 상황에서 가족상을 치른다는 문자를 보니 이해가 됐다", "서로 오라고 하기도 간다고 하기도 불편한데 오히려 좋은 것 아니냐"라며 작성자를 격려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속 보이는 행동이다", "안타까움이 계좌번호를 보는 순간 사라진다",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별로라고 생각한다"며 계좌번호를 보내는 게 잘못된 행동이란 지적도 상당했습니다.

"돈만 바라느냐" vs "예 갖추는 현실적 방법"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한 가정의 중요한 행사로 친족·지인들과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게 목적인데, 축의금과 조의금만 바라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죠.

결혼식이나 장례식은 예부터 조상들이 중시하며 가정의 근본으로 여겼던 관혼상제에 해당됩니다. 새 가족의 탄생을 축하하거나 고인을 보내는 예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니, 돈만 오가는 겉치레 행사가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죠.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하면 계좌번호 보내기는 상대방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가장 현실적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현재 서울시의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따르면 결혼식장에는 50명 미만(49명까지), 장례식장에는 30명 미만(29명까지)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식장에 상시 대기하는 친족을 고려하면 갈 수 있는 사람은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선뜻 상주를 위로하거나 혼주를 축하해 주러 가려고 해도 고민해야 할 게 많아지죠.

무엇보다 코로나19가 언제 어디에서 감염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자칫 확진자의 방문으로 결혼식이나 장례식장이 코로나19 전파 장소가 되면 혼주와 상주는 이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계좌번호 보내기는 혼주·상주와 하객·조문객 모두 부담없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죠.

실제 코로나19 탓에 결혼·장례식 같은 경조사에 참여하는 걸 꺼리는 게 요즘 분위기입니다. 한국리서치가 지난달 27~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최근 2주간 다중이용시설 방문 경험이 있느냐'고 물은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결혼·장례식, 돌잔치 등 경조사에 방문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10%로 나왔습니다.

반면 '다른 다중이용시설 방문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39%, '지인과의 모임 회식 참여'는 22%, '종교 모임 참여'는 20%였습니다. 경조사 참여율이 다른 사회적 활동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온라인 커뮤니티나 예식·상조업체가 운영하는 블로그나 카페를 보면 청첩장이나 부고 문자를 보내는 방법, 작성 시 삽입 문구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시대가 됐습니다. 코로나19로 갑작스럽게 찾아온 변화의 바람이 한국 사회에 맞는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류호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